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지, 노래도 감성도 성숙 그 자체···청춘의 노스탤지어 '혜화'
그룹 '에이핑크' 멤버 정은지(25)가 17일 발표하는 세 번째 솔로 앨범 '혜화'의 제명은 그녀가 다닌 고등학교 이름에서 따왔다. 부산 명장동 혜화여자고등학교. 고교생 시절 가수의 꿈을 품었고, 그 때가 자신의 청춘을 대변하고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번 앨범 제목 '혜화'에 다른 뜻의 음가는 이미 존재한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뜻은 정은지와 소속사 플랜에이 엔테테인먼트 직원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혜는 별 반짝인다는 한자 '혜(暳)', 화는 꽃 '화(花)'로 '별 반짝이는 꽃', 즉 '이제 막 꽃을 피우며 반짝이는 청춘들을 소중하게 지칭하는 말'이다. "제 청춘의 시작은 혜화여자고등학교에 다닐 때였어요. 그래서 혜화가 마음에 들었죠"라며 웃었다. 1980년대에 청춘을 보낸 40대 이상이 '혜화'를 접하면서 떠올릴 노래는 포크그룹 '동물원'의 '혜화동'이다. "우린 얼마나 많은 것을 잊고/ 살아가는지"라는 노랫말을 흥얼거리게 만드는 감수성 짙은 노래다. 정은지의 앨범 '혜화'의 타이틀곡 '어떤가요'는 정은지가 동물원의 '혜화동'을 떠올리면서 작업한 노래는 아니다. 그런데 고향 부산을 떠나, 홀로 생활하며 느낀 정은지의 감정선에서 출발한 이 노래는 '나의 살던 곳, 그곳은 지금 어떤가요'라며 나지막이 묻는다. 80년대 청춘이나, 2010년대 청춘이나 아련한 감정선의 기반은 그리움이다. 아이돌 그룹 멤버 중 가장 성숙한 정서를 내뿜는 보컬로 평가받는 정은지는 '어떤가요' 노랫말 중 가장 귀한 구절로 '익숙해진 건 그리움뿐'을 꼽았다. "한번씩 꺼내볼 정도로 그리움이 작아지는 것이 아련하다"는 얘기다. 그러면서 자신이 존경하는 가수 양희은(66)이 한 말을 곱씹었다. "희은 선생님이 '노래를 할 때 한 구절이라도 널 울리면 부르는 것이 맞다'고 하셨는데 '익숙해진 건 그리움뿐'이, 바로 그 구절이었어요"라고 했다. 정은지의 조숙한 감수성의 씨앗은 라디오다. 부산 고향집에서 살 때 어머니가 틀어놓은 라디오에서 울려나오는 '여성시대', '싱글벙글쇼' 같은 프로그램을 듣고 컸다. 양희은은 '여성시대'를 만 19년간 진행하고 있는 장수 DJ다. "덕분에 자연스럽게 7080 노래를 많이 들었어요. '산울림' 노래 같은거요. 지금 친구들이 많이 모르는 곡을 라디오로 즐겨 들었죠. 거기서 따듯함과 위로의 정서를 느꼈죠." 정은지는 2011년 에이핑크 메인보컬로 데뷔했다. 2016년 첫 솔로 음반 '드림(Dream)'을 발매한 뒤 솔로 활동도 병행하고 있다. 작사, 작곡에 참여한 타이틀곡 '하늘바라기'로 각급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며 솔로 가수로서 성공적인 발걸음을 내디뎠다. 이번에 음반 참여도를 부쩍 늘린 정은지는 "동생의 첫 재롱잔치를 보는 기분"이라며 즐거워했다. "긴장되고 떨리기도 하고 그래요. 참여한 것이 많아서 그런지 티를 내고 싶어요. 준비하면서 에너지가 넘쳤죠. 뮤직비디오 시나리오도 제가 썼어요." 사운드 마스터링에도 신경 썼다며 요즘 음악에 자극적인 소리가 많아 따듯한 소리를 담으려고 노력했다고 뮤지션다운 면모도 뽐낸다. 다만 8곡의 수록곡 중 '어떤가요'만 쓸쓸한 소리를 낸다. 악기보다 목소리가 앞으로 나왔다. "저와 정서가 가장 어울려서 타이틀곡으로 정했다"며 미소 지었다. 동료 뮤지션들에게 가장 인기를 누린 곡은 '계절이 바뀌듯'이다. 3년 전 쓴 곡인데 싱어송라이터 선우정아, 가수 아이유가 이 곡을 가장 좋다고 했다. "제가 음악적으로 좋아하는 분들의 조언을 귀담아 듣습니다." 정은지가 대중에게 또 기억되는 모습은 2012년 방송 당시 90년대 말 대중문화를 다루며 신드롬을 일으킨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7'이다. 연기를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는 정은지는 부산을 배경으로 한 이 드라마에서 '타고난' 부산 사투리 덕분에 주인공 '시원' 역에 캐스팅됐다. 1990년대 후반을 풍미한 1세대 아이돌 그룹 'H.O.T.' 멤버 토니 안의 열혈 팬 역이다. 실제로 HOT는 에이핑크에게 대선배다. 공교롭게도 HOT가 지난 13, 14일 올림픽주경기장에서 17년 만에 완전체로 연 콘서트와 그녀의 솔로 콘서트 날짜가 겹쳤다. 허스키 음색을 부드럽게 넘기는 정은지는 노래를 잘 부르는 아이돌로 통하지만, 기교에 신경 쓰지는 않는다. 스스로도 "무엇보다 가사의 소중함을 안다"고 했다. "고음이 노래의 다는 아니에요. 제 노래에 고음이 많기는 하지만요. 고음을 내면 소리를 듣지, 가사를 듣지 않아 가사 전달에 신경을 쓰려고 해요." 정은지가 노랫말에 신경을 쓰는 까닭은 누군가가 느끼는 감정이 혼자서 느끼는 감정이 아니라는 걸 느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노래를 통해 감정을 공통적으로 느꼈으면 한다"는 것이다. 청춘이란 그녀에게 어떤 대상일까. "할머님들도 '우리 아직 청춘이야'라고 하시잖아요. 청춘은 계속 살아 있는 동안 지속되는 거 같아요. 나이가 들더라도 청춘을 이야기할 수 있죠." 또래 청춘들에게는 인기 아이돌인 정은지의 청춘은 맑음으로 보일 법하다. 하지만 그녀는 다른 이들처럼 흐림도 있다는 듯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아이돌의 생명력은 여기까지야'라는 말을 많이 듣잖아요. 그런 편견을 잘 깨나갈 수 있을까 나름의 직업적 고민이 커요. 벌써 8년차인데 여전히 초년생 같은 느낌이요. 저 역시 처음인 것이 많아 아직도 부딪히면서 깨지거든요."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