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로 미뤄진 '패스트트랙 디데이'…與 속도전에 '급제동'
文의장, 파행 우려에 검찰개혁법 부의 12월3일로 연기민주 "원칙 이탈해 유감" vs 한국 "1월 말에 부의 가능"패스트트랙 법안 이견 커 12월까지 여야 극심한 대치선거제·예산안까지 '패키지 딜' 가능성도…수싸움 치열'의원정수 확대' 변수로…공수처법 권은희案도 주목
당초 이날로 예상되던 사법개혁 법안의 국회 본회의 부의 시점이 오는 12월3일로 늦춰졌기 때문이다. 문희상 국회의장은 이날 국회 본회의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과 검·경 수사권 조정 등 사법개혁 법안을 부의하지 않고 오는 12월3일 부의키로 했다고 한민수 국회 대변인이 밝혔다. 문 의상의 이번 결정은 그동안 사법개혁 법안의 본회의 부의 시점을 놓고 대립해 온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의 입장을 조금씩 수용한 절충안이다.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법안은 소관 상임위원회에서 최장 180일 심사를 진행한 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에서 최장 90일의 체계·자구심사를 거쳐 본회의에 자동 회부된다. 지난 4월30일 패스트트랙에 오른 사법개혁 법안은 이날부로 180일의 소관 상임위 심사 기간을 경과했다. 이를 놓고 민주당은 사법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가 심사했지만 활동기한 종료로 법사위로 이관된 사법개혁 법안은 소관 상임위가 법사위인 만큼 최장 90일의 체계·자구심사가 필요 없다고 주장해 왔다. 사법개혁 법안이 사개특위에서 패스트트랙에 지정된 지난 4월30일을 기준으로 180일이 지난 이날 본회의에 부의할 수 있다는 해석이었다. 반면 한국당은 소관 상임위가 법사위라 해도 체계·자구심사는 별도라는 입장이었다. 따라서 180일의 상임위 심사 기간이 끝난 이날을 기점으로 90일의 체계·자구심사를 거친 뒤인 내년 1월 말에 본회의에 넘길 수 있다고 주장해 왔다. 문 의장은 전문가들의 의견을 참고해 소관 상임위의 심사기간 180일에 법사위의 체계·자구 심사를 위한 90일이 포함돼야 한다고 봤다. 이에 따라 사법개혁 법안이 법사위로 이관된 지난 9월2일을 기점으로 체계·자구심사 기간이 카운트돼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 경우 이번 사법개혁 법안은 체계·자구심사 기간이 57일에 불과하기 때문에 90일이 경과한 12월3일 본회의에 부의키로 했다는 게 문 의장의 결론이다.
당초 정치권에서는 문 의장이 이날 사법개혁 법안을 본회의에 부의할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 그러나 한국당이 패스트트랙 지정 과정이 불법적으로 이뤄진 것이기 때문에 본회의 부의 자체가 불법이라고까지 주장하는 상황에서 20대 국회 마지막 정기국회의 파행을 막기 위해 이 같은 절충안을 내놓은 것으로 해석된다. 한 대변인도 "12월3일까지 한 달이 넘는 기한을 의장이 잡은 것은 여야 3당 교섭단체 대표들이 꼭 이 기간에 합의를 하라는데 방점이 있는 것"이라며 "국회의장으로서 원만한 국회 운영과 함께 사법개혁 법안을 갖고 논란을 벌이기보다는 그 기한 동안에 법사위에서 충분한 협의를 거쳐 합의안을 만들도록 독려하고 촉구하는 의미"라고 말했다. 이로써 여야의 패스트트랙 전쟁은 한 달 뒤로 유예됐지만 상황은 녹록치 않다. 공수처 설치와 선거제 개편을 둘러싼 여야의 입장차가 워낙 커 타협의 여지가 현재로서는 보이지 않고 있어서다. 당장 문 의장의 이날 결정을 놓고 여야의 반응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 뒤 기자들과 만나 "우리로서는 원칙을 이탈한 해석이라고 생각한다. 매우 유감스럽다"며 "국민의 명령을 유예시킬 수는 없다"고 말했다. 반면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기자들에게 "우리는 12월3일도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것도 법에 어긋나는 해석"이라며 "체계·자구심사 기간을 줘야 된다는 부분과 상치돼 적절한 해석이 아니다. 체계·자구심사 기간을 둬서 1월 말이 되면 부의할 수 있다는 게 우리의 법 해석"이라고 했다. 민주당으로서는 문 의장의 이번 결정으로 전략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당초 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은 지난 4월 패스트트랙 합의 당시 선거법 개정안을 먼저 처리하고 사법개혁 법안을 처리키로 했지만 민주당은 '조국 정국'에서 어렵게 얻은 검찰개혁의 동력을 살리기 위해 사법개혁법 선(先)처리로 방향을 튼 상태였다.
