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신창이 국정원 해체하고 한국형 FBI 창설해야”
한희원 동국대 법과대학장/법무대학원장 “국정원 서버 열람은 세계 정보사(史)에 없는 일 안보관련 법망 치밀하게 짜고 기구 전면 개편해야” <김현호의 넛지 인터뷰> 【서울=뉴시스】김현호 기자 = 그의 다채로운 경력은 대학 4학년 때 사법시험에 합격하면서 시작됐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 주호영 전 바른정당 대표권한대행 등이 사시 24회 동기다. 검사의 길을 걷던 그는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인권침해조사국장직을 휴직하고 2006년 미국 유학길에 오른다. 인디애나 주립대에서 당시 우리나라에선 불모지였던 국가안보법을 전공했다. CIA와 FBI는 물론 국가안보국(NSA)등 미국 16개 정보기구들의 구성과 운영방식, 정보기구의 정보활동에 대한 연방대법원 판결 등을 공부하고 분석했다. 이를 통해 정보활동이 무법과 실력이 판치는 곳이 아니라 법이 엄격하게 개입하는 영역임을 확인했다. 또한 법이 정교하고 치밀할수록 정보활동을 규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합법적 영역을 넓히고 보장해주고 탄탄하게 해 준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한희원 동국대 법과대학장(법무대학원장 겸임)은 2007년 귀국 후 지금까지 국가정보에 관한 책을 5권 썼다. 한국국가정보학회장도 지냈다. 국정원 요원 지망생들에게 그의 책은 필독서다. 그는 동국대 법대에 우리나라 최초로 국가정보법 과목을 개설했고, 대학원에는 국가정책과 안보법 석·박사 과정을 열었다. 국정원 자문위원도 지냈고, 국회의 국정원 개혁 논의과정에도 참여했다. 국가안보와 국가정보를 법규범적으로 연구하는 최초이자 거의 유일한 학자인 그에게 현재의 국정원 개혁 논란에 관해 들어보았다. 이야기 도중 그는 현실이 답답한 듯 자주 한숨을 쉬었다. -지금의 국정원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는가. “국정원은 메인 서버까지 뒤져지면서 파탄이 났다. 국가 기밀 체계를 스스로 붕괴시키는, 세계 정보 역사에 유례가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은 아무리 불법의 증거라도 최소 15년 이상을 묶어둔다. CIA의 케네디 암살 정보도 몇 십 년 지나서야 해제되는 걸 보지 않았나. 국가기밀은 기본적으로 3단계로 관리된다. 접근금지와 자격요건, 그리고 알 필요성(need to know)이다. 최고의 비밀취급 자격을 가진 대통령도 정적(政敵)에 관한 기록 등을 마음대로 볼 수 없는 것은, 비밀 그 자체의 목적에 따른 알 필요성 제한 때문이다. 예컨대 감사 또는 수사 목적의 기밀 열람은 알 필요성을 충족시키지 않는다. 만약 유한 임기의 국정원 감찰실장이 직원 감찰을 위해 정보기구의 기밀을 마구 뒤적인다면 어찌되겠나? 하물며 외부 민간인이나 검찰이 수사를 위해 기밀에 접근하는 걸 허용한다면 그 순간 정보기구의 존재 의미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아마도 외국 정보기관들이 혀를 차고 있을 것이다. 어느 정보기관이 비밀이 보장되지 않는 한국 정보기관과 협력하려 하겠는가. 국정원 요원들은 어떻겠나? 지금 자신이 하는 일이 정권이 바뀌면 또 어떻게 뒤져질지 모르는데 무슨 일할 의욕이 나겠나.” -적폐수사가 위법이라는 것인가. “명백하게 적법절차 위반이고, 국가정보 법치 파괴이다. 신임 국정원장이 지난 정권의 국정원 의혹을 살펴볼 것이라고 천명하고, 이어 외부 민간인들로 적폐청산 위원회를 만들어 기록을 뒤져보게 하고, 결국 검찰에 수사를 의뢰한다? 