"나는 왜 박근혜 변호인이 되었나"
'옥중 박근혜'를 지켜본 채명성 변호사의 토로 "세상 인심 참…문고리 권력도 증언하러 나오지 않더라" "낯을 많이 가리는 분…가까워지면 잔정도 많아" "수의차림 보이기 싫어 아무도 면회하지 않아" 【서울=뉴시스】김현호 기자 = 그는 잘 나가는 30대 변호사였다. 유명 대형 로펌에서 주로 기업관련 사건을 담당하면서 고액 연봉을 받았다. 대한변호사협회 법제이사도 맡았다. ‘한반도 인권과통일을위한 변호사모임(한변)’ 창립에 주도적 역할을 하고 사무총장과 공동대표를 역임했다. 가정에서는 변호사인 부인과 아들, 딸을 둔 행복한 가장이었다. 그러나 작년 이맘때 박근혜 대통령의 변호인을 맡으면서 그의 삶은 온통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었다. 로펌을 쫓겨나듯 그만둬야 했다. 변협 이사직도, 한변 대표직도 유지할 수 없었다. 주변 사람들도 대부분 그를 외면했다. 정신적 육체적 경제적 고통이 각오한 것보다 훨씬 컸다. 채명성(39) 변호사 이야기다. 그는 작년 12월 박근혜 대통령의 변호인으로 가장 먼저 이름이 언론에 등장했다. 이후 탄핵 심판과 형사재판의 모든 과정을 담당했다. 최근 박근혜 변호인 총사퇴로 ‘편한’ 몸이 된 그를 만나 그동안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인터뷰를 극구 사양하는 그의 입을 여는 데는 ‘할 수 있는 이야기만 하고, 할 수 없는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는 조건 아닌 조건이 붙었다. ‘좀 싱거운 인터뷰가 되려나’ 걱정하면서 그의 옆구리를 찔러가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서 박 전 대통령 변호를 맡게 됐나. “처음 태블릿PC 사태가 불거지고 할 때 가까운 젊은 변호사들끼리 ‘이건 너무 심하다. 언론에서 너무 매도하는 것 아닌가. 우리가 도울 수 있으면 돕자’ 이런 이야기들을 했는데 그중 한 명이 대통령측과 연락이 됐던 모양이다. 곧바로 도와달라는 연락이 왔다. 처음엔 뒤에서 도왔는데 얼마 안돼 변호인단에 들어올 사람이 없다면서 꼭 좀 들어와 달라고 했다. 다니던 로펌이나 변협 이사 등을 모두 그만둬야 할 게 뻔한데 쉽게 수락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대통령을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게 부당하다고 생각해 뒤에서는 도와주면서도 앞에는 나설 수 없다고 하는 게 비겁하게 느껴졌고 양심에도 걸렸다.” -주위에서 많이 말렸을텐데. “로펌에 이야기했더니 예상대로 절대 안된다고 했다. 변협도 마찬가지였다. 주위에서는 모두 ‘왜 침몰하는 배에 타려 하느냐’고 펄쩍 뛰었다” -변호사인 부인은 어땠나. “의외로 담담하더라. 딱 하루 반대했다. 내 이야기 듣고 반대하다가 ‘일단 자고 내일 생각해 보자’고 하더니 이튿날 ‘정 하고 싶으면 하라’고 하더라. 근데 그때 탄핵 심판까지라고 약속했는데 나중에 형사재판까지 맡는 바람에 다투기도 했다. 고마운 마음뿐이다.” -용기와 양심만으로 그 힘든 일을 맡았다는건가. “저는 북한 인권과 통일문제에 관심이 많았고 관련 활동도 나름대로 열심히 했다. 박 대통령께서 다른 건 몰라도 이 분야는 진정성 있게 잘 한다고 생각해 왔다. 북한인권법 통과에도 대통령이 음으로 양으로 힘 많이 쓴 걸로 알고 있다. 탈북자 문제에도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다는 걸 많이 보고 들었다. 이런 부분까지 통째로 도매금으로 넘어가는 건 막아야하지 않겠나, 그런 생각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기본적으로 제가 박 대통령께 호감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를 도와주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으니 저라도 나서야겠다고 한 것 아니겠나.” -변호인으로 선임된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고 괜찮았나. “욕 많이 먹었다. 전화나 SNS로 비난이 쏟아졌다. ‘나이도 어린 게 싹수가 노랗다’, ‘돈 얼마나 받아 먹었냐’ 등등. 출신 고교에서는 ‘모교 망신 다 시킨다’는 소리도 들었다. 온 세상이 나를 향해 달려드는 것 같았다. 