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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산불]'119가 119에 신고하라니 황당했지만 그래도...'

등록 2019-04-07 19: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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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강원)=뉴시스】 박종우 기자 = 7일 오후 지난 4일 발생한 강원 고성·속초 산불로 잿더미가 된 고성군 토성면 봉포리의 한 민가에 화마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다. [email protected]

【고성(강원)=뉴시스】박종우 기자 = "막둥이 공부하라고 사준 책이 다 탔네요"

화마가 집어 삼킨 고성, 속초, 강릉, 동해, 인제 일대의 잔불 우려는 지난 6일 내린 단비로 자취를 감췄고, 이재민들에 대한 정부의 국고 지원 등 대책도 구체되고 있지만 정작 피해 주민들의 고통은 쉬 사그러들지 못하고 있다.

7일 오후 고성군 토성면 봉포리 전소된 한 주택가에는 피해 주민 정모(57)씨가 타버린 잿더미를 뒤지고 있었다.

혹시 건질 수 있는 생활용품이 있는지 찾아보기 위해서다.

정 씨는 지난 4일 오후 집에 불이 난 것을 보고 아내와 이제 갖 중학생이 된 늦둥이를 데리고 집을 빠져나왔다. 당시는 집안 물품을 챙길 틈조차 없었던 차였다.

불길은 순식간에 집 전체로 번졌고 잠시 후 펑 하는 소리가 나는 것을 듣고는 가스를 잠그지 않았다는 것도 뒤늦게 깨달았다.

정 씨는 "(화재 당시는)겉옷 한 벌 걸치고 슬리퍼만 신고 도망치듯 나왔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속옷 한 벌 못 가지고 나와 허망하더라"고 말했다.

이어 정 씨는 "처음엔 아야진 초등학교로 가라더니 다시 아야진 해변으로 가라고 하더라"라며 "또 얼마 안지나 동광중학교 체육관으로 옮기라고 했다"며  당시의 긴박한 상황을 설명했다.

때마침 지나던 소방차를 붙잡고 집에 붙은 불을 가르키며 진화에 나서줄 것을 애원해봤지만 소방대원들은 현재 화재가 난 곳이 많아 메뉴얼대로 움직이고 있으니 먼저 119에 신고부터 해달라고 말했다.

정 씨는 "119가 119에 신고하라니 기가 찰 노릇이더라"며 "물론 매뉴얼이 있어서 그렇고 더 급한 곳이 있어서라지만 당장 눈 앞에 집이 타고 있는 제 입장에서는 야속하기만 하더라"며 쓴 웃음을 지어 보였다.

잿더미가 집을 뒤적이던 정 씨는 방 하나를 가르키며 "여기가 우리 늦둥이 방인데"라며 한참동안을 말을 못있다가 "이제 중학교 2학년인데 공부하라고 사준 책상 의자가 홀랑 다 탔네요"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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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강원)=뉴시스】 박종우 기자 = 7일 오후 지난 4일 발생한 강원 고성·속초 산불로 잿더미가 된 고성군 토성면 봉포리의 한 민가에 화마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다. [email protected]

정 씨의 옆집에 사는 한 모(68)씨도 뼈대만 남은 집 앞을 한참을 서성였다.

한 씨는 10여년 전 새로 지어진 건물에 세들어 지내면서 하나둘 살림살이를 장만해가는 낙을 느꼈고, 비가 오면 새는 지붕을 직접 수리해가며 살았다고 집에 얽힌 지난 얘기를 들려줬다.

그러나 이번 산불로 집 처마는 내려 앉고 기와는 바닦으로 모두 쏟아진데다 집 내부는 새카맣게 타들어가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다.

정 씨는 "(손가락으로 가르키며)여기가 내 작업실이에요. 사무실에서 일도 하고 머리도 식히던 곳이었다"며 "책상이며 냉장고며 다 타고 거실 TV도 형체를 알아볼 수 없네요"라며 고개를 저었다.

대피소는 너무 복잡하다며 정 씨는 "잿더미가 된 집을 보면 마음이 아플 걸 알면서도 발걸음은 자꾸 이곳(타버린 집)으로 오게 되네요"라고 말했다.

이어 정 씨는 "그래도 대통령도 오시고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시니 힘은 납니다"라며 "복구를 마치고 예전으로 돌아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어쩌겠어요. 힘내서 버텨야죠"라며 밝게 웃어 보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산불 피해지역을 방문한 다음날인 지난 6일 오후 강원 고성군, 속초시, 강릉시, 동해시, 인제군 일대를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한편, 행정안전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에 따르면 이날 오후 2시 피해상황 집계 기준으로 주택 487채, 창고 75채, 농업시설 93곳, 비닐하우스 59동, 공공시설 71곳 등이 소실된 것으로 파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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