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도·반역·변절…배신이란 무엇인가
이스라엘 철학자 아비샤이 마갈릿이 쓴 '배신'이 국내 번역·출간됐다. 현재 예루살렘의 히브리대 철학과 명예 교수로 있다. 2001년에는 스피노자 렌즈(Spinoza Lens)상, 2007년에는 정치 및 윤리, 철학에 관한 업적을 인정받아 이스라엘 총리가 수여하는 에메트(EMET)상을 받았다. '배신'은 영국의 옥스퍼드대, 독일의 자유베를린대, 미국의 프린스턴 고등연구소·뉴욕대, 스탠퍼드대 등 세계 유수 대학을 돌아다니며 오랫동안 강의하고 연구한 주제인 '배신'에 대해 철학적으로 고찰한 내용을 담은 책이다. 아비샤이 마갈릿은 "배신이란 두터운 관계에 있는 사람들에게서 신뢰라는 접착제를 떼어 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터넷 발달로 서로 모르는 사람들 사이의 신뢰, 즉 얕은 신뢰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된다. 저자는 이런 관계를 이끄는 것은 도덕이고, 윤리는 두터운 신뢰나 소속감을 주는 사람들과 집단에 지니는 의무라고 말한다. "비록 우리에게 특별한 점이 없지만, 우리는 존경까지는 아니어도 사랑과 존중을 받고 싶고 특별해지고 싶다. 우리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우리의 특별한 관계다. 우리의 두터운 관계가 갖는 제한적 환경 내에서 우리는 특별하다. 그런데 배신은 우리에게 아주 잔인한 방식으로 우리가 특별하지 않다고 말해 준다. 바로 이것이 소속감을 손상시킨다는 것의 의미다. 일단 소속에 대한 의심이 생기면 상처받는 것은 우리의 두터운 관계만이 아니다. 특별하다는 느낌도 무너지는 것이다."(173쪽) "그럼 배신당했다는 사실을 알고 싶지 않은 마음은 어떤가? 배신당했다고 말해 주는 많은 신호와 마주치면서도 우리는 (반 정도는) 의식적으로 그런 신호들을 무시한다. 알고 싶지 않은 것이다. 배신은 호들갑스러운 사람에게나 어울리는 비정상적인 일이라는 확신을 이미 가지고 있는 탓도 있다. 실제 생활에서 배신이란 무언가 깊이 있는 것을 가리키는 표현이 아니다. 일이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의심이 드는데, 의심이 사실이 되면 어떤 식이로든 입장을 취해야 한다. 그리고 그 입장이라는 것은 누군가를 죽도록 미워하거나 경멸하는 식으로 야단법석을 떠는 과장된 태도일 때가 많다. 따라서 배신은 그냥 하나의 단계일 뿐이고, 결국 사라질 것이라는 그리 헛되지 않은 희망에 매달리면서 모르는 것이 낫다고 여긴다."(197쪽) 우리는 일상에서 배신을 보고 듣고 읽고, 또 직접 겪기도 한다. 이 책은 간통과 반역, 배교, 변절 등 다양한 형태의 배신을 역사적, 종교적, 문화적, 개인적 사례를 들어 이야기한다. 나아가 배신으로부터 손상되는 가족, 친구, 공동체 등의 인간관계를 다각도로 살펴본다. 황미영 옮김, 456쪽, 을유문화사, 1만8000원.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