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듭된 대형재난]매번 같은 원인…참사 또 부르는 '안전불감증'
비용 아끼려 안전 포기…참사 교훈 그때 뿐 값싼 외장재 '드라이비트'가 불쏘시개 역할 화재 키우는 스프링클러 오작동 계속 반복 계단 출입문이 방화문이 아닌 일반문 여전 불법 주차, 복도에 물건 싸놓기 '단골 원인' "곳곳 병폐…안전시스템 대대적으로 손봐야" 【서울=뉴시스】이예슬 기자 = 지난 21일 제천 스포츠센터에서 불이 나 29명이 목숨을 잃는 대형참사가 발생하면서 또 다시 '안전불감증'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인명피해 규모가 이처럼 커진 것은 저렴하다는 이유로 쉽게 불에 타는 마감재를 사용한데다 스프링클러가 작동하지 않아 불길이 순식간에 건물 전체로 번졌기 때문인 것으로 드러났다. 건물 앞 불법 주차로 소방차가 단기간에 진입하지 못한 점도 피해를 키웠다. 2014년 세월호 침몰사고 이후 안전사고 예방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커다란 인명피해를 불러온 안전사고는 끊이지 않고 있다. 개인의 안전의식 고취와 더불어 철저한 관리감독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비용 절감하려 안전 포기 전문가들은 안전보다 눈 앞의 경제적 이득을 우선 순위로 하는 행태가 안전사고를 반복해서 야기한다고 꼬집는다. 안전시설을 갖추려면 돈이 들 수밖에 없지만 '설마 사고가 나겠어'라는 안일한 대응이 화(禍)를 불러온다는 것이다. 비용을 아낀다며 저가 하도급을 고집하는 방식도 안전 문제를 경시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21일 화재가 발생한 제천 스포츠센터 건물 역시 이러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이 건물에는 가연성 외장재 중 하나인 드라이비트(Drivit)가 사용됐다. 2015년 1월 5명의 사망자와 125명의 부상자가 발생한 경기 의정부의 아파트 화재 사고도 드라이비트가 원인으로 지목된다. 드라이비트는 건물 외벽에 접착제를 바르고 단열재를 붙인 뒤 유리망과 마감재를 덧씌우는 방식의 단열 시공법이다. 건축기간과 비용을 절약할 수 있지만 스티로폼 등 저렴한 재료를 쓰다보니 화재에 취약하다는 게 큰 단점이다. 박종국 시민안전감시센터 대표는 "글라스올 같은 유리섬료나 광염재는 1000도가 넘는 열에도 견디지만 가격이 비싸 왠만하면 사용하지 않는다"며 "드라이비트처럼 값이 싸고 시공방법이 쉬운 일체형 마감공법을 썼다는 것이 문제가 된 것 같다"고 진단했다. 박 대표는 "건물 내외부 단열 시공 등 마감 공정은 건축자 입장에선 후속공정"이라며 "건축비를 고려해 값싸고 손쉬운 공법을 사용하게 되는 경향이 있는데다 저가 하도급으로 안전문제가 경시되기 쉬운 구조"라고 설명했다. 올해만 일곱번이나 반복된 타워크레인 사고도 비용 절감을 위한 '위험의 외주화'가 초래한 비극이라는 게 중론이다.
