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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철훈의 [월담]흰 당나귀의 도시들

등록 2019-11-02 10:00:00   최종수정 2019-11-18 09:2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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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러 국경도시에서 듣는 당나귀 방울소리

흰 당나귀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발음되지 않는 혀 속의 잠재태로서의 그리움

당나귀 발굽이 찍힌 모든 곳이 국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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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만주 수분하=뉴시스】 정철훈 기자=북만주 국경도시 수분하 광장의 웅장한 첨탑.



【서울=뉴시스】정철훈문화부장 = 1.
이 도시는 말이나 당나귀가 딱딱한 땅을 발굽으로 차면서 코를 벌름대며 하얀 김을 대기 속으로 내뿜어야 옳다. 그러면 마부가 가볍게 엉덩이에 채찍을 휘둘러 신호를 보내고 네 개의 굽이 두 개의 굽처럼 세 음절, 네 음절의 소리를 땅에 뿌리며 앞으로 나아가야 옳다. 그러면 당나귀는 머리에 매달린 종을 흔들며 “내가 이 거리의 왕이요”라며 딸랑딸랑 소리를 내는 엇박자의 고갯짓을 끝 간 데 없는 원근법의 신작로에 떨치고 가야 옳다.

이 도시는 북방의 찬바람이 사람들의 얼굴을 호되게 치고 불어가면서 뼛속까지 시린 맛을 보여주어야 옳다. 하지만 지금은 당나귀도 마부도 사라지고 게딱지같은 삼륜차가 뻔질나게 사람과 짐을 실어 나르는 국경의 도시이다. 그리하여 말이나 당나귀의 입장에서 보면 그때는 옳고 지금은 틀리다.
 
2.
중국-러시아 접경도시 수분하(绥芬河-러시아명 쑤이펀허)에 와서 하나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1961년 개봉되어 그해 세계 3대 영화제의 하나인 '베를린 영화제'에서 은곰상(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한 강대진(1935~1987) 감독의 출세작 ‘마부(馬夫)’가 그것이다. 거기 출연한 말에 대해 알려진 바는 없다. 하지만 말이 없었으면 이 영화를 찍을 수 없었을 것이다.

당시 강대진의 나이가 불과 27세였다니 인생의 쓴맛, 단맛을 제대로 겪어보지 않았을 나이에 어떻게 그토록 서정성 짙은 영화를 만들 수 있었는지 지금도 탄성이 절로 나온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마부’의 대성공의 영광은 강대진 감독과 마부 역의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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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수분하=뉴시스】정철훈기자=중국 북만주 국경도시 수분하의 광장 쪽으로 뻗은 수로.
김승호, 그리고 자신이 영화에 출연하는 줄도 몰랐을 말에게 고스란히 돌려주어야 한다.

일찍 상처한 마부(김승호 역)가 마주(馬主)의 말을 빌려 물건들을 운송하면서 4남매를 부양하는 고된 일상을 다루고 있는 ‘마부’는 전후 세대를 상징하는 '궁핍'이라는 키워드를 여과 없이 보여준 리얼리즘 영화의 압권으로 꼽힌다.
두 주역은 익히 알려져 있기에 그만두고 거기 출연한 말에게 시선을 돌리면 말에게 예술적 천재성이 있었을 리는 만무하다. 그냥 말이라는 태생적 본능에 충실한 이 지고지순의 동물에게서 사람에게는 없는 어떤 신성(神性)마저 느껴지는 것은 냉큼 말 잔등에 올라탔을 때이다.
 
3.
말의 몸은 달리기에 알맞도록 네 다리와 목이 길다. 얼굴도 긴데, 이것은 치열(齒列)이 길기 때문이다. 코에는 나출부(裸出部)가 없고, 윗입술을 잘 움직이는데, 이것으로 풀을 입 안으로 밀어 넣는다. 발굽은 하나이며, 너비가 넓고 튼튼하다. 앞머리털이 있고, 목덜미에는 갈기가 있으며, 가슴은 크고, 늑골은 18쌍이나 된다.
같은 초식동물이라도 소와 같은 반추동물(反芻動物)은 4개의 위(胃)가 있으나, 말에게는 1개밖에 없다. 그 대신 말의 장(腸)은 대단히 길어 전체길이가 25m나 되고, 맹장도 길고 크다.

