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 사회일반

[쪽방촌을 바꿔라③]"그만 보러오세요 "…빈곤 엿보기 '싫어요'

등록 2018-01-18 09:16:10   최종수정 2018-01-30 09:20:48
  • 크게
  • 작게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이메일
  • 프린트
associate_pic
【서울=뉴시스】대부분 에너지 빈곤층에 속하는 노인들이 모여 살고 있는 쪽방촌의 모습을 담은 포토스토리 부문 수상작. (사진: 국가인권위원회 제공) 2017.07.23

 한파·폭염 때면 무작정 들이대는 카메라…"우린 동물원 원숭이가 아닙니다"
 사생활침해 불만↑…주민 5명중 1명 '열악한 환경따른 사생활보호 미비' 꼽아
 어떻게 사는지보다 못사는 어르신 반짝 보여주기에 그쳐…"진솔한 삶 보여주길"
 
【서울=뉴시스】특별취재팀 = "겨울철 한파때나 여름철 폭염때면 무작정 카메라를 들고 와서 찍어 가시는데요. 쪽방 사람들도 사람입니다. 동물원 원숭이가 아닙니다."

 서울 용산구 동자동 등에서 15년째 쪽방촌 거주중인 김장수(50)씨는 언론 등에 의해 이뤄지는 사진·동영상 촬영이나 행정기관의 체험프로그램을 거세게 비난했다. 가난이나 비극을 극대화하려는 '빈곤 엿보기' 성격이 짙은데다 동의 없이 진행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서울시가 345개동 쪽방 4360개 거주자 2473명을 상대로 진행한 '2016 서울 쪽방 밀집지역 건물실태 및 주민의견 조사'에 따르면 주거 환경 관련 불편한 점으로 21.1%가 '열악한 환경으로 인한 사생활 보호 미비'를 꼽았다. '목욕탕 또는 샤워장 부족'(22.9%) 다음으로 많았다.

 최근 오래된 목조 건물, 한몸 누이기 힘든 방, 다닥다닥 붙은 건물, 비좁은 골목 등 도심에서 찾기 힘든 풍경이 '출사족'(사진을 찍으러 야외를 돌아다니는 사람들)에게 명소로 입소문을 타면서 사생활 침해 불만은 2014년 12.2%, 2015년 16.3%에서 2016년 급격히 증가했다.

 겨울과 여름 쪽방촌 촬영은 일종의 연례행사다. 열악한 난방시설로 추위를 견디거나 무더위와 씨름하는 모습 등을 담은 화면이 매스컴에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이같은 보도가 쪽방촌 주민들의 환경 개선 목소리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이 과정에서 쪽방촌은 시민들에게 '가난의 상징'으로 각인된다. 특히 날씨가 따뜻한 여름엔 술에 취해 길바닥에 쓰러져 있는 주민이 다른 계절보다 쉽게 눈에 띄어 쪽방촌 전체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커질 우려도 있다.

 동자동을 비롯한 중구 남대문, 종로구 돈의동·창신동, 영등포구 영등포동 등 서울 지역 쪽방촌 일대에선 겨울이나 여름이면 찍으려는 이들과 주민들간 갈등이 발생한다.