◇앞선 사고 보고도 관리 허술 엄격한 안전검사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도 사태를 키웠다. 이 건물은 불이 시작된 이후 모든 층에서 스프링클러가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알람밸브가 폐쇄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많은 화재 사고에서 스프링클러가 오작동해 사상자가 많이 생긴 점을 감안하면 관리 감독이 철저해야 하지만 여전히 허점 투성이다. 스프링클러는 화재 발생시 알람밸브의 압력이 떨어지면 배관이 열리며 작동한다. 이 밸브가 잠겨 있어 시설을 갖춰놓고도 제대로 작동이 되지 않았다. 안전당국이 불시에 검사를 하지 않고 미리 건물주에게 조사 시점을 통보하다보니 벌어진 인재(人災)다. 지난 2월 44명이 목숨을 잃은 경기 화성 동탄 메타폴리스 화재에서도 화재경보가 울리지 않고 스프링클러도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이 큰 비판을 받았다. 홍우영 세종대 국방시스템공학과 교수는 "매번 대형사고가 반복되는 이유는 스프링클러가 작동되는지, 소화전은 잘 관리되고 있는지 등 감독이 꼼꼼히 안 되고 있기 때문"이라며 "건물을 다 보지 않고 샘플로 몇 군데 보는 식으로는 관리 감독이 잘 될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조원철 연세대 환경시스템공학과 명예교수는 "지금은 안전점검을 나간다고 건물주에게 사전 통보하는 방식인데 불특정 시간에 점검을 할 수 있도록 제도화해야 한다"며 "현재는 스프링클러 필수 등 안전기준을 건물층수 및 건축면적을 기준으로 세운다. 미국 등 선진국처럼 건물을 불특정다수가 사용하는지, 근처에 주유소가 있는지 등 건물 용도나 상황에 따라 기준 평가를 달리하는 방법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1층 문이 방화문이 아니어서 불이 더 크게 번진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이 역시 2015년 사망자 5명, 부상자 125명이 나온 의정부 아파트 화재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공하성 경일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의정부 아파트 화재 때 1층에서 2층 올라가는 계단 출입문이 방화문이 아닌 일반문이었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라며 "방화문은 철문이라 투박하고 돈이 더 드는데 안전은 뒤로한 채 외관이나 미관, 편리성만 고려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공 교수는 "유사 사고가 생겨도 원인 파악을 제대로 하지 않는 것 같다"며 "개정된 법이 이미 지어진 건물에 소급 적용되지 않고 있는데 기존 건물에 대해서도 강화된 규정을 적응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불법주차·무단적재…사고 키우는 병폐 끝없이 되풀이 좁은 도로 양 옆에 불법주차된 차들로 소방차가 현장에 진입하지 못했다는 점도 진압의 골든타임을 놓치게 한 원인이라는 분석이다. 소방당국은 사고 당일 현장 브리핑에서 "45% 경사로 사다리를 펴야 하기 때문에 공간이 있어야 했고, 이 때문에 주차된 차량을 이동하는 조치가 필요했다"며 "차량 4대를 견인하면서 늦어졌다"고 밝혔다. 소방차 사다리가 펴지지 않으면서 인근에 있던 청소업체의 사다리차가 건물 안에 있던 3명을 구조하기도 했다. 홍 교수는 "건물 밖 소방도로나 건물외벽 소화전 앞에 주차를 했다면 해외에서는 벌금이 어마어마한데 우리나라는 처벌 수위가 약하다. 벌금을 더 부과하고 홍보도 많이 해야 한다"며 "시민들의 안전의식도 중요하고 법을 어겼을 경우 확실히 벌을 줘야 법을 지킬 필요성을 느낄 것"이라고 강조했다. 복도에 물건을 쌓아놓는 것은 소방법 위반인데 법이 잘 지켜졌는지에 대해서도 조사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일상 생활에서도 아파트나 상가 건물 복도에 물건을 적재하면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편의상 법을 어기는 경우가 흔하다는 것이다. 조 교수는 "2층 여성 사우나실에서 비상계단으로 나오는 통로가 잘 확보됐는지도 조사가 필요하다"며 "여타 화제에서도 비상계단 앞에 물건을 적재해 문이 안에서 열리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고 말했다. 질주하던 트럭의 브레이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벌어진 창원터널 앞 폭발사고는 과속 및 과적에 둔감한 우리 사회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줬다. 세월호 참사라는 충격적 사건을 접하면서 안전시스템을 대대적으로 손봐야 한다는 공감대는 형성됐지만 갈 길은 요원하다. 오랜 세월 이어져 온 안전불감증이 한 순간에 치유되기엔 우리 사회 곳곳에 병폐가 많이 남아서다. 시스템을 구축하고 법을 강화한다고 해도 관습에서 탈피하기란 쉽지 않은 노릇이다. 박 대표는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가 안전사고 방지를 위한 시스템을 갖춰가고 있지만 현장은 여전히 안전불감증이라는 구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