 당나귀는 나귀라고도 한다. 한자어로는 여(驢)라고 하며, 장이(長耳)·한려(漢驪)·위(衛) 등의 별명이 있다. 학명은 Equus asinus이다. 당나귀는 야생의 당나귀를 가축화한 동물로서, 대형과 중형의 두 종류가 있다. 대형인 경우 키가 140∼150㎝, 몸무게는 350∼450㎏에 이른다. 털빛은 회백색이 많으나 붉은색·갈색도 있다. 등에는 어깨에서 꼬리의 끝까지 짙은 줄이 나 있으며, 어깨에는 뚜렷한 무늬가 있다.

말이나 당나귀에 대한 정보가 장황해진 것은 그들이 한반도 서북지역과 관북지역은 물론 중-러 접경지역의 수많은 고개를 오르내리는 중요한 운송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백석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여성> 3권 3호 1938. 3.)를 보면 당나귀의 위상은 더욱 구체화된다.

 “나타샤와 나는/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에서 보듯, 그때는 당나귀를 타고 고개 너머 재 너머 산골로 가는 보통의 일상이었다. 그런데 여기 등장하는 ‘흰 당나귀’는 선천성 백변증 즉, 알비노의 당나귀가 아니라 대개 갈색 털을 지닌 당나귀를 지칭하는 것이다.

그래서 말이지만 북만주-연해주로 이어지는 여정 가운데 ‘흰 당나귀’를 만날 수 있기를 은근히 기대했다. 여정은 중국의 목단강-밀산-당벽진-수분하, 그리고 수분하에서 국경을 넘는 완행열차를 타고 동청철도를 따라 러시아의 접경도시 그로제코보-우수리스크-블라디보스톡에 이르는 대장정이었다.

많은 도시를 지나왔지만 내가 찾던 흰 당나귀는 만날 수 없었다. 여정 중반에 접어든 어스름 무렵, 숙소인 우수리스크호텔을 빠져나와 근처 광장 주위를 여러 번 돌고 또 돈 것도 혹시나 흰 당나귀를 몰고 가는 마부를 만날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그건 백석 시에 등장하는 ‘흰 당나귀’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그토록 보고자 했고 만져보고 싶었던 ‘흰 당나귀’를 나타나지 않았다.
 
과연 나에게 ‘흰 당나귀’는 무엇인가. 무수한 자문자답 끝에 떠오르게 있었다. 내일 아침이면 여정의 막바지인 블라디보스톡으로 가야하는 밤. 광장 한 귀퉁이에 오롯이 앉아 상념에 젖을 때 불어가는 바람에 낙엽 한 장이 어깨에 붙어 한동안 떨어지지 않았다. 그 낙엽은 백석이나 이용악이 보냈을 거라는 착각이 들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젊어서 한창 땐
 우라지오로 다니는 밀수꾼
 눈보라에 숨어 국경을 넘나들 때
 어머니의 등곬에 파묻힌 나는
 모든 가난한 사람들의 젖먹이와 다름없이
 얼마나 성가스런 짐짝이었을까
  (…)
  어머니는 얼어붙은 우라지오의 바다를
 채쭉 쳐 달리는 이즈보즈의 마차며 트로이카며
 좋은 하늘 못 보고
 타향서 돌아가신 아버지의 이야길 하시고
  (이용악, '우리의 거리'(1945) 일부)

 이즈보즈는 두 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 트로이카는 세 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다. 밀수꾼인 이용악의 아버지가 세 마리 말을 소유했을 리는 없고 이즈보즈에 짐을 싣고 접경지대를 내달렸을 것이다. 내일이면 블라디보스톡으로 간다. 하지만 내가 스쳐온 모든 곳이 ‘흰 당나귀의 도시’임에 틀림없다. 흰 당나귀는 그리움의 동물이자 그리움 자체이다.

당나귀 등에 짐을 싣고 척박한 중-러 접경지대를 지나 도착한 150년 전 한인이주민의 첫 정착지 얀치허는 우수리스크에서 차로 30분 떨어진 곳에 있었다. 바람결에 당나귀 냄새가 실려오는 것 같은 도시 우수리스크. 피와 살과 뼈로 만들어지기는 인간이나 당나귀나 마찬가지일 터이다. 같은 피조물이지만 당나귀도 그리 순종적인 동물은 아니다. 뒷발질은 보통이고 성깔이 나면 몸을 뒤틀어 등에 탄 주인을 떨어뜨리기도 한다.
 
4.
이효석의 대표작 '메밀꽃 필 무렵'엔 이런 대목이 있다.

