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故김창호 대장 누구…"히말라야 연구해 후배들 디딤돌 되려"
국내 최초로 히말라야 14좌 무산소로 등정"산은 사람 힘으로 올라야 한다는 기본철학""기록 욕심은 없어…중요한 건 등반 그 자체""원정 등반 비용, 아내가 직접 마련해주기도""말로 표현을 할 수 없을 만큼 고마운 사람"실종 박영석 대장 수색작업 땐 네팔행 자처2013년 에베레스트에서 대원 떠나보낸 뒤"'이것이 현실인가' 하는 힘든 마음" 토로"예측할 수 없는 위험 존재하기에 등반해"
지난 2013년 '한국 에베레스트-로체 원정대'의 히말라야 에베레스트(8848m) 무산소 등정에 나선 김창호 대장(49)이 당시 뉴시스와의 인터뷰에서 털어놓은 등산 철학이다. 이후 국내 최초로 히말라야 14좌 무산소 등정에 성공한 김 대장은 5년 뒤인 13일 안타깝게도 히말라야 등반 도중 눈 폭풍에 따른 산사태에 휩쓸려 사망했다. 13일(현지시간) 네팔 히말라얀타임스 신문은 구르자히말산을 등반하던 김 대장 등 5명의 한국인과 네팔인 4명 등 최소 9명이 숨졌다고 전했다. 1988년 서울시립대 무역학과에 입학한 뒤 산악부에 들어가게 된 김 대장은 이후 전문 산악인의 길에 들어서 1993년 파키스탄 그레이트 트랑고타워(6284m) 완등으로 히말라야에 올랐다. 2005년 7월14일 낭가파르바트(8156m)부터 2013년 5월20일 에베레스트(8848m)까지 히말라야 8000m급 14좌를 산소통 없이 완등했다. 국내에서는 고(故) 박영석 대장과 엄홍길 대장 등에 이어 여섯 번째로 히말라야 14좌를 모두 완등한 산악인으로 꼽힌다. 김 대장은 산소가 평상시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한 에베레스트 정상을 향해 산소통도 없이 발길을 내딛기에 앞서 "신기록을 앞두고 있기는 하지만 처음부터 14좌 완등을 목표로 여기까지 온 것은 아니다. 기록에 대한 욕심도 없다. 중요한 것은 등반 그 자체"라고 밝혔다. 당시 결혼 1년 차 새신랑이었던 김 대장은 "대학 산악회 후배였다"고 아내를 소개했다. 그는 "항상 힘이 되는 말을 해준다. 지금도 조경설계 일을 하고 있는데 지난해(2012년)에는 원정 등반 비용을 아내가 직접 마련해주기도 했다"며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고마운 사람"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특히 2013년 5월 에베레스트 등정 때 하산 도중 서성호 대원이 숨지는 사고를 겪었다. 그는 귀국 후 등반 과정을 밝히는 기자간담회에서 "한 명을 가슴에 묻고 오게 돼 안타깝다"고 운을 뗐다. 이어 "이번 등반이 힘들었지만 해낸 것에 대한 뿌듯함과 동료 대원과 같이 돌아오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함께 남아있다. '이것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현실인가' 하는 힘든 마음이 있다"며 "에베레스트를 등정했던 것보다 서성호 대원의 희생으로 큰 슬픔에 잠겨 지냈다"고 토로했다. 그는 "장례 절차를 마치며 조용히 지냈다. 힘든 감정이 몰려와서 술 자리는 일부러 피했다"면서 "여러모로 힘든 기간이었다"고 동료 대원의 죽음 이후를 회상했다. '목숨을 걸고 등반하는 것은 무모하다'는 일각의 냉소에 대해 그는 "어떤 일에도 생명보다 가치 있는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산은 사람의 힘으로 올라야 한다는 것이 기본 철학이다. 에베레스트 8848m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등반할 수 있는데, 유산소로 등정하는 것은 가치를 떨어뜨리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2011년 10월 안나푸르나에서 실종된 박영석 대장의 수색작업을 위해 네팔행을 자처하기도 했다. 이처럼 말 그대로 목숨을 건 고행길에 나선 원동력은 "산에 대한 호기심"이라고 했다. 그는 "산자락에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그런 새로운 것을 접하는 게 좋았다. 높이 올라갈수록 호기심과 두려움이 생긴다"며 "사람 몸에 어떤 변화가 오는 것에 대해서 호기심과 두려움이 생긴다. 예측할 수가 없는 위험이 존재하기에 등반도 하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기록 욕심에 연연하지 않는다던 그는 "반드시 이뤄야겠다고 마음먹은 최종 목표는 없다. 자연스럽게 산악인이 됐고 어찌어찌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을 뿐"이라며 "기록에 대한 욕심을 내기보다는 공부를 더 하고 싶다. 국내에는 히말라야를 연구하는 인력이 많지 않은데 내가 그 역할을 해서 우리 후배 산악인들을 위한 디딤돌이 되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