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병은 범죄 아닌 감기·고혈압"…정신장애인 팟캐스트 화제
서울시정신건강복지센터, 팟캐스트방송 '10데시벨' 운영2015년 시작해 5년째 방송중…1년 청취자 7412명에 달해정신장애인들이 직접 출연…대본쓰고 노래틀고 코멘트도"위험한 존재이긴 하지만 가까이 해선 안될 존재는 아냐""정신장애인 왜곡보도에 항의하는 모니터링 활동 희망해"
이런 흐름을 지켜봐야만 하는 정신장애인들은 점점 움츠러들고 있다. 여론이 범죄자 개인 성격과 가정환경 등이 아닌 정신질환 이력 자체에만 몰입하는 탓에 일상생활을 무리 없이 해온 우리 주변의 정신장애인들은 남몰래 속앓이를 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정신장애인이 잠자코 있는 것은 아니다. 당당히 마이크 앞에 서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는 정신장애인들도 있다. 정신장애인을 향한 세상의 차가운 시선에 굴하지 않고 '세상의 시선이 잘못됐다'고 외치는 용기 있는 정신장애인들이 있다. 그 주인공은 팟캐스트방송 '당사자 인권톡(Talk) 10(텐)데시벨(http://www.podbbang.com/ch/7768)'에 출연하는 정신장애인들이다. 이 방송은 서울시민 대상 정신건강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는 서울시 정신건강복지센터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2015년 시작된 10데시벨 방송은 어느덧 5년째를 맞았다.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지는 못했지만 이 방송은 정신장애 관련자들 사이에서는 꽤 유명하다. 2017년에는 보건복지부 장관 표창을 받기도 했다. 방송 제작과정도 구색을 갖췄다. 5명 안팎의 정신장애인들이 제작회의를 열고 각자 원고를 제출한 뒤 편집과 각색을 거쳐 대본을 완성한다. 며칠 뒤 스튜디오에 모인 이들은 자못 진지한 음색으로 녹음에 참여한다. 지난해 1년간 청취자 수가 7412명에 달하는 등 10데시벨 방송은 이제 정상궤도에 올랐다. 10데시벨이란 제목 역시 정신장애인 방송이라는 정체성을 반영하고 있다. 10데시벨은 주의를 기울여야만 들을 수 있는 소리의 크기다. 작은 소리에 주의를 기울이듯 '정신장애인 인권'에 귀를 기울여달라는 의미가 이 제목에 담겨있다. 방송 중 삽입곡 역시 정신장애인 제작진이 직접 만들었다. 출연진은 힙합그룹 '술래와 내토'의 도움을 받아 노래를 제작했다. 직접 가사를 쓰고 노래한 로고송이 방송을 한층 맛깔나게 한다.
김씨는 "원래 말하는 걸 좋아했다. 꿈이 DJ였다. 어릴 때는 성우도 되고 싶었다"며 "그런 일을 해보고 싶다고 생각만 하던 제가 병을 얻고 정신장애인이 되고 나서 이런 기회가 주어져서 팟캐스트 방송에 참여하고 여러 가지 활동을 하게 되니 참 좋다"고 만족감을 표했다. 24세 때 조현병이 발병해 20년 가까이 치료를 받고 있는 김씨는 상태가 악화돼 5~6회 입원치료를 받기도 했다. 2016년 1월에도 몸이 안 좋아져 입원했다. 하지만 김씨는 치료를 마치고 퇴원해 10데시벨 방송 녹음에 참가하는 '프로정신'을 발휘했다. 김씨 등 제작진의 노력은 전국 각지 정신장애인들에게 적잖은 힘이 되고 있다. 김씨는 "10데시벨을 들은 분들이 이 방송에 참여해보고 싶어한다. 방송을 어떻게 녹음하는지 구경하고 싶다고 한다"며 "최근에는 미국에 사는 친구도 방송을 들었다면서 한국에 오면 여기 와봐도 되냐고 물었다"고 전했다. 김씨는 안인득 등 조현병 환자의 범죄 관련 언론 보도에 대해 안타깝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는 "요즘 너무 안 좋은 사건 사고가 많다. 특히 조현병 환자가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을 언론이 너무 이슈화하니까 정신장애 당사자들이 많이 숨으려 한다. 숨으려하고 감추려 하고 움츠러들고 있다"고 전했다. 김씨는 조현병이 아닌 범죄자 개인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 사람이 조현병이라고 해서 범죄를 저지른 게 아니라 그 사람만의 성향과 그 사람만의 고유한 성격, 지내온 환경 등 때문이다. 그 사람이 조현병이기 때문에 범죄를 저지른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며 "나쁜 행동을 저지르는 사람들이 심신미약을 이유로 형을 줄이기 위해 '나는 조현병이라 몰랐다'고 한다고 들었다. 이런 일 역시 언론과 미디어가 조현병을 안 좋게 다루기 때문에 벌어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씨는 조현병과 범죄를 직접 연결시키는 최근 분위기에 경종을 울렸다. 그는 "전체 강력범죄 중 조현병 환자의 범죄율은 0.04% 밖에 안 된다. 비장애인들의 범죄율보다 훨씬 낮다"며 "그런데 사건 터질 때마다 조현병 환자라는 보도가 너무 많이 나와서 '조현병 환자나 정신장애인은 위험한 사람들이다, 다가가기 힘들다, 가까이해선 안 된다'는 편견을 갖게 된다"고 꼬집었다.