"평생을 같이 지내온 짐승이었다. 같은 주막에서 잠자고, 같은 달빛에 젖으면서 장에서 장으로 걸어 다니는 동안에 이십 년의 세월이 사람과 짐승을 함께 늙게 하였다. 가스러진 목뒤 털은 주인의 머리털과도 같이 바스러지고, 개진개진 젖은 눈은 주인의 눈과 같이 눈곱을 흘렸다.

몽당비처럼 짧게 쓸리운 꼬리는, 파리를 쫓으려고 기껏 휘저어보아야 벌써 다리까지는 닿지 않았다. 닳아 없어진 굽을 몇번이나 도려내고 새 철을 신겼는지 모른다. 굽은 벌써 더 자라나기는 틀렸고 닳아버린 철 사이로는 피가 빼짓이 흘렀다. 냄새만 맡고도 주인을 분간하였다. 호소하는 목소리로 야단스럽게 울며 반겨한다.
어린아이를 달래듯이 목덜미를 어루만져주니 나귀는 코를 벌름거리고 입을 투르르거렸다. 콧물이 튀었다. 허 생원은 짐승 때문에 속도 무던히는 썩였다."

주인공 허생원은 당나귀와 함께 한 한평생을 회고하면 이렇게 뇌까린다. "일신에 가까운 것이라고는 언제나 변함없는 한 필의 당나귀였다." 나귀를 타고 오일장을 따라 장터로 들어서는 세 사람의 장돌뱅이. 세 마리의 나귀들도 길이 좁아 외줄로 늘어서서 가는 길이다. 방울소리가 시원스럽게 딸랑딸랑 메밀 밭께로 흘러간다. 주인들은 뜰에 불을 피워 나귀에게 더운 물을 끓여준다.

5.

당나귀와 국경. 그건 발음되어지지 않는 혀 속의 잠재태이기도 하다. 국경이라했지만 딱히 선이 그어진 것도 아니다. 가뿐 숨을 몰아쉬어야 하는 고갯길 옆에 하얀 자작나무 군락이 수직으로 뻗어 올라가는 흰 그림자의 도시. 그 땅에 당나귀의 발굽이 찍혀 있는 것이다. 그건 당나귀 이전에 사람이 지나갔다는 얘기다. 어른들은 봇짐을 지고 이고, 아이들 두 서넛은 당나귀에 탄 채 강을 건너고 들을 건너고 마을에 도착한다. 중국어가 아니라 처음 듣는 러시아어가 들려오는 마을. 접경도시의 풍경은 스산하기 이를 데 없고 거기 사는 사람들은 대처에 나가는 일이 드문 붙박이 체질의 소유자들이다.

과연 접경도시의 풍경에는 어떤 특별함이 있는가. 중-러 국경마을의 원 풍경을 그린 소설을 우연히 읽은 적이 있다. 한국 근대시기, '영화소설'이라는 표제의 작품이 한때 유행처럼 모습을 드러낸 적이 있다. 그 중 13편의 작품이 당시 발행되던 각종 신문에 게재되었다. 그 13편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6편이 <매일신보>에 발표되었다.

1926년 4월 4일부터 5월 16일까지 7회에 걸쳐 연재된 김일영의 '삼림(森林)의 섭언(囁言)'이 첫 작품이고, 1939년 9월 9일부터 11월 3일까지 총 38회에 걸쳐 연재된 최금동의 '향수'가 마지막 작품이다. 내가 읽은 것은 김일영이 두 번째로 <매일신보>에 발표한 '산인(山人)의 비애'(1926. 12. 5~1927. 1. 30)이다.

"그것은 국경에 잇는 P산맥 고령(高嶺)에서 이러난 일편(一篇)의 '로멜쓰'엿다'로 첫 문장이 시작되는 '산인의 비애'는 국경에 살고 있는 니콜라이 림스키라는 소년의 성장기이자 사랑 이야기이다. 림스키는 러시아 음악가였던 아버지와 P산맥 고령(高嶺)에 살고 있는 탄실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다. 어머니는 그가 태어난 지 7일만에 죽고 음악과 키릴문자를 깨우쳐준 아버지 역시 15세 되던 해에 사망함에 따라 혼자 살아가는 소년 림스키. 아버지 작고 이후 2년 여가 흐른 어느 여름날, 언덕 아래로 굴러떨어져 류혜순이라는 소녀를 구해준 림스키는 소녀를 사모하게 된다.

