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무관용' 이민정책 논란 격화…부모자녀 강제격리는 일단 중단
【서울=뉴시스】 이혜원 기자 =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불법이민자 '무관용 정책'을 둘러싼 논란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정작 트럼프 대통령은 민주당을 비난하면서 이민법안의 통과를 촉구하고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의 강공 드라이브가 성공할 지 여부가 주목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후보시절부터 강력한 이민정책을 공언해왔다. 지난 1월 취임 후 첫 연두교서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30년 넘게 미국 정부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실패해 왔다. 의회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기관이 될 수 있다"며 "구식 이민법을 개혁하고 21세기에 맞는 이민 시스템을 도입할 때"라고 말하며 의회에 4대 안을 제안했다. 그가 제안한 것은 ▲다카(불법체류 청년 추방 유예 프로그램·DACA) 수혜자인 드리머 180만 명에 대한 시민권 제공 ▲멕시코 국경 장벽의 설치 ▲비자 추첨제 종료 ▲연쇄이민 폐지다. 트럼프 대통령의 제안을 받은 의회는 현재까지 어떠한 이민법도 통과시키지 못했다. 공화당과 민주당이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부분은 멕시코 국경장벽 설치를 위한 비용 부담이다. 공화당은 멕시코 국경장벽 건설 비용을 예산안에 포함시키자고 주장하고 있지만, 민주당은 이를 절대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이 대립은 결국 연방정부의 셧다운 사태를 일으키기도 했다. 의회에서 이민법안 논의가 제자리걸음을 거듭하자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5월 모든 성인 밀입국자를 기소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무관용 정책(zero-tolerance policy)'을 발표했다. 제프 세션스 법무장관은 지난 5월 7일 '무관용 정책'을 공식 발표하면서 "만약 국경 너머로 불법 밀입국한다면 우리는 당신을 기소할 것이다. 아이들과 함께 밀입국해도 기소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법률에 따라 아이는 가족과 헤어지게 된다"고 말했다. '무관용 정책'이 문제가 되는 점은 부모와 함께 입국한 아이들이 결국 혼자 구금시설에 머물러야 한다는 것이다. 이전까지는 미성년 자녀와 함께 밀입국을 한 부모의 경우 우선 석방한 뒤 재판을 거치도록해왔기 때문에 가족이 헤어지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미국 법상 아이들은 기소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부모가 기소될 경우 이들은 미 보건복지부(HHS) 소관으로 넘어가게 된다. 법적으로 미국으로 혼자 국경을 넘은 어린이들은 3일 이내에 보건복지부에 의해 운영되는 구금시설에 보내져야 한다. 이후 이민절차가 마무리 될 때까지 그들의 친척이나 후원자를 찾아야 한다. 이렇게 부모와 헤어져 구금시설에 보내지는 아이들이 하루에도 수십명씩 발생하고 있는데 문제는 미국정부가 이들을 온전히 수용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백악관에 따르면 '무관용 정책' 도입 후 2300명 이상의 어린이들이 그들의 부모와 떨어져 임시시설로 보내졌다. 하지만 시설은 부족했고, 열악했다. 지난 17일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일부 민주당 의원들은 아버지의 날을 기념해 텍사스 주 남부 매캘런에 위치한 구금시설을 방문했다. 이곳에는 약 1100명의 불법체류자들이 머물고 있으며, 이 중 200명이 미성년자로 추정된다. 금속울타리로 둘러쌓여 있는 철창 한 칸에는 20명 남짓의 아이들이 머무르고 있었다. WP는 '커다란 창고' 같았다고 묘사했으며, 일부 의원은 '동물 우리'같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들은 동행자가 없는 17세 이하의 소년, 17세 이하 소녀, 가족이 있는 남자 가장, 가족이 있는 여자 가장들로 분류돼 있었다. 이들에게는 포일 담요(foil blankets)와 얇은 매트리스 패드가 지급됐다.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서 올라오는 한기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보온재였다. 또 이들에게는병에 든 생수와 음식이 제공되고 있었다.
