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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한 내연녀 죽여라, 히가시노 게이고 '브루투스의 심장'

등록 2018-11-22 11:30:25   최종수정 2018-12-04 11:3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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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신효령 기자 = "대학원에 진학하기 직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날아왔다. 뇌출혈이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 다쿠야는 '드디어 내게도 운이 따르는군'하는 심정이었다. 고향에는 한 번도 돌아가지 않았지만 그 마을에 여전히 그 남자, 자신의 아버지라 칭하는 남자가 살고 있다는 게 가장 큰 고민거리였기 때문이다. 그런 남자의 아들이라면 취직에도 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걱정했던 것이다. 그날 밤, 다쿠야는 샴페인을 사서 혼자 이 행운을 축하했다. 무심결에 웃음이 새어나올 만큼 최고로 기분 좋은 밤이었다."

일본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60)의 장편소설 '브루투스의 심장'이 번역·출간됐다. 1989년에 발표한 작품이다. 공대를 나와 자동차 부품 제조회사에 다녔던 히가시노는 당시 기계화되어가는 사회에 주목했다. 거래만이 존재하는 인간관계, 인간의 자리를 대신하는 기계, 대기업의 정보 은폐 구조 등을 날카롭게 묘사했다.

'다쿠야'가 소설의 주인공이다. 주정뱅이에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그는 인간에 대한 짙은 불신과 권력지향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지독한 노력 끝에 로봇 개발자가 됐지만, 더 높은 곳으로 가기 위한 도전을 멈추지 않는다. 임원실 직원인 '야스코'에게 접근, 내연 관계가 됐다.

전무의 정보를 얻어내 전무 딸과 결혼할 기회까지 생겼다. 모든 게 계획대로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던 어느 날, 다쿠야는 야스코의 임신 소식을 듣게 된다. 야스코의 임신이 성공에 대한 방해물이라고 여기며 어떻게 문제를 처리해야 할지 초조해한다.

다쿠야는 뜻밖의 호출을 받고 자신의 처지와 같은 두 남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이의 아버지일지도 모를 세 남자는 야스코가 걸림돌이 된다고 판단하고 '릴레이 살인'을 모의한다. 서로에 대한 신뢰가 없는 사람들의 살인 계획이 틀어지면서 뜻밖의 국면을 맞이한다.

"그는 지금 상태에 만족하지 않았다. 현재 자신은 다른 사람보다 조금 뛰어난 '근로자'에 불과했다. 누군가의 지배를 받고 있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었던 것이다. 인간이 모두 평등하다는 건 환상일 뿐이라는 게 그의 오랜 철학이었다. 이 세상은 불공평과 차별로 가득 차 있다. 누구나 태어난 그 순간부터 다양한 계층으로 나눠진다. 언젠가 반드시 최상층의 인간이 된다, 지배자가 된다. 그것이 다쿠야의 최종 목표였다."

옮긴이 민경욱씨는 "'브루투스의 심장'에서는 모든 인물이 무언가를 잃는다"며 "그것은 소중한 생명이나 사랑하는 사람이며, 평생을 꿈꿔왔던 욕망, 피붙이에 대한 집착이기도 하다"고 소개했다.

"진흙탕 속에서 몸부림치며 벗어나려고 하지만 무언가를 잃어가는 인물들을 보다보면, 특히 아버지로부터 상처를 받고 그 상처로부터 벗어나려는 주인공을 비롯한 인물들에게 연민의 정이 생기게 마련이다. 이렇게 애를 쓰고 살았다면 누구 하나쯤은 행복해도 되지 않을까? 하지만 작가는 그런 바람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책을 덮는 순간 '이 작가, 정말 독한 사람이네'라는 생각이 든다." 428쪽, 1만4800원, 알에이치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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