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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선 두 번째 소설집 ‘유빙의 숲’…고통과의 화해

등록 2018-11-05 09:46:44   최종수정 2018-11-12 09:4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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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최효극 기자= 201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은선이 첫 소설집 ‘발치카 No.9’을 출간한 지 4년 만에 두 번째 소설집 ‘유빙의 숲’을 내놨다.

8개의 단편 중 세 편은 ‘도주’를 주제로 한 연작 소설이다. 소설집을 여는 첫 작품 ‘유리 주의’는 유리창에 비친 허상을 보고 돌진하다 충돌하는 새들처럼 중국 패키지 여행에서 헛된 욕망을 쫓는 인간 군상을 보여준다.

주목할 만한 작품 ‘귤목(橘木)’은 세월호의 비극을 간접 화법으로 그린다. 배를 타고 수학여행을 떠난 쌍둥이 손자들은 할아버지의 전화를 받지 않는다. 아들은 난데없이 아이들이 ‘유학’을 떠났다고 아버지에게 둘러댄다. 영화 ‘굿바이, 레닌’에서 입원 중인 굳건한 사회주의자 어머니가 충격을 받을까봐 ‘독일 통일’을 감춰야 하는 아들이 그랬던 것처럼.

할아버지는 손자들이 전화 한 통 없이 돌연 ‘유학’을 떠날리 없다는 걸 모르지 않지만 마지못해 자식의 말을 받아들인다. 하루 종일 참사 소식을 전하는 TV를 틀어놓아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인지 알고 있지만 너무 참혹한 슬픔을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이곳저곳 전화를 돌리다 “아무하고도 통화가 되지 않는데도 오히려 마음이 놓이는”것이다.

할아버지는 손자들이 가려던 제주도로 ‘대리 여행’을 떠난다. 제주도 출신인 그는 젊은 시절 육지로 탈출하기 위해 122그루의 과실수를 몽땅 베어버렸는데, 20년 만에 돌아온 과수원에서 귤나무가 빼곡히 자라고 있는 걸 보게 된다.  

‘귤목’에는 세월호를 직접 언급하지 않으면서 애도하려는 작가의 고민이 스며있다. 그 때문에 손자를 잃은 할아버지를 데려가 잘려나간 나무들의 '부활’을 보여주며 위로하는 역할은 ‘말 못하는’ 누이가 떠맡게 된다.

7편의 단편을 통해 채울 수 없는 욕망, 원한과 복수, 이유 없는 재난으로 점철된 인간 드라마를 보여준 작가는 마지막 8번째 단편에서 독자들을 ‘커피 다비드’로 데려가 핸드드립 커피를 맛보인다.

그 카페엔 뱃사람 남편을 잃었지만 바다를 떠나지 않는 여인, 말기 암으로 죽음을 눈앞에 두고도 복역 중인 아들을 부탁하는 해녀, 자신을 이유 없이 해코지하던 친구를 좋아하게 된 처녀가 등장한다. 평생 자기를 괴롭히던 고통과 화해한 이들이다.

‘힐링의 섬’ 제주의 이 한적한 카페는 영업이 끝났지만 할로겐등과 LED 전등을 모조리 켜고 테이블마다 촛불까지 밝힌다. “어두운 하늘로 날아간 누군가가 이 빛을 보고 돌아올 수 있기를 바라기”때문이다. 296쪽, 1만3000원,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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