청부수사고, 하도급 수사고, 수사의 아웃소싱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 보인다. 법도 아닌 기관의 규칙으로, 사후적으로 국가공무원법상의 공무원 자격도 구비하지 않은 민간인 등으로 구성된 위원회는 헌법기구나 법률기관의 기밀에 접근할 수 있는 자격 자체가 없다. 그리고 위법한 절차나 방법으로 수집된 증거는 법적 효력이 없다는 점은 우리나라에서도 법 원칙으로 확립돼 있다. 현 정부 민정수석인 조국 교수가 ‘위법수집증거 배제법칙’을 위한 ‘영구혁명’을 주창한 게 아이러니다. 역대 정권들은 정보기구를 정치적으로 이용했지만, 현 정부는 국가정보 자체를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정보기구는 정보활동이 목적이지 정책을 만들지도 관여하지도 않아야 한다. 따라서 정권의 정책이 적폐청산이라고 하는 경우에도 정책과 정보 사이에는 엄격한 레드라인(Red Line)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서훈 국정원장은 내정되자 말자 ”남북정상회담은 필요하고 조건이 성숙되면 평양에 갈 수 있다”고 했고 적폐청산 정책에도 협조하고 있는 듯하다. 이것은 정책개입, 나아가 정치개입으로 볼 여지가 다분히 있어 보인다.” -국정원의 불법행위를 알고도 그냥 넘길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물론이다. 그러나 정보기관의 불법 행위를 일반 수사처럼 하게 되면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를 범하게 된다. 정보기관과 요원들은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넘나들게 마련이다. 어느 나라 정보기관이나 가장 애국적이고 정직하고 똑똑한 사람을 요원으로 뽑는다. 그런데 이 스마트한 요원들이 하는 일은 무언가? 미행하고 도청하고 매수하고 때론 암살까지 한다. 소위 ‘더티 비즈니스(dirty business)’ 다. 여기서 불법 행위가 드러나면 어찌해야 하나. 정보요원을 처벌하기 위한 불법의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정보활동의 과정과 결과가 고스란히 담긴, 그리고 국가신인도와 외교안보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기밀을 수사기관이 열어보도록 허용할 것인가? 그렇지 않다. 미국은 1970년대 CIA와 FBI의 온갖 불법행위, 반정부 인사들에 대한 무차별 감시와 위장 침입, 불법수색, 언론조작, 혐의전가 공작 등이 드러났을 때 의회의 조사위원회(처치 위원회)를 구성해 진상조사를 벌여 제도개선으로 마무리 했다.“
-국정원이 자체개혁안을 내놓았다. 수사권은 포기하고 해외정보만 수집하겠다는데. “국정원의 국가임무 포기다. 선별적 자기 임무부여, 즉 자기 하고 싶은 일만 하겠다는 것은 국가안보에 대한 직무유기고 자해행위다. 국정원이 포기하겠다는 국내정보 수집과 대공수사권은 국가안보범죄나 헌법질서파괴범죄로부터 국가안전을 지키기 위한 국가존립의 필수가치다. 잠시도 빈틈이나 공백이 있어선 안 된다. 어떤 이유로 국가정보안보체계를 재편할 필요가 있다면 한 치의 착오도 없이 완벽히 준비를 한 후에 동시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국정원이 포기한 국가안보사건 수사는 어디서 맡는다는 것인가? 일단 해체하고 이제부터 논의를 해보자는 것은 선거공약 이행 목적일 뿐, 참으로 무책임하고 위험한 발상이다.” -국정원이 수사권 포기하고, 해외정보에만 전념하고, 이름도 대외안보정보원으로 바꾸겠다는 것은 미국의 CIA를 지향한다는 것인가. “그렇게 읽힌다. 그러나 CIA가 어떤 곳인가. 오늘날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CIA 전투사령부라고 불린다. 