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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인, 직업별 평균수명 최하위…"감독님, 건강도 챙기세요"

등록 2018-01-02 09: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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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고승민 기자 = 1일 오후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17-2018 정관장 KBL 서울 삼성 대 창원 LG 경기, LG 현주엽 감독이 작전지시를 하고 있다. 2018.01.01.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박지혁 기자 = “우승의 기쁨과 공은 선수들의 몫이다. 감독은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는 자리다.”

스포츠는 승리라는 열매를 두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겨야 하는 전쟁 같은 무대다. 물론 정해진 규칙은 있다. 승리만 의미를 갖는다. 승장이 명예와 높은 연봉, 스포트라이트를 독차지하는 반면 패장은 우울하다. 어깨가 축 처진다. 자리에 대한 불안감도 크다. 평생을 승부사로 사는 그들에게 지는 건 죽는 것만큼 참기 힘들다.

자연스레 매 경기 피 말리는 승부를 펼치는 감독들의 스트레스 지수는 상당하다. 수차례 우승을 이끈 명장들마저 때때로 “감독이고 뭐고 다 그만두고 편하게 쉬고 싶다”는 말을 습관처럼 하곤 한다. 건강의 최대 적은 스트레스다. 이제 감독들의 건강을 챙겨야 한다.

▲최대 적이 스트레스인데…

지난해 10월 프로농구 미디어데이에서 유재학(54) 현대모비스 감독은 추일승(54) 오리온 감독에게 “스트레스 받지 말고 건강 잘 챙겨라”고 했다. 둘은 1963년생 동갑내기로 1986년 실업농구 기아자동차 입단 동기다. 주축들이 대거 이탈해 저조한 성적이 예상된 오리온의 상황을 감안해 유 감독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건넨 한 마디였다. 경기에서 지는 게 얼마나 힘들고 많은 스트레스를 안겨주는지 잘 알기에 할 수 있었던 조언이었다.

미국에서 자국 5대 프로스포츠(야구·축구·농구·아이스하키·미식축구) 종목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감독의 지도력이 성적에 미치는 영향이 가장 큰 종목은 미식축구(40%)다. 농구(25~30%)가 그 다음이다. 프로농구 감독들은 그만큼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클 수밖에 없다. 빠른 경기 흐름에서 올바른 결정을 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지는 건 생각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다.

시즌만 되면 몸이 상하는 지도자들이 많다. 스트레스를 풀어야 하지만 딱히 없다.

해설위원으로 있다가 올해 4월 창원 LG의 지휘봉을 잡은 현주엽(42) 감독은 요즘 낯빛이 변했다. 편안한 마음으로 시청자들에게 즐거움과 정보를 전달하는 입장에서 코트의 중심에 섰다. 요즘 흰머리도 많아졌다. 술 생각이 날 법도 하지만 시즌 중에 팀 성적마저 좋지 않으면 남의 나라 이야기다.

이상범(48) 원주 DB 감독은 과거 안양 KGC인삼공사에서 지휘봉을 잡았던 때, 일부러 시장 뒷골목을 찾아다녔다. 쌓이는 스트레스는 풀어야 하고, 주위 눈은 피하려다 보니 방법이 없었다. 당시 인삼공사는 리빌딩 과정에서 동네북처럼 연일 패하던 시기다. 담배로 극복하는(?) 이들도 많다. 몸에 해로운 줄 알기 때문에 다 한 번씩 끊어봤지만 시즌이 시작하면 다시 물게 된다. 그나마 덜 해롭다고 해서 최근 궐련형 전자담배가 유행처럼 번졌다.

경험이 많은 감독들은 좀 다를까. 유재학 현대모비스 감독은 20년째 감독 생활을 하고 있다. 풍부한 우승경험에 좀처럼 성적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을 것 같지만 몸은 망가질 대로 망가졌다. 비시즌 건강 검진을 통해 몸이 안 좋다는 것을 알고 술을 끊었다. 약도 챙겨먹는다. 그러나 시즌 초반 연패에 빠지자 다시 술잔에 입을 대시 시작했다.