"가을이 오면 겨울도 머지 안엇다. 림스키는 겨울 준비를 하노라고 나무 우에 올나가서 굵은 가지를 녹긔('도끼'의 오기)로 찍어 내리고 잇다. 그는 일이 손에 걸리지 안엇다. 갓금 수심 가득한 얼골로 먼 산을 바라보고 잇섯다. 겨울이 왓다. 흰 하늘 아래 백설이 덥힌 산막은 신비하고 아름다웟다. 아참 일즉이 림스키는 어대를 가는지 산으로 내려간다."(김일영, '산인의 비애', 한국근대영화소설 자료집 매일신보편 上, 연세대 인문예술대학 국문학과 CK사업단, 소명출판, 2019)

림스키는 혜순을 찾아 산에서 내려오지만 그녀는 이미 공부하러 동경으로 떠난 뒤이다. 결국 혜순을 찾아 동경까지 간 림스키는 동경에서 만난 아버지의 친구 포푸만에게 바이올린을 배우며 2년 여를 살다가 우연히 거리에서 혜순을 다시 만난다. 우여곡절 끝에 두 사람은 세계일주 연주여행을 계획하고 실천에 옮기지만 둘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혜순의 자살로 끝을 맺는 이 소설은 국경지대에서 싹튼 풋풋한 사랑이 종말을 향해 치달으면서 무대를 동경과 파리까지 확장시키는 로드로망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로 찍으면 금상첨화의 작품이다.

다시 우수리스크 호텔로 돌아오면 창밖을 내다보는 내 상념에 림스키가 살았던 동네가 이 근처인 것만 같다. 손을 내밀면 림스키의 바이올린 소리가 손바닥에 스며들 것 같다. 림스키가 혼혈이라면 당나귀도 혼혈의 산물이고 국경지대의 모든 풍경도 혼혈이다. 아니 우수리스크의 거주민들의 태반이 혼혈인데 옛 숙신과 여진과 에벤키족의 피가 섞인 인터내셔널 패밀리를 어디서나 만날 수 있다. 나 역시 무엇과 다른 무엇이 섞인 이원론의 혼혈체임을 스스럼없이 느끼며 활보하게 되는 도시.

우수리스크는 그런 도시다. 1937년 스탈린의 강제이주 명령 전까지 고려인들이 가장 많이 살았던 도시가 우수리스크다. 이주 한인의 고향같은 도시 우수리스크. 고려인들의 집은 서까래가 삐죽 나와 있는 게 러시아식 집과 다르다. 한인 이주촌에는 바람에 날아가지 않도록 이엉을 잇대어 초가지붕을 얹었으니 초가의 얼개가 서까래였고 그 서까래를 운반한 것은 당나귀였을 것이다.   

제법 쌀쌀해진 북방의 10월, 찬 바람을 얼굴에 받으며 거리로 나섰다. 또 한참을 헤맸지만 이번에도 흰 당나귀를 만날 수 없었다.
그래, 내일이면 블라디보스톡으로 간다. 우수리스크도 블라디보스톡도 ‘흰 당나귀의 도시’임에 틀림없다. 모두들 잠들었을 숙소로 돌아왔을 때, 나와 같이 길을 떠난 바지런한 답사단 일행들은 올빼미의 눈을 하고 야간주(酒)를 목에 털어놓고 있었다. 그야말로 ‘나 여기 왔노라’며 ‘응앙응앙’ 우는 흰 당나귀가 따로 없었다.

나는 귀국해서도 오랫동안 흰 당나귀의 냄새를 맡을 예감에 사로잡혔다. 충무로의 어느 골목길로 꼬리를 흔들며 사라지는 흰 당나귀들. 그러면 나는 당나귀 발굽이 찍힌 땅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릴 것이다. "여기가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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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리스크=뉴시스】정철훈기자=우수리스크 호텔 전경.
국경이구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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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만주 팔면통=뉴시스】정철훈 기자=일제 강점기 당시 중국 거주 한인항일운동의 거점 팔면통. 국경도시 특유의  어둑한 하늘과 도로가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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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밀산=뉴시스】정철훈 기자=북만주 국경도시 밀산 시내 전경. 당나귀 대신 삼륜차가 짐을 싣고 도로를 가로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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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그로제코보=뉴시스】정철훈기자=중국 수분하에서 출발한 국제열차가 정차하는 러시아측 국경도시 그로제코보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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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리스크=뉴시스】정철훈기자=우수리스크 호텔 앞 전경. 어디선가 흰 당나귀가 방울소리를 울리며 나타날 것만 같은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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