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박영선 장관 “대한민국, 4차산업 혁명 선도 기로…AI는 필수”
취임 7개월 뉴시스 인터뷰...보수정부 원죄론 제기이명박 정부, 공기업 클라우드 이용 금지…AI 족쇄로 작용미국 특파원 시절, 코닥 등 몰락하는 공룡기업 보며 두려움유니콘 기업,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3개에서 9개로 늘어"우리기업 반도체 시장 승자지만, 거기에 취해 있어" 일침도"내년 남북관계, 올해 중 북미 대화 재개 여부가 관건" 전망
매서운 겨울바람이 몰아치며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 20일 오전 7시30분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드래곤시티 호텔. 서울, 홍성을 비롯한 전국의 중소기업인들이 중소기업 경영혁신 대회 참석차 입추의 여지가 없이 빽빽이 모인 호텔 5층 대회장에는 순간 정적이 흘렀다. 강연 시간을 예정시간보다 10분 이상 넘겨 연단에서 열변을 토하던 한 여성 강연자가 질문을 던진 직후다. 좌중을 흐르는 어색한 침묵을 깨고 일어나 자신을 홍성의 한 육가공 공장 운영자로 소개한 50대 기업인이 “정부지원자금 1억원을 비롯해 2억원을 들여 (공장을) 설치 중”이라는 답변을 내놓자 이 강연자는 “성과가 있느냐”며 재차 묻는다. '우물가에서 숭늉'을 찾는 이 성미 급한 여성 강연자가 바로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중기부) 장관이다. 완성 전 공장이 어떤 성과를 내고 있는 지 묻는다. 공중파 방송의 에듀테이너 못지않은 입담을 과시하며 분위기를 이끈 박영선 장관은 이날 강연에서 한 인공지능(AI) 벤처기업(머니브레인)이 빅데이터로 만들어낸 자신의 방송 리포트 장면을 소개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AI가 만들어낸 리포트 영상이 박 장관이 실제 원고를 읽는 모습을 촬영한 것인지, 아니면 가상인지 구분 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했기 때문이다. 뉴시스는 취임 7개월을 맞은 박 장관을 지난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중소기업 옴브즈만 사무실에서 만나 1시간 가량 인터뷰를 했다. 또 다음날 용산 중소기업 경영혁신대회 현장을 찾아 ‘AI시대 중소기업, 과거와 미래의 연결'이라는 강연 내용도 들었다. 박 장관은 인터뷰에서 19세기말 영국의 ‘붉은 깃발법’을 예시하며 “마차를 보호하다 자동차 산업의 주도권을 미국에 내준 영국의 전철을 밟지 말아야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질의에 답하며 집게와 엄지 손가락을 오무렸다 펴거나, 손바닥으로 책상 바닥을 두드리는 모습을 보였다. 알파고에 연패한 기사 이세돌을 상대로 정석에 강한 AI의 의표를 찌르라는 훈수를 뒀다는 일화도 전했다. 다음은 박 장관과의 일문일답. -BBK의혹을 제기하며 이명박 대통령을 거세게 몰아붙이던 정치인 박영선을 기억하는 분들이 여전히 많다. 재벌저격수 등의 수식어도 따라다닌다. 그런데 장관 부임 7개월을 앞두고 ‘두렵다’는 발언을 했다. 인간 박영선을 두렵게 하는 것도 있는가. “방송사 미국 특파원 시절, 샌프란시스코(실리콘 밸리) 일대의 벤처 기업들을 돌아볼 기회가 있었다. (필름 산업의 강자인) 코닥이 주최한 기자회견에도 각국의 기자들과 함께 참석했다. 또 이 회사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바뀌는 산업의 메가 트렌드에 적응하지 못해 힘겨워지는 과정도 지켜봤다. 이뿐만이 아니다. 일본의 소니도 베타맥스 비디오가 VHS방식과 경쟁에서 밀리며 어려워졌다. 우리도 정책 방향이 조금이라도 잘못되면 결과는 엄청난 파장을 가져올 수 있다. 그래서 두렵다고 했다.” -우리도 혹시 디지털 시대에 적응하지 못한 코닥의 전철을 밟고 있는 건 아닌가. 미국, 중국 등 각국이 패권 다툼을 벌이는 4차 산업혁명의 흐름에서 한참 뒤처져 있다는 평가가 많다. “국민의 정부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재임 중 초고속 인터넷 망을 전국 방방곡곡에 깔았다. 우리는 (이 덕분에) 3차산업 혁명의 중심이 됐다. 이때 나온 기업들이 네이버, 다음커뮤니케이션, 엔씨소프트 등이다. (정보혁명으로 불리는) 3차 산업혁명의 제1 벤처붐은 작년 대한민국의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도 이끌었다. 