이번 시즌 최하위에 머물러 있는 조동현(41) KT 감독은 눈 위쪽에 염증이 생겨 혹처럼 얼굴이 부풀어 올랐다. 스트레스성 뾰루지다. “처음에는 별거 아니라고 봤는데 붓기가 심해지더니 코까지 염증이 번졌다”고 했다. 많은 스트레스로 면역력이 약해지면서 악화된 것이다. 병원에서 스트레스를 받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했지만 팀은 연패에 빠졌고 주축 선수들은 하나둘 부상으로 빠져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 더욱이 이번 시즌이 계약 마지막이라 부담과 걱정은 더 크다.

지금은 현장을 떠났지만 과거 감독을 지냈던 한 인사는 “운동장을 떠난 아쉬움이 크지만 다시 찾은 건강과 심적 행복함은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 술과 담배도 끊어 몸이 젊은 시절처럼 좋아졌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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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권현구 기자 = 12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2017-2018 정관장 프로농구' 서울 SK와 원주 DB의 경기, DB 이상범 감독이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2017.12.12. [email protected]
▲스포츠 전반에 퍼진 '적신호'

지난해 10월 프로축구 챌린지(2부리그) 부산아이파크의 조진호 감독이 급성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1973년생으로 비교적 젊은 지도자였지만 극도의 스트레스에 따른 건강 악화는 나이를 가리지 않았다. 성적부진을 이유로 항상 경질 걱정을 하고 목표를 이루지 못하면 자진으로 떠나기도 한다. 그래서 감독을 ‘파리 목숨’이라고 한다. 조 감독은 클래식(1부리그) 승격을 위해 치열한 경쟁을 펼치면서 유독 심한 스트레스에 노출된 것으로 보인다.

스트레스와 과로로 건강에 위협을 받은 지도자는 한둘이 아니다.

지난 2001년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의 사령탑에 있던 김명성 감독은 성적 부담에 따른 스트레스가 겹치면서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신현종 양궁 컴파운드 대표팀 감독은 2013년 터키에서 열린 세계양궁선수권대회를 지휘하던 도중에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져 결국 사망했다. 몸과 마음이 지친 상황에서 빡빡한 일정을 모두 소화했다.

지난해 여자프로농구 KB국민은행의 서동철(49) 감독은 건강이 악화돼 지휘봉을 놨다. 급성 백혈병 진단을 받고 자리에서 물러난 이광종 올림픽 축구대표팀 감독은 지난해 유명을 달리했다. 올해 프로야구에선 김경문(59) NC 다이노스 감독 감독이 어지럼증을 호소해 1주일 동안 더그아웃을 비웠고 김태형(50) 두산 베어스 감독도 게실염으로 병원 신세를 졌다. 아픈 것을 알리지 않은 지도자들까지 보태면 건강이 안 좋은 이들은 훨씬 많은 게 뻔해 보인다.

2011년 원광대의 ‘10년간 직업별 평균 수명’ 조사에 따르면, 체육인들이 11개 직업군 가운데 10위로 최하위권이다. 체육인의 평균 수명은 69세로 1위인 종교인(82세)보다 13세나 적었다.

▲보고만 있을 수 없다

프로축구연맹은 고 조진호 감독의 일을 계기로 향후 전 구단 코칭스태프의 건강을 상세히 살피기로 했다. 지난해 10월30일 개최된 2017년 제2차 K리그 의무위원회(위원장 이경태)에서 전 구단 코칭스태프들의 건강검진 상세 결과 제출을 의무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기본 신체검사와 혈액검사뿐 아니라 심장초음파 검사 결과까지 반드시 제출하도록 할 예정이다. 그동안 선수들의 건강검진 결과는 필수 제출이었지만 감독과 코치들은 의무조항이 아니었다. 이런 분위기는 다른 종목으로 확산되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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