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명 살해' 北주민 추방 놓고 논란…"귀순 조치했다면 더 문제"
정부 "도주하려던 흉악범들…보호대상 아니다""애초 귀순 의사 있었다면 바로 남하했을 것"일각에선 '헌법상 국민, 재판권 줬어야' 주장남북 분단 현실 고려할 때 실효적 의미 없어재판 진행돼도 증거없고 진실규명 난항 예상"범죄 연루 北이탈주민 관련 제도 보완 필요""추방 근거 관련법 명시, 사법공조 체결해야"
정부는 합동심문 결과 해당 북한 주민들의 범행 사실이 명확하며 국가안보 차원에서 이들을 퇴거키로 했지만 남북관계의 특수성 때문에 계속해서 쟁점이 되는 모양새다. ◇귀순 의사, 왜 진정성이 없다고 판단했나 해군이 북한 남성 2명을 태운 오징어잡이배를 동해상에서 나포한 건 지난 2일이다. 닷새 뒤인 지난 7일 정부는 이들을 판문점을 통해 북한으로 추방했다. 조사 과정에서 이들은 가혹행위를 한 선장을 살해한 뒤 40분마다 2명의 동료를 불러내 모두 16명을 살해한 것으로 파악됐다. 정부가 대한민국 영토 안에 들어온 북한 주민을 추방한 건 이번이 첫 번째 사례다. 통상적인 북한이탈주민은 북한이탈주민법에 규정된 보호 신청을 할 경우 심사를 거쳐 보호 또는 비보호 결정을 받게 된다. 보호 대상이 되면 정부로부터 교육, 취업, 주거, 의료 등 정착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이번에 추방된 북한 선원들은 합동심문 조사 과정에서 '남한 귀순 의사'를 밝혔지만 정부는 범행 사실과 이동 경로, 북한 내 행적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이들이 순수한 귀순 의사를 갖고 있다고 보기 어렵고, 보호 신청 대상 자체가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선장과 동료 선원 16명을 살해한 추방 선원 A, B씨는 또 다른 공범 C씨와 함께 북한 당국의 처벌을 피해 자강도로 도주할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잡은 오징어를 처분하기 위해 입항한 북한 김책항에서 C씨가 붙잡히자 배를 타고 다시 도망을 시도했다. 해군은 지난달 31일 김책항에서 남하한 이 배를 발견하고 경고사격까지 했지만 이들은 북방한계선(NLL)을 오르락내리락하자 이틀 만에 군사작전을 통해 배를 나포했다. 정부는 선박의 이동 과정으로 볼 때 목적 자체가 도주였고, 조사 과정에서 표명한 귀순 의사에는 진정성이 없다고 봤다. 정부 당국자는 "처음부터 귀순 의사가 있었다면 NLL 근처에서 발견된 즉시 남쪽으로 내려왔겠지만 그렇지 않았다는 점이 고려됐다"고 설명했다. C씨가 북한 당국에 잡히기 전 상황에서도 이들은 '귀순'이 아닌 '도주'를 계획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선원 3명은 살인행위 이후 '죽더라도 북한에 돌아가서 죽기로 합의해서 김책항으로 돌아가 오징어를 처분하고 자강도로 가려는 계획이었다'는 진술을 했다"고 전했다. 정부는 귀순 의사를 인정할 수 없는 선원들을 외국인에 준하는 사람으로 간주하고, 출입국관리법을 준용해 추방 조치했다. 이 법 제46조에 따르면 규정된 입국 절차를 위반한 외국인을 대한민국 밖으로 강제퇴거할 수 있다.
정부는 잔혹한 살인을 저지른 이들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 및 국가안보에 위협이 될 우려가 있다고 판단해 추방 결정을 내렸지만 북한 선원들의 신병 처리 또한 논란을 낳았다. 특히 우리 국민으로도 외국인으로도 볼 수 없는 북한 주민의 이중적인 법적 지위가 문제가 됐다. 일각에서는 헌법 제3조(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에 근거해 북한 주민은 대한민국 국민이므로 강제퇴거 대상이 아니며 재판 기회를 부여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18개 대북인권단체들은 지난 11일 성명을 내고 "대한민국 영토에 도착한 북한 주민에게 헌법이 보장하는 적법 절차의 틀 안에서 변호인 조력을 받고 형사책임 문제를 규명할 기회를 줬어야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헌법상 조항일 뿐, 남북 분단의 현실적 제약을 고려할 때 북한 지역에 대한 주권이나 통치권도 인정되지 않고 있어 사법적 관할권의 실효적 의미가 없다는 반론도 제기된다. 따라서 북한 주민은 잠재적 국민에 해당하며, 실질적인 관할권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우리 국민으로 수용하기 위한 이른바 '귀순' 절차를 거치게 된다는 것이다.
살인범은 북한이탈주민법상 보호 대상이 아니지만 심사 결과 비보호 결정이 내려져도 한국에서 살아갈 수는 있다. 대개는 중국 등 제3국 체류지에 오랫동안 머물러 정착 지원이 필요치 않은 경우에 보호결정이 내려지지 않지만 정부는 추방된 선원들처럼 '중대한 비정치적 범죄자'에 대해서도 비보호 결정(2003~2019년, 9명)을 내린 바 있다. 이들이 재판에 간다고 할지라도 증거가 없어 진실규명이 어렵다는 점도 고려될 수밖에 없다. 살해한 사체는 이미 바다에 버려졌고, 배는 북한으로 돌려보내졌다. A, B씨의 진술만이 유일한 증거인 상황에서 법원이 무죄를 선고한다면 사회적 혼란은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 이상민 통일부 대변인은 지난 11일 추방 외에 다른 선택지가 있었는지와 관련해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위협이 될 우려가 있었기 때문에 추방 결정을 내렸다"며 "다른 옵션을 고려하기는 힘든 상황이었다"고 밝혔다. ◇범죄인 북한이탈주민, 앞으로는 어떻게 처리하나 이번 기회에 정부가 범죄 연루 북한이탈주민 처리 관련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북한 주민의 법적 지위, 추방 원칙과 기준이 정립돼 있지 않으면 유사한 사건에서 같은 논쟁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규창 통일연구원 인도협력연구실장은 "사법부 판례와 출입국관리법상 입국금지 조항 준용에서 북한 주민 추방에 대한 법적 근거를 찾을 수 있기는 하지만 관련 법률에 직접 명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추방 사유를 가능한 한 구체적으로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이 실장은 아울러 "중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여러 국가들이 형사사법공조조약을 체결하고 있는 것처럼 남북한 간의 형사사법공조합의서, 특히 범죄인인도합의서를 체결함으로써 범죄 문제에 공동 대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