하지만 클라우드 산업이 등장하고 인공지능(AI)이 등장하는데 이 지점부터 우리는 헤매고 있다.” -삼성전자 등이 반도체 산업에서 승승장구하면서 굳이 클라우드 등 주변 산업에 곁눈질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은 아닌가. “우리는 반도체 시대의 승자였다. (우리 기업들이) 그동안 반도체를 열심히 팔았다. 너무 열심히 했다. 하지만 거기에 취해 있었다. 중국은 (2007년 이후) 대한민국에서 수출하는 반도체를 사다가 클라우드 산업에 대규모로 투자했다. 그 10년의 격차가 결국 중국이 대한민국을 따라잡는 원동력이 됐다고 본다. 중국은 현재 전 세계 슈퍼컴퓨터 500대 가운데 절반 가량을 보유한 슈퍼컴퓨터 강국이기도 하다. 우리는 5대에 불과하다.” -보수정부 원죄론도 나온다. 중국이 뛰어갈 때 4대강 사업 등 토목사업에 돈을 쏟아부으며 헛발질을 했다는 비판인 듯 하다. “이명박 정부 당시 국가정보원이 보안을 이유로 공공기업에 클라우드 사용을 불허했다. 클라우드로 연결되면 해킹 등 보안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우리 대기업들도 클라우드 산업에 투자하지 않았다. 국정원의 대응을 보며 클라우드가 보안에 상당히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는 판단을 한 것이다. 클라우드 산업에서 공격적인 투자를 하지 못하면서 장비, 소프트웨어 산업 이런 쪽에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일자리는 거기서 나오는 데 말이다. 지금도 소프트웨에 개발자가 부족하다. 세계 각국이 지닌 공통점이다.”
“미국 국방부는 민간기업인 아마존과 클라우드(AWS)서비스 이용 계약을 했다. 민간이 제공하는 클라우드 서비스에 문제가 없고, 설사 문제가 있다고 해도 해킹을 방지할 보안시스템을 만들면 된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어땠나. 스타트업 육성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나. “박근혜 정부는 출범후 1년 간은 정말 열심히 했다고 생각한다. 스마트팩토리가 등장한 것도 박 정부 때다. 비록 문서상에서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 이후 방향을 잃었다. (개념부터 모호한) 창조경제론이 아니라 스타트업 육성을 슬로건으로 삼았으면 많이 달라졌을 것으로 본다.” -우리가 만리장성을 깨고 AI주도권을 되찾아 올 수 있겠나. 중국은 구이저우(貴州)성에 세계 최초의 빅데이터 센터까지 만들어 세계 각국의 기업을 빨아들이고 있다. 13억 인구가 만들어내는 데이터도 어느 국가보다 풍부하다. “우리는 데이터 집적도가 높다. 한국은 의사들이 하루 200명 가량 환자를 본다. (전세계 각국으로 눈을 돌려봐도 이 정도로) 집적된 데이터가 있는 나라가 드물다. 미국은 10명 정도다. 한국은 또 (좁은 공간에) 모여서 산다. 디지털 데이터 생산량이 세계 5위 수준이다. 특히 네트워크는 세계에서 최초로 5G를 상용화 했다. 데이터를 AI에 얼마나 빠르게 전송할 수 있는 지 그 기술을 가져야 하는데 테스트베드로 한국은 최고다. 클라우드 투자를 강화해서 인공지능을 접목시키는 쪽으로 정책을 강화해야 한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이러한 점을 높이 평가한 것인가. 양국은 각국이 합종연횡을 거듭하는 AI대전에서 중국이나 미국과 거리를 둔 동맹군처럼 보인다. “5G를 사용하는 고객이 많이 있는 나라가 한국 밖에 없다. 한국계인 프랑스의 세드릭 오 경제재정부 및 공공활동회계부 디지털 담당 국무장관(디지털 장관)이 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내게) 그런 얘기를 했다. 한국은 세계 최고의 5G 테스트 베드라고. 한국에서 성공하면 실증이 된다고도 했다. 스타트업 리스트를 달라는 요구도 했다. 투자하겠다는 것이다. (우리는) 인공지능 관련, 이른바 엔지니어링 파워가 대단하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또 프랑스가 우리를 찾아오는 건 (한국이) 자체 검색엔진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은 구글, 아마존에 점령됐다. 프랑스의 데이터를 이들에게 공짜로 주고 있는 것이다. 미국과 중국의 (데이터) 패권을 이겨내는 게 프랑스 (마크롱 정부의) 전략 중 하나다. 네이버도 프랑스의 연구소를 샀다.” -마크롱 대통령은 경제장관 시절, 스타트업 부흥의 디딤돌을 놓은 데 이어 대통령이 된 뒤에도 마크롱법을 통과시켰다. 