한국당 입장에서는 한 달 이상 시간을 번 셈이지만 딱히 대응 전략이 마땅치 않은 상황이다. 여야 4당의 공조에 숫자에서부터 밀리기 때문에 여론전 외에는 별다른 카드가 보이지 않는 만큼 12월까지 공수처와 선거법 개정안 등 '패스트트랙 법안' 때리기에 화력을 쏟아부을 예정이다. 특히 문 의장이 사법개혁 법안의 부의 시점으로 못박은 12월3일에는 선거법 개정안과 내년도 예산안까지 함께 본회의에 올라올 것으로 보여 여야의 대치전선은 더욱 확장될 전망이다. 준(準)연동형비례대표제 도입을 골자로 한 선거법 개정안은 지난 8월29일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에서 의결돼 법사위에 회부돼 있다. 법사위 체계·자구심사를 거치면 오는 11월27일부터 본회의에 부의될 수 있다. 513조원 규모의 내년도 '슈퍼 예산안'도 지난 2014년 제정된 국회선진화법에 따라 법정 처리시한(12월2일) 전날인 12월1일에 자동부의된다. 이에 따라 사법개혁 법안과 선거법 개정안, 내년 예산안을 놓고 여야가 '패키지 딜'을 시도하며 치열한 수싸움을 벌일 가능성이 있다. 문 의장도 최근 세르비아·아제르바이잔·조지아 등 3개국 순방 당시 기자들에게 사법개혁 법안 처리 전망과 관련해 "문제는 숫자다. 150표(본회의 통과를 위한 재적 과반수)가 안 되면 부결되는데 절대 정치는 그런 게 아니다"라며 "결국 일괄 타결밖에 답이 없다. 예산, 사법개혁, 정치개혁 등 모든 걸 뭉뚱그려서 해야 한다고 예측한다"고 한 바 있다. 여기에 소수 야당에서 주장하고 있는 의원정수 확대와 바른미래당의 공수처법 등이 변수로 작용할 수 있어 여야의 셈법은 더욱 복잡해질 전망이다.
의원정수 확대에 부정적인 국민 여론 때문에 관련 논의과 활발하지 못했다가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지난 27일 취임 100일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지난해 12월 한국당까지 함께 여야 5당이 합의한 현행 300석에서 10% 범위 내에서 확대하는 합의가 이뤄진다면 가장 바람직한 방안이라고 생각한다"고 화두를 꺼내면서 의원정수 확대 카드는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정의당 뿐만 아니라 민주평화당과 바른미래당 당권파, 제3지대 신당 창당을 준비 중인 대안신당 등도 의원정수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중이다. 이와 관련해 민주당의 공수처법 선처리 방침으로 균열이 간 여야 4당의 패스트트랙 공조 복원에 의원정수 확대가 촉매제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비슷한 맥락에서 민주당이 공수처 설치와 바른미래당 권은희안(案)을 어느 수준까지 수용하느냐도 변수가 될 수 있다. 소수 야당 중 의석수가 가장 많은 '캐스팅보터'인 바른미래당은 정부·여당의 공수처법인 백혜련 의원 안 대신 권은희 의원의 안을 주장하고 있다. 민주당 백혜련안과 바른미래당 권은희안은 공수처의 기소권 부여 방식과 인사권, 수사 대상 등에서 차이가 적지 않다. 민주당은 공수처장의 국회 동의 문제 등에 있어서 협상의 여지가 충분한 만큼 최대한 조정을 해보겠다며 문을 열어놓은 상태이지만 당내 일각에서는 문 대통령의 대선공약 실현을 위해 민주당이 그려온 공수처 그림보다 후퇴한 것이라는 부정적 여론도 존재한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