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의 미래⓵]원조가상화폐, 경쟁화폐·빅 브러더 협공 이중고
비트코인이 그 윤곽을 드러낸 시기도 미국의 은행간 대출 시장이 마비되며 흉흉한 소문이 빠른 속도로 확산되던 지난 2008년 8월 18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 경제가 서브 프라임 위기로 뒤숭숭하던 이날 비트코인닷오알지(bitcoin.org)라는 도메인이 모습을 드러낸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부른 미국의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가 문을 닫기 불과 한 달 전이다. 이 도메인 소유주의 이름은 사토시 나카모토. 이름만 놓고보면 영락없이 일본인으로 보이지만, 아직까지도 그 정체가 베일에 싸여 있는 그는 이어 같은 해 9월 백서를 발표한다. 바로 ‘비트코인: 피투피 전자 현금 시스템(A Peer-To-Peer Electronic Cash System)’이 그것이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9페이지에 불과한 이 짧은 보고서가 세상을 어떻게 바꿔 놓을 지 아무도 예감하지 못했다. 사토시가 다시 등장한 것은 미국 증시가 리먼브러더스 파산의 여파로 날개 없이 추락하던 2008년 11월 1일이다. 그는 암호화폐 마니아들을 대상을 보낸 한 메일에서 새로운 유형의 전자 화폐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언급한다. 이 시스템은 완벽한 피투피 기반이고, 제3의 인증기관 (trusted third party)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그는 당시 설명한다. 이 가상화폐 개발 프로젝트는 불과 일주일 뒤 오픈소스 프로젝트 지원 사이트인 소스포지(Sourceforge)에 등록된다. 이어 알리스태어 달링 영국 재무장관이 두 번째 은행 구제금융을 발표하던 지난 2009년 1월 3일, 50비트코인이 채굴 과정(mining)을 거쳐 세상에 첫 선을 보인다. 비트코인은 이처럼 출범 당시부터 위기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보여준다. 이 때만 해도 이 가상화폐의 가치는 미미했다. 출시 후 큰 주목을 받다 곧 스러지곤 하던 전자화폐의 전철을 그대로 밟는 듯 했다. 비트코인과 달러 환율을 보여주는 리버티 스탠다드(Liberty Standard)가 지난 2009년 10월 발표한 비트코인 시세는 ‘1달러=1309비트코인’이었다. 비트코인 마니아가 만든 리버티 스탠다드는 당시 이 가상화폐를 과대평가했다며 뭇매를 맞는다. 하지만 비트코인은 불과 4년여 뒤인 2013년 11월29일 ‘1비트코인=1242’달러로 그 가치가 금 1온스와 같아진다. 이어 지난해 3월2일 처음으로 금값을 추월한 뒤 현재까지 그 가격 차이를 10배 이상으로 벌렸다. 비트코인은 올해 1월14일 현재 개당 1만4102달러에 거래되고 있다. 민간이 개발한 사설 화폐가 이 정도로 빠르게 확산되고, 그 가치가 치솟은 것은 사상 초유의 일이다. 이 가상화폐가 금값을 추월한 것은 그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 금은 금본위제도 하에서 파운드화, 달러화를 비롯한 기축통화의 가치를 지지하는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당시 파운드화나 달러화를 제시하면 영국이나 미국은 금을 내줘야했다. 미국 닉슨 대통령이 1971년 브렌트우즈 체제 폐기를 선언하며 달러와 금 태환을 중지한 뒤에도 금은 여전히 안전자산의 역할을 하고 있다. 물론 비트코인이 '디지털 골드'의 위상을 차지하기 까지는 우여곡절도 적지 않았다. 대표적 악재가 지난 2014년 2월 일본의 비트코인 거래소 마운트곡스 파산이다. 이 거래소가 해킹피해로 파산하자 이 가상화폐의 시세는 20%이상 급락하며 위기론이 대두되기도 했다. 일본의 아소 다로 당시 재무장관이 “그딴 것이 오래갈리 없다”는 막말을 한 시기도 이 때였다. 아소의 이러한 발언은 기존 레거시 체제의 엘리트들이 이 가상화폐를 바라보는 시각의 일단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비트코인이 악재를 딛고 전성시대를 연 것은 크게 두 가지 때문이다. 무엇보다 달러, 유로화 등 기존 화폐를 향한 불신이 주효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 유로존, 일본 등 주요국 중앙은행이 국채를 사들여 돈을 푸는 양적완화 정책을 펴면서 이들 화폐의 가치가 급락할 것이라는 우려가 컸다. 비트코인은 금융위기 이후 깊어진 이러한 불신을 파고들며 급속히 세를 불려 나갔다.
아울러 은행을 비롯한 공신력 있는 제3의 거간(middleman)을 거치지 않고 인터넷 이용자들이 직접 송금을 할 수 있도록 한 것도 이 화폐의 확산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중앙 서버, 대형 건물을 사들이고 유지하며, 준법감시·경비인력 등을 운용하는 데 큰 돈이 소요되는 거대 금융기관의 인증을 거치지 않아 송금 비용 등을 대폭 절감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비트코인 진영은 첫 화폐를 선보인 후 험한 세월을 거쳐왔지만, 가상화폐 시장을 선도해왔다. 화폐 가치도 후발주자들에 비해 압도적이다. 하지만 차원이 다른 경쟁이 펼쳐질 2라운드를 앞두고 풀어야할 과제도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거래 처리 속도 등 비트코인이 노출해온 여러 한계를 보완한 대안 화폐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스마트 컨트랙트 기능이 강점인 이더리움, ‘디지털 환어음’으로 불리는 리플을 비롯해 모네로, 대시, 라이트 코인 등 새로운 가상화폐 수백여종이 백가쟁명하고 있다. 비트코인에서 쪼개져 나온 비트코인 캐시 등도 강력한 경쟁자다. 무엇보다, 이 가상화폐가 지닌 무정부적 성격도 미래를 불투명하게 하는 또 다른 걸림돌로 꼽힌다. 기존의 권위를 부정하고, 금융위기 이후 확장적 금융정책에 반기를 든 비트코인 진영이 세를 넓히면 넓힐수록 주요국 중앙은행이 취할 정책 선택의 폭을 제약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국경을 넘어 자유롭게 오가는 비트코인이 금융안정을 해칠 가능성을 이들은 주목하고 있다. 기축통화국인 미국이 달러 발권의 이점을 해칠 잠재력이 있는 이 가상 화폐를 언제까지 그냥 두고보지는 않을 것이라는 조심스러운 관측도 나온다. 금과의 태환이 중단된 달러 국채를 발행해 전비로 충당하고, 해외에서 생산능력 이상의 소비를 해온 미국이 패권국이 누리는 이러한 특권을 위협할 무정부주의자들의 무기를 그냥 두고 보지는 않을 것이라는 뜻이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