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환의 맛볼까]방배동 봇타야산에서 누리는 일본 데판야끼의 진수
【서울=뉴시스】김정환 기자 = '데판야키'. 이름 그대로 '철판(데판)구이(야키)'다. 뜨겁게 달궈진 철판 위에서 해산물, 육류, 채소 등 갖가지 식재료를 올려놓고 다양한 양념을 더해 구운 뒤, 입맛을 꼴깍꼴깍 삼키고 있는 고객에게 서브한다. 음식이 만들어지는 거의 모든 과정이 눈앞에서 펼쳐져서일까. 음식이 접시에 놓일 때의 행복감은 서버나 웨이터가 주방에서 만들어진 음식을 내오는 일반 레스토랑의 그것을 몇 배 능가한다. 갓 구워낸 요리 특유의 향과 맛, 그리고 씹는 묘미까지 무엇 하나 빠뜨릴 수 없는 구이 요리의 진수다. 아, 더 있다. 만드는 전 과정을 지켜보는 즐거움과 음식이 구워지면서 내는 소리가 주는 울림도…. 하지만 그런 특급 미각은 아무 데서나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1990년대 국내에서 유행한 데판야키를 이제 몇몇 5성급 호텔 일식당이 아니면 경험하기 힘들어진 것은 그만큼 제대로 맛을 내기 어렵다는 방증이다. 식재료를 굽는 온도와 요리가 구워진 정도, 요리와 소스가 어우러져 발현하는 시너지 등 뛰어난 기술과 풍부한 노하우가 없다면 아무리 좋은 식재료를 엄선해도 진미를 구현할 수 없어서다.
날이 쌀쌀해져서일까. 여러 해 전 11월 말 일본 도쿄에서 먹어본 데판야키가 문득 그리워지던 중 지인에게 들은 한마디. "방배동에 정통 데판야키 전문점이 있는데 진짜 맛있더라." 어느 평일 저녁 서울 서초구 방배동 카페 골목으로 향했다. 이수 고가차도와 SK주유소 인근, 카페 골목으로 내려가는 시작점 왼편 라인 건물 2층에 있다. 상호는 '봇타야산'이다. 지하철 9호선 구반포역과 지척이다. 20년 가까이 일본 최고 데판야키 전문점으로 추앙받는 도쿄 에비수 '봇타야산'의 레시피와 노하우를 이어받았다. 한국인 셰프들이 일본에서 조리 기법을 배워온 것은 물론 코야마 마스터 셰프가 수시로 내한해 셰프들에게 기술 지도한다. 덕분에 맛을 도쿄 본점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다. 봇타야산이라는 이름은 재료가 뜨거운 철판 위에서 구워질 때 "봇타봇타"라는 소리를 낸다는 데 착안했다. 우리 말로 "지글지글"인 셈이다.
가게는 아담한 규모다. 다소 낮은 듯한 조도와 주된 컬러인 블랙·그레이가 럭셔리하면서 기품 있는 분위기를 자아낸다. 혼자 식사할 수 있는 닷지와 크고 작은 독립적인 룸 테이블석 등이 섞여 있다. 현지 스타일을 살리면서도 한국인 식사 성향을 만족시킨다. 단골이 많은 데다 평일 저녁에는 강남 지역 직장인, 주말 저녁에는 반포 일대 주민 등 신규 고객까지 더해져 늘 붐빈다. '예약 필수'라는 지인의 귀띔이 실감 난다. 디너는 '한우 특선 코스'(11만원)와 '오마카세'(12만8000원) 등이 대표적이다. 한우 코스를 주문하고, 단품으로 '스페인산 이베리코 돼지 안초비 크림소스'(2만6000원)를 추가했다. 애피타이저가 입맛을 한껏 고조한 뒤, 전담 셰프가 들어와 바로 '본 게임'에 돌입한다. 일본 홋카이도산 가리비가 현란한 손놀림을 통해 부드럽고 감칠맛 나는 구이(단품 3만원)로 변신하자 국내산 활전복은 해체에 이은 재결합으로 또 다른 비주얼을 선보이며 힘을 보탠다. 전복 내장 폰스 소스에 찍어 먹으면 혀끝에서 시작한 황홀감이 온몸을 휘감는다. (단품 3만원) 언뜻 소고기처럼 보이는 이베리코 돼지고기가 세계적인 식재료와 데판야키의 환상적인 마리아주를 선뵈니 투플러스 급 한우 안심은 '국가대표 식재료'답게 묵직하면서도 입에 착착 달라붙는 미각을 펼쳐놓는다. (단품 4만5000원) 해산물과 육류 구이가 전부가 아니다. '야키 형제'도 있다. 먼저 해산물과 육류 사이에 '몬자야키'가 나온다. 잘게 썬 채소, 해산물 등을 철판 위에서 볶은 뒤, 그 위에 고객이 선택한 명란·토마토·청양고추·카레 등 토핑과 치즈를 넣은 반죽을 부은 뒤 쫙 펼쳐서 바짝 구워 먹는 요리다. 셰프가 열정적으로 요리를 만드는 것을 지켜보는 재미, 철판에 눌어붙은 것을 긁어다 먹는 즐거움 그리고 독특한 맛을 보는 기쁨을 골고루 누릴 수 있다. (단품 명란 2만원, 그 외 1만8000원)
한우 구이 다음 차례가 '봇타야키'다. 돼지고기를 철판 위에서 구운 다음 잘게 썰어 건강에 좋은 전북 익산 서동 마를 베이스로 한 반죽에 넣는다. 걸쭉한 반죽을 잘 휘저은 뒤 철판에 부어 다시 구워 먹기 좋게 나눈다. 둘레에 마요네즈를 두르고, 소스를 뿌리더니 가쓰오부시를 섬세하게 토핑한다. 셰프의 눈부신 퍼포먼스를 통해 요리가 완성하는 과정은 경탄 그 자체다. 모양은 오코노미야키와 같으나 마 함량이 높아서인지 맛은 그를 훌쩍 뛰어넘는다. (단품 2만2000원) 화룡점정은 '갈릭 라이스'가 맡는다. 손님 식사에 맞춰 갓 지은 쌀밥을 마늘, 양파, 베이컨 등과 함께 볶아낸다. 한낱 볶음밥인데 왜 그리 치켜세우는지는 먹어보면 알 수 있다. 상추 줄기 무침, 오이와 우메보시, 김 등이 포진한 밑반찬이 맛을 배가한다. 갓 구워낸 일본식 앙꼬 마끼에 아이스크림으로 속을 채운 디저트가 나와 입안에 여운을 남긴다. 디저트는 시즌마다 달라진다.
이 집에는 한우 코스와 오마카세 외에 '봇타야산 코스'(6만5000원), '전복 특선 코스'(8만5000원), '로브스터 특선 코스'(10만5000원) 등이 있어 선택 폭이 넓다. 가리비 구이·적새우 구이·몬자야키·히로시마야키 등을 맛볼 수 있는 '런치 코스'(3만5000원), 적새우 대신 활전복이 들어간 '스페셜 런치 코스'(4만5000원) 등도 판다. 단품은 '캐나다산 로브스터 테일'(4만원) '국내산 산낙지 야키샤브'(1만8000원) 등 다양하다. 단품은 코스 메뉴에 추가할 수 있다. 단품만 주문하는 것은 오후 8시30분 이후 가능하다.
주차는 발렛파킹(2000원)을 맡기면 된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