associate_pic
【서울=뉴시스】추상철 기자 = 계속되는 한파에 잔뜩 움추러든 도심속 서민들은 경제난에 힘겨운 겨울을 보내고 있다. 특히 단칸방에서 생계를 이어가는 쪽방촌 주민들의 삶은 더욱 힘겨워 보인다. 서울 용산구 서울역 인근 자리잡은 동자동 쪽방촌, 그곳에서 삶을 이어가는 주민들은 난방비를 아끼려고 차가운 방에 두터운 이불을 몇겹씩 덥고 지내고 있다.그러나 쪽방촌에 마련된 공동작업장에서 전기부품을 조립과 인형을 만드는 소일 거리로 돈을 벌고 있는 모습을 보면 그들에게도 삶의 희망이 느껴진다.  2일 오후 쪽방촌 주민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빙판길을 지나고 있다. 2017.02.02. [email protected]
최근에는 한 종합편성채널 기자가 동자동 쪽방촌을 취재하다가 이를 만류하던 주민과 몸싸움을 벌인 끝에 법적 다툼을 벌이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김장수씨는 "쪽방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보다 못사는 어르신을 반짝 보여주는데 그치고 있다"며 "동자동에선 주민 자치 조직을 만들고 협동조합도 운영하는데 이런 우리의 진솔한 삶을 봐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어려운 이웃의 아픔에 공감하자'는 취지를 앞세운 쪽방 체험프로그램도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서울 중구청은 지난해 6월 대학생 12명이 2인 1조로 쪽방 숙식을 체험하고 순찰, 후원물품 나눔, 말벗 봉사활동 등에 나서는 프로그램을 기획했다가 취소했다. 2015년엔 인천 동구청에서 쪽방촌 '괭이부리마을'에 체험관 건립 계획을 발표했다가 철회하기도 했다.
 
 종로구 창신동 쪽방촌 주민들도 2012년 홍익대 학생들이 재능기부로 벽화 39점을 그려넣은 뒤부터 구경거리가 됐다. 동대문 쪽방촌 벽화 골목으로 소문이 나면서 관광객들이 이곳을 찾아왔고 사진기를 든 관광객들은 벽화뿐만 아니라 주민들이 걸어놓은 속옷까지 찍어갔다. 좋은 뜻으로 시작했지만 결과는 쪽방촌 주민들의 고개를 젓게 만들었다.  
associate_pic
【서울=뉴시스】추상철 기자 = 계속되는 한파에 잔뜩 움추러든 도심속 서민들은 경제난에 힘겨운 겨울을 보내고 있다. 특히 단칸방에서 생계를 이어가는 쪽방촌 주민들의 삶은 더욱 힘겨워 보인다. 서울 용산구 서울역 인근 자리잡은 동자동 쪽방촌, 그곳에서 삶을 이어가는 주민들은 난방비를 아끼려고 차가운 방에 두터운 이불을 몇겹씩 덥고 지내고 있다.그러나 쪽방촌에 마련된 공동작업장에서 전기부품을 조립과 인형을 만드는 소일 거리로 돈을 벌고 있는 모습을 보면 그들에게도 삶의 희망이 느껴진다.  2일 오후 쪽방촌 주민이 담배를 태우고 있다. 2017.02.02. [email protected]

 주민들의 자치조직인 동자동사랑방 김호태 대표는 "주민 당사자의 승인을 받지도 않고 막무가내로 촬영하는 등의 행위는 쪽방촌 주민이 아니라 그 누구에게도 해서는 안 될 행위"라며 "이를 되도록 자제해주기를 바라고 하더라도 꼭 사전에 본인 승낙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준영 시사평론가는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 못한다는 말처럼 언론이든 정부든 국민들이든 1년 365일 관심을 가져도 그분들이 가난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이벤트성으로 특정 시기에만 잠깐 관심을 갖고 곧 잊는다"며 "연민을 자극하고 도와주겠다는 취지인 것은 잠깐 관심을 갖고 대상화시키는 게 아니라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그들의 모습을 정확하게 취재해서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 평론가는 "겨울에 기사거리 없으니까 한번 써볼까 하는 식으로 접근하면 그런 기사가 나와봐야 쪽방촌분들에게는 도움이 안 된다"며 "그래서 그분들이 취재에도 응하지 않으려 하는 것이다. 자기들의 헐벗은 모습, 처참한 모습만 공개되니까 반가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그들이 가난에 이르게 된 이유와 실태, 나아가 우리 사회가 어떻게 그들에게 더 나은 환경을 제공할 수 있는지를 취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mail protected]
Copyright © NEWSIS.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이메일
  • 프린트
  • 리플
관련기사
위클리뉴시스 정기구독 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