기자들의 전화도 쉴새없이 이어졌다. 처음엔 외부와 연락을 끊고 사무실도 없이 혼자서 서류에 파묻혀 지냈다. 당시 촛불집회 등으로 분위기가 얼마나 대단했나. 두렵기도 했다. 집사람은 테러 걱정까지 했다. 아이들 유치원과 학교에는 얼굴 내밀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더라.” -말 나온김에 수임료는 얼마나 받았나. “액수를 밝힐 수는 없고… 탄핵심판이 한창 진행 중이던 무렵 대리인단과의 회의가 있었는데 박 대통령께서 한명씩 인사를 하던 중 제 손을 잡고 ‘로펌도 그만 두고 어떻게 해요’라고 걱정하시더라. 형사재판 중에도 변호인들 걱정을 많이 하셨다. 그래도 변호인들은 오히려 재판이 길어지면 수임료 부담이 커서 대통령의 노후 대책이 제대로 되겠나 걱정했다.” -변호인으로서 지켜본 박 전 대통령은 어떤 사람이었나. “낯을 가리시는 것 같다. 변호인들도 안면 트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일단 한번 안면이 트이면 먼저 인사하고 말붙이고, 농담도 하신다. 6개월이 넘는 구속기간 중에 변호인을 제외하고는 누구와도 면회하지 않았다. 가족과 정치인, 지지자들의 면회 신청이 쌓여 있었지만 자신이 수의를 입은 모습을 보여주려 하지 않으셨던 것 같다. 제가 본 박 전 대통령은 자존심 강하고 차분한 분이셨다. 누구에게 하대하는 모습도 보지 못했다. 다만 처음에 가까이 하기 어려워서 그렇지, 조금만 친해지면 잘 해주시고 상냥하시다. 배려심도 많다. 대통령은 형사재판 내내 재판 시작과 끝에 변호인들에게 항상 먼저 인삿말을 건네셨다.” -구치소에서는 어떻게 지내나. “정확히 알지는 못한다. 주로 책을 읽고 글을 쓰시는 것 같다. 책은 자택 서재에 있는 책 중에서 이런저런 책을 갖다달라고 하신다. 특히 역사관련 책을 즐기시는 것 같다. 일본 역사소설 ‘대망’도 그중 하나다.”
“사실 그동안의 기록이나 재판과정을 살펴보면 최순실은 대통령에게 그저 ‘네 네’하며 꼼짝 못하는 존재였다. 바깥 민심을 전한다면서 열가지 이야기를 하면 그중 하나 정도 자기 이익을 챙겼다. 그것도 자기와 관련이 없는 것처럼 슬쩍 끼워넣는 식이었으니 대통령으로서는 알기 어려웠던 것이다. 최순실이 대통령 옷값을 대줬다는 주장도 있지만 우리가 파악하기로는 대통령께서 빠짐없이 갚았더라. 남에게 신세지고는 못사는 분이다. 돈 관리가 깨끗하고 철저했다. 그런데도 거액의 뇌물을 받았다고 하니 억장이 무너지지 않겠나. 언론에도 났지만 지난 3월 검찰 조사 당시 ‘내가 대통령 하는 동안 가족도 멀리했는데 이런 더러운 돈을 받았겠느냐’며 오열했다. 때문에 조사가 잠시 중단되기도 했다. 그후로는 격정을 토로하신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갈수록 생각이 깊어지고 전체 상황을 파악하시는 듯했다.” -박 전대통령과 가까웠던 사람들이 도움은 좀 주었나. “그게 참... 세상 인심이라는 게 무섭더라. 이른바 문고리 3인방이라고 불린 사람 중 두 사람은 구속은커녕 기소도 안됐다. 최근에서야 국정조사 증인 불출석 혐의로 기소됐다고 들었다. 탄핵 심판 때 변호인들이 그들에게 증언을 좀 해달라고 부탁했는데 끝내 나타나지 않더라. 정치권도 마찬가지고... 전직 수석등 몇몇 분들은 형사재판 내내 항상 방청석에서 자리를 지켜주셨고 여러 가지로 도와주려 애쓰셨다.” -재판에서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이었나. “박 전 대통령이 최순실의 꼭두각시였다는 프레임이었다. 그래서 국정 농단이 가능했다고 보는 것 아닌가. 나아가 최가 받은 돈은 곧 대통령이 받은 거라고 연결짓는다. 처음 언론이 이런 프레임을 만들었고 검찰과 헌법재판소가 따라가고 지금은 법원도 따라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게 말이 되는가. 한 푼도 받지 않은 대통령을 이렇게까지 엮을 수 있는가. 결벽증적일 정도로 돈문제에 철저하신 분인데 이런 일에 휘말린 것 자체가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시간이 지나면 세상이 진실을 볼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재판 일정이 빡빡하지는 않았나. “변호인이 7명이었다. 처음에는 전원이 재판에 나가는 걸 원칙으로 했지만 주 4일 재판으로 불가능해졌다. 모두 재판정에 나가면 다음 재판 준비를 할 수가 없다. 