단순히 해외정보만 수집하는 것이 아니라 공작(operation)을 하고 준군사작전을 감행하는 곳이다. 미국만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모사드 등 외국 정보기관들이 대부분 그렇다. 과연 국정원이 이런 결의와 실력을 갖고 있는지 의문이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극비 작전을 벌이고, 중국 공산당 핵심부를 겨냥한 포섭 공작을 벌일 수 있을까. 국정원이 해외 사무실에 앉아 각종 정보를 긁어모아 취합하는 편한 일만 하겠다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대공수사권은 어떻게 해야 하나. “대공수사라는 용어부터 바꿔야 한다. 대공수사는 북한 간첩만 염두에 둔 것으로 비친다. 국가파괴 목적의 암흑세력을 대상으로 하는 ‘국가안보사범 수사’ 또는 ‘헌법질서파괴사범 수사’라고 해야 한다. 이것은 국가 존속에 대한 본질적 위협을 초래하는 범죄에 대해 국가공권력이 결코 놓쳐서는 안 되는 수사다. 국가안보사범은 네 가지로 분류된다. 첫째가 내란죄와 외환죄를 포함하는 반역죄다. 미국 안보법은 반역죄의 본질을 일반시민들의 국가에 대한 충성의무 위배로 본다. 둘째가 간첩죄다. 안보선진국에서는 평범한 일반 사람들이 접근할 필요가 없는 곳에서 서성이는 것 자체를 처벌한다. 세 번째가 테러리즘, 네 번째가 파괴활동 범죄(사보타주)다. 군사무기를 배치하려는 군대 차량을 막는 행위는 미국에선 파괴활동범죄, 즉 국가안보사범으로 다뤄지지만 우리에겐 그런 법이 없다.” -국가안보사범 수사를 경찰이나 검찰에 맡기면 된다는 주장도 나오는데. “답답한 노릇이다. 경찰과 검찰의 본질적 기능은 치안사범을 담당하는 것이다. 국가안보사범과 강도, 살인 같은 치안사범은 범죄의 성격이나 목적, 방법, 위험정도 등이 전혀 다르다. 국가안보사범은 수사와 재판까지 염두에 두는 최고의 범죄 전문가이자 증거인멸자들이다. 궁극적으로 그들은 국가붕괴를 꾀하는 중대 범죄자들이다. 때문에 국가안보범죄 수사는 그에 걸맞은 전문수사기관이 맡는 게 상식이다. 미국에선 연방수사국(FBI)이 담당한다. FBI는 단순한 경찰이 아니라 종합정보수사기구로 정보공동체의 공식 멤버이다. 정보도 하고 수사도 한다. 선진국에선 정보와 수사가 분리돼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아주 잘못된 주장이다. 오늘날의 추세는 정보와 수사의 결합이고 국내정보와 해외정보 구분 없는 ‘종합정보’ 지향이다. 눈부신 과학문명의 발달에 따른 국가안보사범 성격의 변모 때문이다. 예컨대 FBI는 국내정보뿐만 아니라 해외정보도 다룬다. 우리는 국내정보와 해외정보 개념도 오해한다. 정보학의 대부인 셔먼 켄트도 명백히 했지만, 국내정보와 해외정보의 분리는 영역에 따른 것이 아니다. 정보대상을 기준으로 하는 개념이다. 해외세력에 관한 정보는 국내에서 수집한다 해도 해외정보이고, 국내세력에 관한 정보는 해외에서 해도 국내정보에 해당한다. 세계가 한 이웃인 오늘날 정보를 국내와 해외 어디서 수집하느냐 하는 공간적 구분은 의미가 거의 없다. 국정원이 국내정보 활동과 국가안보범죄 수사를 포기한다면, 별도의 ‘한국형 FBI’ 설립이 불가피하다.“ -한국형 FBI? 구체적으로 어떤 기능을 갖게 되나. “미국 FBI가 다루는 범죄는 9가지 유형이다. 테러리즘, 스파이, 사이버 범죄, 공공부패, 화이트 칼라범죄, 조직범죄, 과격범죄 등등이다. 우리는 우리 특성에 맡게 기능을 조정하면 될 것이다. 국정원은 물론이고 경찰, 검찰, 국세청, 세관의 정보수사요소를 망라하여 FBI를 창조적으로 모방하면 된다. 이 경우 국정원에서 분리된 (해외)정보기구와 한국형 FBI의 기능을 기획 조정하는 기구가 있어야 한다. 실시간적 정보공유를 위해서는 필수적이다. 미국에서는 국가정보국(DNI)이 그런 역할을 한다. DNI는 백악관 직속이 아닌 독립기구로 16개 정보기관을 통솔하지만 직접 정보활동을 하지는 않는다.”
