뮬러 특검이 적폐수사를 한다면?…우리와 다른 美특검수사
【서울=뉴시스】 이현미 기자 = 문무일 검찰총장은 지난해 12월5일 "적폐수사를 연내 마무리하겠다"고 밝혔다가 청와대와 정부여당으로부터 호되게 욕을 먹었다. 심지어 일선 수사팀도 문 총장 발언에 강하게 반발했었다. 문 총장은 당시 기자회견에서 "적폐수사 마무리 시점을 특정하기는 어렵지만 내부적으로 많은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며 "수사를 길게 끌 경우 피로감이 증대할 수도 있어 수사팀 증원을 제안하고 추진 중에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청와대와 정부여당은 "아직 수사를 제대로 시작도 안했는데 도대체 총장이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며 득달같이 달려들어 비난을 쏟아부었다. 서울중앙지검도 이틀 뒤 기자들에게 연내 수사 마무리 불가 입장을 밝혔다. 결국 문 총장만 이상한 사람이 돼 버렸고, 적폐수사는 해가 바뀐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적폐수사에 대한 피로감이 존재하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당시 만난 검찰의 한 간부는 검찰 내부에서조차 적폐수사에 대한 피로감이 적지 않다고 토로했었다. 2016년 여름께부터 사실상 최순실·박근혜 게이트가 시작됐고, 검찰에 이어 박영수 특별검사팀까지 국정농단사건 수사를 벌였다. 지금 한창 진행중인 적폐수사 역시 그 연장선상에서 이뤄졌으니 여러 측면에서 피로감을 호소할 수도 있다. 이 간부는 "수사를 적당한 수준에서 끊을 수만 있다면 차라리 누군가 끊어줬으면 좋겠다"고 토로한 뒤, "하지만 계속해서 관련 사건들이 나오고 있어 마무리가 쉽지 않다. 국가정보원 태스크포스(TF)에서 넘어오는 사건들도 있고, 검찰 내부에서 수사하다가 나온 것들도 있다"고 말했다. '별건·표적·저인망식 수사' 방식은 검찰의 잘못된 관행으로 지적돼 온 만큼 나온다고 해서 다 할 게 아니라 적절한 선에서 가지치기를 하면 되지 않느냐고 묻자, 이 간부는 대뜸 "그랬다가 나중에 왜 안했느냐고 책임을 물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오히려 반문했다. 그러면서 "적폐수사를 하면서도 왜 과거에는 이 부분을 수사하지 않았느냐고 난리인데, 어떻게 이건 별건이어서 안되고, 저건 표적이어서 안되고, 그건 저인망 수사라서 안된다고 하면서 덮을 수 있겠나. 불가능한 일"이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 간부 얘기는 힘들어 죽겠다는 하소연인 동시에 사실 정치권력과 언론권력에 대한 두려움의 일단을 드러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전 정부에서 했던 검찰 수사가 문제가 됐던 게 어디 하루 이틀 일인가. 지금 하고 있는 적폐수사 또한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 적폐수사가 정권이 바뀌면 또 다른 적폐수사를 낳지 않을 것이라고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게 한국사회의 현실이다. 언론 역시 굵직한 사건들은 거의 생중계를 하다시피 하거나, 집요한 취재를 통해 검찰 수사보다 한발 앞서 보도하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검찰 수사의 잘못된 부분을 언론이 포착해 보도하기도 한다. 그만큼 검찰 수사에 대한 언론의 관심은 지대하다. 본격적인 수사가 시작되면 검찰과 기자는 일주일에 2~3번 또는 거의 매일 티타임을 통해 수사와 관련한 질의응답을 한다. 그 과정에서 검찰이 공개한 내용들이 신문의 1면 또는 방송의 메인 뉴스로 보도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거의 매일 관련 보도가 신문, 방송, 인터넷 매체 등에서 정신없이 쏟아진다. 수사팀이 꾸려진 사무실 또는 건물 앞에는 항상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고, 수사를 맡고 있는 간부들의 출·퇴근 멘트, 공개 소환자와 비공개 소환자, 압수수색 여부 등에 대해 온 국민이 실시간으로 깨알같이 소식을 접하고 있다. 2016년 늦여름부터 이런 상황이 계속되고 있으니 피로감이 없다고 하면 그게 오히려 더 이상하지 않겠는가. 