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주 아트클럽]'연필 회화'의 정점...차영석 '우아한 노력'
이화익갤러리에서 12회 개인전...20일~7월14일까지패턴으로 채운 사물들 한땀한땀 수놓은 수예품같아하루 10시간 꼬박 작업..."그리는 순간 가장 행복"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기자 = 주위는 적막하다. 사람은 커녕, 발자국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경기 파주의 외딴 작업실. 아침 9시, 열고 들어온 문은 어둑어둑해질때까지 침묵에 빠진다. 책상에 앉은 남자는 꼼짝도 안한다. 적막을 깨는 건 연필. 뽀족하게 무장한 연필과 샤프가 기계처럼 움직이며 분주하다. 한개의 연필이 힘이 빠질때마다 새로운 생명이 빛을 발한다. 용무늬 화병, 운동화, 찻잔, 분재가 살아나 자리를 지킨다. 그렇게 하루 10시간 꼬박 앉아 혼자인 남자는 늘 "외롭다." 말 한 마디를 안하고 지나는 하루, 이렇게 매일이 반복된다. 힘들고 지친다. 그래도 멈출수 없다. "지치지만 않으면 세상에 보일 수 있는 자리가 있다. 그런 순간이 자주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 때문에 날마다 늘 노력한다." 그 순간이 왔다. 파주의 작업실에서 연필과 씨름했던 그림이 서울로 들어왔다. 서울 송현동 이화익갤러리에서 초대한 전시, '차영석 개인전'이 20일부터 열린다. 차영석 작가(41). 종이위에 연필로 마법을 부리는 그의 작업은 '노동집약적'이라는 단어가 절로 튀어나온다. 2007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과 예술사를 마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과 전문사를 졸업했다. 2009년 금호영아티스트로 선발되어 금호미술관에서 첫 개인전을 연후 '연필 작가 차영석'이 됐다. 이번 전시는 12번째 개인전이다.
전시는 '우아한 노력'이라는 타이틀을 달았다. 외로움을 견디고 나와서일까. 전시장에 조명을 받은 그림은 모두 기세가 당당하다. 그림이 아니라 장인이 만든 수예품같다. 평면의 그림인데 마치 비단실로 한땀한땀 짜올린 수예처럼 도톰하게 올라와 융단같은 부드러움까지 전한다. 오로지 연필로만 수놓은 작업. 작가가 되기전 경험이 한몫했다. "대학교 1학년때부터 미술학원 강사로 아르바이트를 오래 했어요. 그때 석고 소묘를 진절머리가 날 정도로 했었죠. 질려서 다시는 안하겠다고 했는데.... 다시 연필을 잡게됐죠." 대학을 8년 다녔다. 한예종 입학전에 영남대학교 서양화과에 들어갔다. 서울에서 대구로 간 유학생. 21살때부터 돈을 벌어야 했다. 아르바이트로 번 돈으로 학비를 냈다. 그렇게 학교를 다니던 4학년때. 미술학원 강사를 하며 입시를 치뤘고, 한예종에 다시 입학했다. 한예종은 영남대와 달랐다. 과제도 많지만 트렌디한 현대미술을 쏟아붓는 교육에 힘이 들었다. 처음에 잘나가는 현대미술 기법을 따라했다. 화가가 되고 싶었는데, 내가 뭘 잘할수 있을까 고민이 됐다. 대학교 3학년, 그때 미술시장 호황이었다 동기들은 그림도 팔고 돈도 버는데, 과제하느랴 시간을 보냈다. 주변에 물었다. "나는 뭘 잘하는 것 같냐" "그림 그림는걸 제일 잘하는 것 같아" 그 말들에 힘을 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용돈이 없다. 재료값은 만만치 않은 상황. 친하게 지낸 학교 판화실 조교가 쓰다남은 판화지를 건넸다. 그렇게 시작됐다. 종이에 연필로 그림을 그리게 된 배경이다.
종이에 연필로 그려보자고 마음 먹자 학교 주변 동네가 달리 보였다. 일상적인 사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려보면 재미있겠다"고 시작했지만 습관이 방해했다. "어떻게 그리느냐" 이 화두는 새로운 방식을 꺼내왔다. 첫째 지우개를 쓰지말자(수정하지 말자), 둘째 시점을 무시하자, 셋째 빛과 그림자를 그리지 말자. "사물을 그대로, 못 그려도 되니까 그대로 그리자'고 시작한 그림은 처음엔 어색했다. 속도도 느렸다. 안해본 방식이어서 맞다, 틀리다 구분도 안됐다. "하지만 그 나름대로 묘한 맛이 있더군요." 2005년부터 그리기 시작한 '건강한 정물'시리즈 첫 출발이다. 그리기라는 어떤 특별한 행위가 아닌 습관처럼 몸에 베인 것들로 어떤 의식적인 개입을 배제하고 특정한 구성 원리 없이 하나하나씩 자연스럽게 더해나간 작업이다. 반복은 힘이 세진다. 거칠던 초기작은 점점 부드러워졌다. 더 세밀해지고 더 밀착감이 생겼다. 연필의 스킬도 강렬하다. 직선으로 쓰느냐, 돌려서 쓰느냐에 따라 플랫하고 오돌토돌하게 변신한다. 이번 전시는 차영석 '연필 회화'의 결정판이다. 13년간 익숙해진 기법, "이 방식대로 잘 그려보자"며 한판승부를 냈다.