우리는 무엇을 했나. “유니콘 기업은 문재인 정부 들어 3개에서 9개로 늘었다. 제가 장관이 처음 됐을 때 6개 였는데 현재는 9개다. 곧 10개로 늘어날 것으로 본다. 벤처 분야는 유례없는 호황을 보이고 있다. 우리도 올해 들어서만 5조 원이 투자됐다. 작년보다 20% 정도 증가했다. 자금이 이쪽으로 모이고 있다. ” -하지만 데이터3법이 여전히 국회에 계류중이다. 우리는 속도가 너무 느린 건 아닌가. “'데이터 3법'(개인정보보호법과 정보통신망법, 신용정보법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정부 조직법에 매여 조직 재편 등 외부 변화에 신속히 대응하지 못하는 점도 한계다. (세드릭 오가 수장으로 있는) 프랑스의 디지털 경제부를 보면서 이러한 점을 느꼈다.” -중기부 정책의 우선순위는 어느 곳인가. 소상공인이나 중기보다는 벤처 쏠림현상을 빚고 있는 건 아닌가.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내는 전통산업인 이마트를 규제하고, 일자리를 없애는 AI 스타트업을 육성하는게 여전히 유효한 정책인가. “AI가 편리하지만, 일자리를 빼앗아 간다는 우려도 나온다. 하지만 이러한 우려 탓에 이 분야에 투자하면 안 된다거나, 스마트 상점을 하면 안 된다는 식의 논리는 납득 하기 어렵다. 100년 전 마차를 보호하기 위해 자동차 속도를 마차의 속도로 만들었던게 영국의 붉은 깃발법이다. 그 결과가 무엇인가. 영국은 자동차 산업의 주도권을 미국에 빼앗겼다. 마차와 자동차가 공존하는 100년 전의 세상에서 마차가 돼야 하는지, 자동차를 타고 혁신의 세계로 들어갈지 선택해야 한다.”
-중소기업들은 당장 내년 주52시간제 시행이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인공지능이 사면초가에 처한 중기 경영난을 덜어주는 해법이 될 수 있나. “AI는 전 사회 분야 어디서나 만들 수 있다. 특정한 학과가 있는 게 아니다. AI는 수학이다. 특정한 분야에서 경험을 쌓으면서 축적한 직관을 데이터가 대체하는 것이다. 유명한 교수님이 AI란 ‘마음을 보는 눈, 사랑을 전하는 손’이라고 얘기하더라. AI는 이미 우리 생활속 깊숙이 들어왔다.” -스마트팩토리 전도사이기도 한 데, 이 공장이 주52시간제 시행을 앞둔 중소기업들의 고비용, 저효율 문제를 풀 수 있나. “AI를 적용한 강원도의 한 농장의 사례를 보자. 이 농장에는 온도와 바람, 태양광을 측정하는 (사물인터넷) 기계를 달았다. 인공지능은 이러한 데이터값을 모아 바람이 이렇게 불 때, 아니면 쏟아지는 비나 햇볕의 양에 따라 무슨 영양분이 필요할지 농부에게 요청한다. 이 농장에서는 가장 맛있는 사과가 나왔다. 농사꾼 없이 농사를 지었다. 책이나 텔레비전을 보는 등 할 것 다하면서도 먹거리를 훨씬 수월하게 만들었다. 그런 세상이 왔다. 스마트 공장이 늘면 인력이 줄지 않을 까 걱정했는데, 오히려 생산성이 더 향상되고 불량률은 떨어지며 고용이 (공장당) 3명 정도 더 증가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박근혜 정부 때 개성공단이 폐쇄되면서 중소기업들은 더 힘들어졌다. 꽉 막힌 교착국면에 내년 중 변화가 생길 가능성은 있나. “올해 중 북미 대화가 재개될지가 관건일 듯 하다.” -우리도 올해 중 AI 국가전략을 발표하나. “대한민국은 4차산업 혁명 선도국가가 될 수 있는 지 아닌지 기로에 서 있다. 결국 전통 시장과 스마트 상점 연결을 유도하고 전통 제조업의 공장은 스마트화해야 하는 게 저희가 해야 할 일이다. 중기부는 스마트 공장을 업그레이드하는 숙명적 의무를 지난 부서다. 각국은 국가전략으로 AI를 발표하고 있다. 우리도 올해가 가기 전에 한번 더 발표할 것이다. 이미 한번 발표했는 데, 약하다는 평가가 많았다.” -중기부가 발표하나 “과기부가 한다.” -내년도 중기부의 핵심 목표는 무엇인가. "내년도 중기부의 목표는 세계 최강의 'D.N.A(Data, Network, AI) 코리아'를 통해 '스마트 대한민국'을 만드는 것이다. 중기부는 AI를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에 계속 접목시키는 역할을 하겠다." -끝으로 부임 후 지난 7개월 활동을 스스로를 평가한다면 100점 만점에 몇 점 정도를 줄 수 있나. “혁신과 성장의 씨앗을 뿌리려고 노력했다. 벤처, 스타트업계 등은 그 어느 때보다 상황이 좋다. 다만 소상공인 자영업자 분들은 여러운 상황에 처해 있다. 대체적으로 중소기업계에서 과거보다는 여건이 나아졌다는 이야기를 여러 곳에서 듣고 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