미국에서도 현재 로버트 뮬러 특별검사팀이 러시아 스캔들 수사를 진행 중이지만 우리와는 상황이 판이하게 다르다. 뮬러 특검팀은 2016년 미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도널드 트럼프 선거캠프 참모들과 러시아간 내통 의혹, 트럼프 대통령의 사법방해 혐의 등에 대해 현재 수사 중이다. 지난해 5월17일 뮬러 특검이 지명되고 같은 달 19일에 본격적으로 수사에 착수했으니 8개월 이상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트럼프 캠프와 러시아간 내통이 대선 기간에 실제로 존재했고,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이 마이클 플린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수사하던 제임스 코미 전 연방수사국(FBI) 국장에게 플린에 대한 수사를 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탄핵이 불가피하다. 이런 중차대한 수사를 하고 있는 뮬러 특검이 미 언론에 노출된 것은 지난 8개월간 3~4번에 불과하다. 5월17일 특검에 지명되자 "책임을 받아들이겠다. 능력껏 최선을 다해 수사를 할 것"이라는 짧은 입장 표명과 함께 언론에 모습을 비췄었다. 같은 달 29일 뮬러 특검은 손녀의 고교 졸업식 연사로 무대에 올랐다. 그는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정식과 진실성"이라며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자리는 특검 수사와는 상관없었지만, 러시아 스캔들 수사 국면이었으니 그의 연설은 상당히 의미심장하게 받아들여졌다. 그는 2001~2003년까지 FBI 국장으로 일하면서 지켜온 직업윤리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모든 판단에 앞서 진실성을 우선시 했다. 만약 진실성이 없다면 다른 것들은 아무 의미가 없다. FBI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은 개인적으로나 조직에 대해서나 진실을 핵심가치로 여긴다"고 강조했다. 이어 6월 20~21일 미 의회에서 진행중인 러시아 스캔들 조사와 특검 수사가 충돌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상·하원 정보위원회 소속 의원들을 만나는 모습이 언론에 포착됐다. 이후 뮬러 특검의 모습을 미 언론에선 찾아보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같은 해 8월9일 미 언론들은 뮬러 특검팀이 트럼프 대통령 선거캠프 선대본부장을 지낸 폴 매너포트의 버지니아주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자택을 7월에 압수수색했다고 보도했다. 검찰이 압수수색에 들어가기도 전에 압수수색 장소에 기자들이 먼저 가 있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우리와는 달리, 압수수색을 한지 한달여가 지난 뒤에서야 언론에 보도가 된 것이다. 8개월간 뮬러 특검팀이 러시아 스캔들 수사와 관련해서 압수수색을 했다는 언론 보도는 그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런데 당시에도 매너포트의 구체적인 혐의사실에 대해선 일체 보도되지 않았다. 두달여가 지난 10월27일 미 언론들은 뮬러 특검팀이 러시아 스캔들 관련 수사대상 중 일부를 기소하고 당사자들에게 사흘 뒤인 30일 법원에 출석할 것을 통보했다는 정도의 보도만 나왔다. 기소 대상자가 누구인지도 나오지 않았는데, 이는 당사자들에게 비밀엄수명령이 내려졌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결국 매너포트와 그의 동업자 릭 게이츠, 트럼프 캠프 외교고문을 지낸 조지 파파도폴로스가 30일 법정에 출두하면서 기소자가 누군지가 명확하게 드러났다. 돈세탁 또는 거짓 진술 등 이들을 기소하게 만든 각종 혐의사실들도 이날 법정에서 확인됐다. 물론 지난 8개월간 미 언론들도 뮬러 특검팀 수사와 관련된 기사를 지속적으로 보도했다. 