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만에 공개된 코미 자서전.…예상보다 미지근한 반응 왜?
트럼프 부도덕성 비판하지만, 결정적 한 방 부족클린턴 이메일 재수사 결정 이유도 설득력 떨어져
【서울=뉴시스】이혜원 기자 = 핵폭탄 급 충격을 안겨줄 것이라 예상됐던 제임스 코미 전 미국 연방수사국(FBI) 국장의 자서전 '더 높은 충성 : 진실, 거짓말 그리고 리더십'이 지난 17일 출간됐다. 미국 언론들은 책이 출간되기 일주일 전부터 제2의 '화염과 분노(마이클 울프 저)'가 나올 것이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더 높은 충성'의 출판사 맥밀란은 초판 85만부를 인쇄했다. 하지만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는 분위기이다. 온라인 시장에서는 인기가 높았다. '더 높은 충성'은 출간 당일 아마존의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오프라인 서점은 조용했다. CNN에 따르면 16일 자정 워싱턴DC 외교관 밀집지역 듀퐁서클의 한 서점은 대부분 카메라와 메모장을 들고 서성이는 기자들로 가득차 있었다. 코미의 책을 사기 위해 늘어선 행렬은 없었다. 현장에 있던 한 사람은 "사람보다 카메라 수가 더 많다"고 농담을 하기도 했다. 뉴욕 그리니치빌리지에서 독립 서점을 운영하고 있는 한 판매원은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물량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해 걱정했었다. 25권만 주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발매 첫날 늦은 오후까지 겨우 4권만 팔렸다"고 말했다. 이는 지난 1월 발간됐던 히트작 '화염과 분노'와 확연히 비교된다. 트럼프 대통령의 알려지지 않은 언행과 백악관 내부 권력 갈등 등을 폭로한 '화염과 분노'는 출간 일주일도 채 안 돼 11쇄를 찍었다.
'더 높은 충성'에 대한 미지근한 반응은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못하는 내용 때문으로 풀이된다. 대중들이 코미의 책을 기다렸던 이유는 이 책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의 '사이다같은' 단초를 제공할 수 있으리는 기대 때문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5월 급작스럽게 코미를 파면시킨 이유가 트럼프 대통령이 말했던 것처럼 업무 무능 및 FBI 조직 장악 실패 등이 아니라, 코미가 주장했던 것처럼 자신이 '러시아 스캔들'을 수사하고 있던 FBI 국장이라는 사실 때문이라면 이는 탄핵사유가 된다. 사법방해이기 때문이다. 코미는 실제로 지난해 6월 미 상원 정보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 스캔들'과 관련된 수사를 중단하라고 지시했고, 충성맹세를 요구했다고 진술하면서 대통령과 각을 세웠다. 로버트 뮬러 특별검사는 트럼프 대통령의 사법방해 혐의를 밝혀내기 위해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부터 제프 세션스 법무장관까지 대통령의 측근들을 조사하고 있다. 언론들은 코미가 책에서 2016 미대선 직전에 했던 힐러리 클린턴 이메일 재수사 단행에 대해 설명하고, 트럼프 대통령을 자극적으로 비판하는데 집중했다고 지적했다. 내셔널리뷰는 코미가 책에서 자신의 고상한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는 표현으로 트럼프 대통령을 저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가디언은 코미의 책에 대한 리뷰 기사의 제목을 '더 높은 충성 - 힐러리 클린턴의 이메일, 선거, 트럼프에 대한 혐오'로 뽑고 "일년 전 트럼프에 의해 해고된 FBI 국장은 선거 전 그의 결정을 정당화하려고 노력하고, 더이상 못생길 수 없는 대통령의 초상화를 그린다"고 평가했다. 코미는 책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진실에 귀 기울이지 않는 사람으로 묘사하고, 깡패 두목에 비유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이 악명높은 마피아 조직인 코사노스트라의 2인자였던 새미 더 불(새미 그라바노)과 같은 충성심을 추구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트럼프는 대통령이 되기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외모도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과의 첫 만남에 대해 그는 "얼굴은 약간 오렌지빛이며, 자외선 차단제를 바른 것으로 추청되는 눈 밑가는 흰색 반달 모양처럼 생겼다"고 설명했다. 또 트럼프의 머리카락은 가발이 아니라 진짜 그 자신의 머리칼로 보였고, 트럼프의 손이 자신의 손보다 작았다고 지적하는 대목도 있다. 책은 많은 부분을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2016 대선후보에 사과하는 데 할애했다. 코미는 2016 대선 열흘 전 클린턴 후보가 국무장관으로 역임했던 시절 개인 이메일 계정으로 국정관련 메일을 주고받은 것과 관련한 수사를 다시 시작하겠다고 밝혀 대선 판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지지율 선두를 달리던 클린턴 후보는 이 일이 있은 후 추락하기 시작했고 결국 승리를 트럼프에게 내줘야만했다. 코미는 책에서 "그녀가 나에게 화를 냈다는 걸 읽은 적이 있었는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그녀와 그녀의 지지자들에게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에 대해 더 잘 설명하지 못해서 미안하다"며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나도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돼 놀랐다. 여론조사에서 나타났듯, 클린턴이 승리하리라고 짐작했다. 내가 그런 짐작에 영향을 받아 (2016년 대선 직전 클린턴 이메일 재조사를 결정)했는지에 대해 여러번 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곤 했다. 나도 모르겠다. 분명히 의식적으로는 아니었다. 하지만 영향을 받지 않았을리 없다고 말한다면 바보일 것이다"고 서술했다.
코미는 반트럼프 성향의 언론들로부터도 외면당하고 있는 분위기다. 뉴욕타임스(NYT)의 칼럼니스트 프랭크 브루니는 '코미는 트럼프의 궁극적인 승리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코미의 책 제목은 '더 높은 충성' 이지만,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고위층의 명예를 손상시키고 있다"며 "그가 홍보하는 걸 지켜보는 건 그가 내려오는 걸 보는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워싱턴포스트(WP)의 칼럼니스트 막스 부트 역시 '나는 여전히 코미가 정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그의 자서전은 큰 실수였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코미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지난 공화당 경선에서 패한 마르코 루비오를 떠올리게 한다.루비오는 '어린 마르코'라며 자신의 작은 키를 비웃는 트럼프를 향해 작은 손과 햇볕에 탄 피부를 놀림거리로 삼았지만 결국엔 사과하고 경선에 패했다. 트럼프는 코미를 '거짓말하는 더러운 인간', '검증된 누설자&거짓말쟁이', '역사상 최악의 FBI국장'이라 칭하고 있다. 코미도 이에 트럼프를 '여성을 고깃덩어리로 생각하는 사람', '대통령이 되기에 도덕적으로 부적합한 사람'라고 부르며 그의 손 크기와 오렌지 색 피부를 불평하고 있다. 코미의 부주의가 결국 트럼프를 돕고 있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