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문화일반

매혹의 연쇄살인범···브레이스웨이트 '언니, 내가 남자를 죽였어'

등록 2019-03-24 08:02:00   최종수정 2019-04-08 10:26:42
  • 크게
  • 작게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이메일
  • 프린트
associate_pic
【서울=뉴시스】 신효령 기자 = "장담컨대, 표백제가 피 냄새를 감춰 준다는 사실은 다들 몰랐을 거다. 대부분 표백제가 만능이라 믿고 마구잡이로 쓰면서도, 뒷면에 붙어있는 성분표를 꼼꼼히 들여다볼 생각은 아예 하지 않는다. 표백제를 쓰면 소독은 되겠지만, 잔류물 제거에는 크게 도움이 안 된다. 그래서 나는 우선 욕실을 박박 문질러 삶과, 죽음의 흔적까지 깨끗이 지운 후에야 표백제를 사용한다."

나이지리아 작가 오인칸 브레이스웨이트의 장편소설 '언니, 내가 남자를 죽였어'가 번역·출간됐다. '남친 살해'의 습관을 지닌 연쇄 살인범의 이야기다.

동생 '아율라'는 어떤 남자라도 한눈에 무너뜨릴 강력한 미모의 소유자다. 천사 같은 얼굴에 레이스 속옷을 즐겨입는다. 성가신 남자친구를 죽이는 습관이 있다. 사귀던 남자친구를 저세상으로 보내버린 게 이번으로 세 번째다.

언니 '코레드'는 무엇보다 가족이 우선이다. 경찰서로 달려갔어야 마땅했지만, 동생을 대신해 시체를 처리한다. 유능한 간호사로 외모에 자신이 없다.

미모 앞에 한없이 무력한 남자들의 허위, 그 단순함이 고스란히 속살을 드러낸다. 아율라는 매혹적인 살인자가 되어간다. 태평스러움, 살인의 뒤처리를 언니가 해줄 것이라는 생각, 도덕불감증까지 더해지면서 겉보기에 아무런 고민이 없다. 어제 사귀던 애인을 오늘 찔러버린다. 자신의 가치를 외모로만 판단하는 남자들을 침묵시킬 수 있는 권력이 자신의 손 안에 있다고 생각한다. 코레드는 죄책감과 음울한 불안감을 안고 산다. 어린시절 자매를 괴롭힌 인물이 서서히 드러나면서 또다른 국면을 맞는다.

"칼은 그녀를 보호하는 무기였다. 남자랑 있을 때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으니까. 남자들은 원하는 것을 원하는 때에 갖고 싶어 하니까. 그녀는 그를 죽일 생각은 없었다. 가까이 오지 말라고 경고만 하려 했다. 그러나 그는 그녀의 무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180센티가 넘는 그에게 그녀는 인형처럼 보였을 것이다. 작은 몸집, 긴 속눈썹, 도톰한 입술을 가진 인형."

"나는 수건이 흠뻑 젖도록 피를 닦아서 싱크대로 가져가 쥐어짰다. 바닥에 핏기가 없어질 때까지 그 동작을 반복했다. 아율라는 이쪽저쪽 발을 옮겨가며 짝다리를 짚은 채 주변을 서성였다. 나는 초조해하는 그녀를 못 본 체했다. 생명을 빼앗을 때보다 시체를 처리할 때 훨씬 긴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다. 특히 살인의 증거를 남기고 싶지 않을 때는 말이다. 그런데 벽에 기대어 앉혀놓은 시체에 계속 눈길이 간다. 그 시체를 어딘가로 옮겨놓기 전에는 일을 완벽하게 마무리할 수 없을 것 같다." 강승희 옮김, 260쪽, 1만3800원, 천문장 

[email protected]
Copyright © NEWSIS.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이메일
  • 프린트
  • 리플
위클리뉴시스 정기구독 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