걸음마를 시작하는 영유아들도 부모와 헤어져야했다. AP통신에 따르면 현재 텍사스 남부에는 영유아 전용 구금시설 세 곳이 운영 중이며, 수 백명의 영유아를 이주시키기 위한 네 번째 시설이 마련 중이다. 영유아 전용 구금시설을 방문한 변호사들과 의료진들은 그곳을 '정서적인 위기에 처해있는 미취학 아동들이 울고 있는 놀이방'이라고 묘사했다. 그들은 시설은 깨끗하고 안전했지만 부모가 어디있는지 모르는 아이들은 울고 있었고, 몹시 감정적이었다고 말했다. AP통신은 아이들에게 지속적인 정신적 충격을 주는 것에 대한 우려로 고아원 운영을 중단한 지 수십년이 지난 지금, 미 행정부는 중앙아메리가 아기들을 부모로부터 분리하는 새로운 제도를 시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텍사스 남부의 소아과의사 마샤 그리핀은 "영유아 전용 대피소가 문제가 아니라, 아이들에게서 부모를 테려가는 것이 문제다"라고 꼬집었다. 샌프란시스코의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초기 트라우마 치료네트워크를 운영하고 있는 얼리샤 리버먼은 "수십년에 걸친 연구는 조기분리가 영구적인 정서적 손상을 일으킬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언론을 통해 부모와 헤어져 울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공개되자 트럼프 대통령의 부인인 멜라니아 트럼프 여사를 시작으로 역대 영부인들이 '무관용 정책'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민주당과 공화당이 한 목소리로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정책을 비난했고, 민심은 요동쳤다. 멜라니아 여사는 대변인을 통해 "아이들에게서 부모를 떼어놓는 걸 보고싶지 않다. 우리는 모든 법을 지키면서도 마음으로 통치하는 나라가 돼야 한다고 믿고 있다"고 밝혔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부인 로라 부시 여사는 WP 기고문을 통해 부모로부터 아이들을 격리하는 것은 잔인하고 비도덕하다고 강조했다. 미셸 오바마 여사도 트위터를 통해 부시 여사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혔다. 퀴니피액대학의 전국 여론조사결과 미국 유권자의 3분의2가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정책을 반대했다. 테드 크루즈(텍사스) 공화당 상원의원은 '무관용 정책'을 당장 멈춰야 한다며 추가적인 범죄 행위를 저지르지 않거나, 아이들에게 해를 입히지 않는 한 밀입국 가족이 함께 지낼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긴급 발의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 중인 '무관용 정책'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고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 책임을 민주당에 돌리며 이민법안의 통과를 촉구했다. 결국 아이들이 의회를 압박하는 수단이 된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9일 트위터를 통해 "민주당원들은 범죄를 신경 쓰지도 않는다. 불법이민자들이 얼마나 나쁜지 상관없이 우리나라로 쏟아져 들어와 들끓기를 원한다며 "민주당이 문제다"라고 적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민주당을 엘살바도르의 최대 범죄조직으로 최근 몇 년간 미국에서 세력을 급속히 확장한 갱단 'MS-13'에 비유하기도 했다. 같은날 트럼프 대통령은 하원 공화당 의원들과 비공개회의를 갖고 행정부 요구에 맞는 법안을 통과시키면 그들을 '1000%' 지지하겠다고 맹세하며 이민법안의 조속한 통과를 촉구했다. 비공개 회의 후 백악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가족분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법안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라지 샤 백악관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국경장벽을 세우고, 법적 허점을 없애고, 비자추첨제를 취소하고, 연쇄이민을 막고, 국경에서의 가족분리 문제를 해결하는 법안을 지지한다"며 "그는 지도부에게 함께 한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법안 통과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국경장벽 비용을 안정적으로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경에서의 가족분리 문제에 대한 책임을 민주당에 돌리고 있는 것도 결국엔 민주당에 대한 여론을 악화시켜 법안 통과를 위한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민주당의 입장은 확고하다.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대통령의 서명으로 직접할 수 있는 일이다. 대통령이 서명 하는 것이 그렇게 쉬울 때는 입법이 이뤄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미 정치전문매체 더 힐은 행정부의 '무관용 정책'에 대한 책임이 지금처럼 의회가 아니라 트럼프를 계속해서 압박하길 민주당은 바라고 있다고 풀이했다.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0일 부모와 자녀를 분리하지 않도록 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으나 국경강화를 위한 '무관용 정책'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해 문제의 본질을 해결하지는 못했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