원래 형사재판은 한주에 한두 번이라야 가능한데 이거는 오늘하면 내일 또 하고… 검찰은 이미 조사해놓은 걸 법정에 드러내는 수준이지만 변호인은 검찰의 조사 내용을 일일이 따지고 반박해야 하므로 증인마다 일정 정도의 시간은 반드시 필요한데 그 시간을 제대로 확보할 수 없었다. 하는 수없이 두세 명씩 조를 짜서 재판에 임했다. 오늘 재판을 봐야 다음 재판을 제대로 준비할 수 있는데 그걸 포기한 거다. 오늘 재판은 세명이 나가고, 나머지는 사무실에서 내일 재판 준비하고... 재판에서 나온 중요한 사항은 다음 재판팀에 전달만 해주고, 이렇게 했다. 주4일 재판 진짜 힘들다. 잠도 제대로 못잔다. 맨날 새벽까지 일하고 주말도 쉬어본 적이 없다. 탄핵때는 헌법재판소에서 7인재판부가 결정을 내리게 될 것을 우려해서 그렇게 몰아쳤는데 형사재판에서는 할 것이 많다고 또 몰아친다. 이래서야 실체적 진실을 제대로 밝힐 수 있겠나. 그리고 주4회 재판을 진행하다 보니 대통령께서 체력이 너무 떨어져 힘들어하셨다. 재판 초기에는 그래도 잘 버티셨는데 7월을 넘어가면서 너무 힘들어하셔서 많이 안타까웠다. 그래서 증인신문을 줄여 진행한 경우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변호인 전원이 사임한 것은 사실상 재판을 거부한 것으로 헌법질서에 어긋난다는 비판을 받을만한데. “그걸 고민하지 않은 건 아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피고인의 법률적 권리라고 볼 수도 있다. 국선 변호인 제도도 있으니까. 변호인들의 숱한 이의제기에도 주4회 재판을 강행했는데 구속기간 연장 결정마저 나는 걸 보고 이번 재판은 이미 방향이 정해져 있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별건으로 구속영장을 발부하는 것이 불법이라는 건 형사소송법 교과서에도 나오는 상식이다. 구속연장 결정 전날 청와대에서 세월호 문건을 발표하고 구속연장 결정을 금요일 오후에 발표한 것도 의도적인 것 아닌가 싶다. 이런 상황에서 재판에 연연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 -변호인 사임은 어떻게 결정됐나. “변호인단 건의를 대통령께서 받아들인 것이다. 변호인 사임하면 면회하기도 어려워질 것이고 혼자서 다 감당하셔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내리신 결정이다. 마지막 공판기일에서도 담담한 모습이셨다. 평정심을 유지하면서도 회한이 많은 듯 느껴졌다.” -변호인 사임후 박 전 대통령의 법정 진술은 직접 작성한 것이 맞나. “그렇다. 말씀도 잘하고 글도 잘 쓰시는 분이다. 탄핵 때 처음 청와대 들어가서 대통령 말씀하시는 거 보고 놀랐다. 정말 말 잘하시더라. 탄핵 대리인단 앉혀놓고 본인의 생각과 법리적으로 궁금한 거 쭉 말씀하시는데 논리 정연했다. 최순실 사건 터지면서 언론에서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폄훼가 너무 심했다. 마치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처럼 만들어놓지 않았나.” -최근 자유한국당에서 박 전 대통령 출당 문제가 본격 거론되는데 본인은 어떤 생각인 것 같나. “정치적으로 예민한 문제를 제가 말하기는 적절치 않은 것 같다.” -이제 좀 홀가분한가. “몸은 좀 편해졌지만 마음이야 어디 그렇겠는가. 나중에라도 항소심등에서 상황이 좀 바뀌면 뒤에서라도 돕고 싶다. 변호인을 그만 둔 사람이 다시 앞에 서기는 좀 그럴테지만 전체 상황을 파악하고 있는 변호사가 별로 없으니까.” -박 전 대통령 변호인을 한 게 후회되지는 않나. “후회는 없다. 그걸 하지 않았으면 평생 찜찜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배우고 느낀 점도 많다. 그 동안 살면서 보지 못했던 부분들을 많이 보게 된 것 같다. 탄핵사건, 형사사건을 함께했던 변호사님들 모두 훌륭한 분들이었다.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힘든 상황 속에서 다들 나름의 최선을 다하셨다. 탄핵사건을 함께 했던 변호사님 몇 분과는 지금 법무법인도 같이하고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감사한 일이다. 이제는 변호사로서도 새로운 출발을 해볼 각오다.” <상임고문>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