김씨는 이어 "아침방송 중 '무엇이든 물어보세요'라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한번도 정신장애인을 다루는 것을 보지 못했다"며 "다른 질병은 반복해서 다루기도 하는데 정신질환은 (공중파에서) 다루지 않으니 사람들이 (어떤 질환인지) 모른다.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전 생애를 통틀어 4명 중 1명은 정신질환을 겪게 된다고 한다. 비장애인이라고 해서 자신이 영원히 정신장애인이 안 된다고 장담할 수 없다"며 "자기는 아니라고 해서 정신장애인을 폄하하고 욕하고 손가락질하면 안 된다"고 덧붙였다. 정신장애인은 일상생활에서도 상처를 받는다. 김씨는 "자기 아파트 안에 정신장애인이 사는 것 자체를 싫어하시는 분이 많다"며 "면접을 보러 갔는데 '정신질환이 있어서 한달에 1번 약을 타러 가야 한다'고 하면 채용을 안 한다거나, 서류심사에서 탈락시킨다거나 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또 "엊그제까지 웃으면서 이웃주민으로 지내다가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아서 '내가 정신장애인'이라고 우연찮게 말했는데 이후 그 사람의 행동이 달라지고 아예 인사를 받아주지 않는다든지 하는 그런 게 많다"고 털어놨다. 정신장애인은 인권침해에 직접적으로 노출돼 있다. 강제입원 요건을 강화한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정신건강복지법)이 10월 시행을 앞두고 있지만 여전히 정신장애인은 강제입원될까봐 두려움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김씨는 "자신이 원하지 않는 상태에서 강제입원을 당했던 사람들한테 이야기를 들어보면 강제입원을 당할 때 엄청난 트라우마가 생긴다"며 "'이 정도로 강제입원을 시켜야 하나' 하는 의문이 들 정도일 때는 강제입원을 시키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씨는 정신질환이 의심되는 이들에게 최대한 빨리 병원을 찾아가 진단과 치료를 받으라고 조언했다. 그는 "저 같은 경우 엄마와 이모가 '쟤가 좀 이상하다, 왜 이러지' 하면서 눈치를 채서 빨리 병원으로 데려갔다"며 "빨리 치료를 받을 수 있게끔 해서 제가 심각한 상태가 안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자신의 사례를 소개했다. 김씨는 그러면서 "위험한 상황에 처했거나 사건 사고가 나서 위급한 상황이면 수술을 받아야 한다. 치료시기를 놓치면 더 안 좋은 상황으로 바뀐다"며 "정신장애인도 빨리 먼저 알아채고 병원에 가는 게 중요하다. 가족이라든지 주변 사람들이 빨리 함께 병원에 가서 입원을 한다든지 약물치료를 하면 경미한 정도가 된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정신질환을 감기, 고혈압에 비유했다. 정신질환도 잘 관리하면 일상생활을 문제없이 해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정신장애인도 사회구성원으로 잘 살아가고 싶은 바람을 갖고 살고 있다. 지금 자신이 정신장애인이 아니라고 해서 우리를 안 좋게 바라보고 욕하고 폄하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우리는 위험한 존재나 가까이 해선 안 될 존재가 아니다. 감기환자나 고혈압환자처럼 약을 먹으면 충분히 똑같이 평범하게 비장애인과 어우러져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김씨는 10데시벨 활동에서 얻은 자신감을 바탕으로 앞으로 정신장애인에 관한 왜곡된 보도에 항의하고 반박을 내놓는 새로운 방송을 제작해보고 싶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김씨는 "앞으로 정신장애인을 왜곡해서 보도하거나 기사를 잘못 쓴다든지 하면 그쪽 기자나 언론사에 글을 써서 보내는 형식의 모니터링 활동을 해보고 싶다"고 각오를 밝혔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