-한국형 FBI는 기존의 국정원보다 더 세질 것 같은데. “한국형 FBI를 가칭 중앙방첩청이라고 하자. 이 기관의 활동범위는 국정원보다 더 넓고 깊어질 수 있을 것이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국가안보범죄는 갈수록 지능화ㆍ전문화ㆍ고도화 되고 있다. 따라서 정보와 수사도 그렇게 변해가는 것이 세계의 추세다. 언제까지 과거의 인권 침해 논란이나 정치개입 때문에 국가정보기구를 위축시켜야 하나. 정보수사기구의 일탈은 국회의 감독권 강화 등으로 막아낼 수 있을 것이다.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전문가를 책임자로 임명해, 10년 임기의 FBI 국장처럼 임기를 법으로 보장하는 것도 정보기구의 탈정치화와 독립성 확보에 기여할 것이다.” -북핵 위기로 정보기구의 역할이 긴요해지고 있는 시점인데, 굳이 이때 국정원 개혁을 밀어붙여야 하나. “개인적으로는 통일 후 5년 정도까지는 융합형 정보기구인 현재의 국정원 체계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해 왔다. 독일의 경우 통일 3~4년 후 정보 수요가 더 늘었다. 그러나 이유야 어쨌든 언론보도에 비추어 보면 지금 국정원은 만신창이가 됐고 재탄생이 불가피해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는 하루라도 빨리 개편을 서두르는 게 낫다. 미국은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기습을 받고 제2의 진주만 공격을 막고자 CIA를 창설했고, 2001년 9·11 테러 후 제2의 9·11을 막고자 DNI를 신설해 종합적 국가정보ㆍ수사 활동을 대폭 강화했다. 외부 안보환경이 위험해질수록 정보기구를 효율적으로 강화해 나가야 한다.” -분단국가인 우리는 국가안보 문제에 대해서만은 선진국이 돼야 할 텐데 현실은 반대인 것 같다. “국가안보 관련 법규가 턱없이 미비한 한국은 국가안보사범의 천국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외형상 불법의 천지라고 말해질 수 있는, 그러면서도 국가정보의 확고한 영역인 비밀공작과 방첩공작을 별도로 공부하고 연구해 본 법률가는 판사와 검사를 포함해 거의 없을 것이다. 국가안보범죄를 일반 치안범죄에 대한 인권의 시각으로 바라보면서 형법과 형사소송법 상식으로 국정원의 수사권 폐지나 정보활동 규제를 주장하는 목소리들이 널려 있다. 난센스다. 과거엔 정보기구가 국가안보에 무한책임을 진다는 생각에 법이 명백하게 금지한 것을 빼고는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고 봤다. 그러나 이제는 아무리 정보기관이라도 법에 있는 것만 할 수 있고 없는 것은 못하는 것으로 180° 변해버렸다. 그런데도 우리의 안보관련 법규는 옛날 그대로다. 너무나 엉성하고 고래도 지나갈 만큼 구멍이 뚫려 있다. 정보기구 개편보다 더 시급한 것은 시대에 맞게 안보관련 법제를 치밀하게 정비하는 일이다. ‘법치주의는 법을 필요로 하고 시대와 환경에 따라 변해야 한다’는 것은 쟝 쟈크 루소의 가르침이다. 정보기구 개편 논의도 전문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하지 않으면 안보냐 인권이냐는 얄팍한 이분법적 논쟁으로 끝나게 마련이다. 필요하면 외국의 전문가들을 불러서라도 이야기를 들어봐야 한다.” -제대로 공부하고 바로 알면 다툴 일이 없다는 뜻인가. “정보기구는 장식품이 아니다. 정보 없이 정책 없고, 정보 없이 안보 없다. 안보 없이는 국가도 없다. 정보는 국가의 필수요소이다. 국가안보와 치안안보는 차원이 다른 쟁점이다. 예컨대 치안질서의 가장 큰 위협 인자라고 할 수 있는 살인자는 설령 다 잡지 못하더라도 나라가 망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국가 그 자체를 파괴하려는 암흑세력은 방치하면 나라가 무너진다. 안보와 인권은 대립관계도 아니다. 국가안보가 무너지면 국민 모두의 생명, 자유, 재산이 파괴된다. 안보는 극소수의 악당을 제압하여 일반시민 모두의 더 커다란 자유와 인권을 확보하려는 주권국가의 중단할 수 없는 노력이다. 전혀 공부해 본 바 없이 일반 상식적인 시각에서 안보와 인권을 대립적으로 파악하고, 과거 권위주의 시절의 정보기구가 그랬으니까 정보는 제약되어야 한다는 정보 불신이 문제 해결을 어렵게 하는 것으로 보인다. 안보는 이념의 문제가 아니고 진실의 문제다. 제대로 아는 것이 정의다.“ <상임고문>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