작가는 사람들이 각자 다양한 이유로 수집하는 사물들에 집중한다. 여행지의 추억을 담기위해 구입한 기념품들, 건강을 위해 마련한 숯, 개인적 취향으로 모은 오브제, 취미 생활인 화초 등 다분히 개인적인 관심과 취향에 따라 수집한 사물들을 화폭에 그려낸 작가는 "일상 사물들은 단순한 개인 욕망의 발현 일 뿐 만 아니라 그에 영향을 미치는, 개인이 속한 시대와 사회의 모습을 반영한다"고 했다. 이번 전시 '우아한 노력'은 시대적 상황에 따라 변화하는 수집품들을 관찰하고, 채집하여 그린 작품이다. 타인의 수집품들을 취사선택하여 한자리에 모아 그것으로부터 구성한 화면은 기본적으로 우리시대와 사회의 모습을 담은 정물화나 풍경화와 같다고 볼 수 있다. 이전의 차영석 작가의 작품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시작하였지만 '우아한 노력'에서 보여주는 작품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타인의 수집품을 통해 세계를 관찰하던 시선을 자신의 내부로까지 확장시켜서 수집품들을 그대로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취사선택하고, 그 표면을 차영석 작가의 개인적 취향인 세밀하게 선묘하는 패턴으로 가득 채웠다. "사물의 디테일을 통해서 ‘우아한 노력’의 실체적 의미를 제시하고, 사물을 표현하는 본인의 습관적인 작업방식과 개인적 취향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는 계기를 마련해보고자 한다"는 의미다.
만날 사람은 만난다. 외롭고 지쳐도 포기하지 않고 전업작가로 살아온 그는 20여년전 무리에서 봤던 큐레이터를 화랑대표로 다시 만나 개인전을 열어 감개무량이다. "1997년 영남대학생시절, 버스를 빌려 서울에서 열리는 바스키아 전시를 보러왔었죠. 당시 갤러리현대 큐레이터였던 이화익 대표가 작품설명을 해줬거든요. 그때부터 이화익 대표를 알고는 있었죠." 이화익갤러리 이화익 대표는 "10여년 전부터 작가의 작품을 보고 있었다"면서 "급변하는 미술시장속에서 종이와 연필이라는 소재로 차별화된 작품을 선보여온 작가의 이번 전시는 작가의 연필 회화 작품의 정점을 느낄수 있을 것"이라며 작품을 보증했다. 민병직 미술평론가는 "차영석의 우아한 노력은 지금까지 나름의 원리와 방향성으로 지속해온 작가 작업의 궤적들의 발전 확장인 동시에 그동안의 작가의 그릭 행위를 얼마간 종합시킬수 있는 계열화된 연작이라 할수 있을 것 같다"며 "작가의 그리기 행위에 대한 좀 더 자신감있고 당당해진 어떤 면모들. 더욱 더 유연하게 무르익은 자세와 태도들이 느껴진다. 그런면에서 작가만의 고유한 그리기의 문법과 스타일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평했다. 차영석의 '연필 그림'은 '연필 화가'로 유명했던 고 원석연(1922~2003)을 떠오르게 한다. 일생을 연필 한자루에 맡기고 다른 양식의 작품행위를 거부했던 화가로, 특히 개미의 생태계를 조형화한 '개미 화가'로 불리기도 했다. 차영석은 '연필 드로잉'이라는 시선을 거부한다. 그에겐 평면 회화다. 연필로 그렸지만 드로잉은 아니라는 얘기다. 드로잉은 진짜 그림이 나오기전 밑그림같은 개념인데, 그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실제로 그림을 보면 안다. 그림은 자기와의 싸움이다. 특히 차영석의 연필 회화는 한방이 안된다. 몰아쳐서 나올수 없다. 시간이 만든다. 왜 이렇게 그릴까. "이유는 없어요. 왜?...그림 그릴때 그 순간이 행복해요. 지금은 제 삶의 일부죠. 이걸 해야지만 차영석이 존재하는 상황이고 내 자체 생활입니다. 그림을 통해 세상을 바꾸고 싶다? 어렸을때 그런 호기도 있었죠...연필로 작업은 끝이 아니에요. 하나의 과정이죠. 미래를 예상할수 없는데 힌트는? '지금'이 중요합니다. 지금 어떻게 노력하고 있는지, 우아한 노력을 얼마만큼 하는지 달라질테니까요." 전시는 7월14일까지.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