하지만 수사의 구체적인 내용이나 본질과 관련된 것들이 아닌 절차적인 게 대부분이었다. 예를 들면 연방 대배심을 출범시켰다거나, 어느 변호사가 특검팀에 합류했다, 또는 특검팀이 누구에게 자료 제출을 요구했다, 그리고 누구에게 소환장을 발부했다, 트럼프 대통령 측과 대면 조사 여부를 조율 중이라는 정도였다. 특히 주목할 것은 이런 종류의 기사들도 백악관 소식통, 워싱턴 정가 소식통들을 인용했다는 점이다. 8개월간 특검팀 대변인이 직접 나서 사실 확인을 해준 것은 단 2번에 불과하다. 우선 지난해 12월2일 뮬러 특검팀에서 퇴출된 FBI 요원 피터 스트르조크 관련 보도가 나오자, 피터 카 특검 대변인은 스트르조크를 같은 해 7월에 수사팀에서 배제됐다고 공식 확인했다. 스트르조크가 FBI 변호사 리사 페이지와 2015년 여름부터 2016년 미 대선 때까지 주고받은 문자메시지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바보(idiot)", "역겨운 인간(loathsome human)" 등으로 표현한 게 문제가 됐기 때문이었다. 수사의 공정성이 생명인 특검팀이 정치적으로 편향적인 수사를 하고 있다는 비판의 빌미를 제공할 수 있는 상황이었던 만큼 서둘러 특검팀 대변인이 직접 해명에 나선 것이었다. 이어 12월17일 트럼프 대통령의 정권인수팀이 사용한 이메일 수천건을 뮬러 특검팀이 확보한 것과 관련해 적법성 논란이 일자, 다시 한번 특검 대변인이 나섰다. 카 대변인은 "수사 과정에서 이메일을 확보했을 때는 계정 소유자의 동의를 받거나 적절한 형사 절차를 거친 것"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일부 언론보도는 뮬러 특검팀에서 확인해주고서도 소식통발로 보도됐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상황까지 감안하더라도 뮬러 특검은 철저하게 좌고우면 하지 않고 침묵한 채 이 사건 정점인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뚜벅 뚜벅 가고 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을 해임하려 한다는 언론보도가 쇄도할 때도 침묵으로 일관했다. 어쩌면 이제 곧 있을 트럼프 대통령 대면조사 역시 조사가 끝난 뒤에나 미 언론에 보도될지 모를 일이다. 이 때문인지 미국인들은 장장 8개월간 진행되고 있는 특검 수사에 대해서 별로 피로감을 호소하지 않는다. 정작 미국인들이 피로감을 드러내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한 수사대상자들의 언론플레이에 대해서다. 각종 인터뷰와 트위터, 성명 등을 통해 8개월간 끊임없이 트럼프 대통령 측은 FBI, 뮬러 특검팀 등을 공격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경 어느 날은 "특검 수사가 공정할 것"이라고 믿는다고 했다가, 어느 날은 "마녀사냥"이라고 맹비난하는 등 그의 성격만큼이나 종잡을 수 없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전직 검찰 고위 간부 출신의 한 법조계 인사는 "한국과 미국의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환경 차이를 떠나 뮬러 특검이 적폐수사를 한다고 '발칙하게' 한번 생각해보자. 음…과연 그가 버틸 수 있을까? 쉽지는 않을 거다"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 언론이 검찰수사를 매일 생중계 하는 것은 언론사간에 경쟁이 그만큼 치열해진 측면과 함께 검찰에 대한 강한 불신이 크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라며 "현직 대통령을 탄핵시키는 결정타를 확보했을지도 모르는 뮬러 특검팀의 수사를 오랜 기간 동안 차분하게 지켜보는 미국의 상황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수사에 대한 피로감을 조금이라도 덜 느끼려면 정치권력과 언론권력이 검찰을 놓아주는 게 한 방법일 수 있고, 그건 결국 검찰권력의 힘을 빼는 효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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