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억 낙찰 김환기 '우주'...우정이 빚은 '한국 미술 빅뱅'
[서울=뉴시스]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한국 미술시장 ‘황제주’ 김환기가 '세계 미술시장 블루칩'으로 등극했다. 단 10분만에 한국 미술 사상 최초로 100억원대를 돌파하면서다. 23일 오후 홍콩 컨벤션센터 그랜드 홀에서 열린 크리스티 홍콩 11월 경매에서 1971년 작 푸른점화 '우주'가 한화 약 153억 4930만원( HKD 101,955,000(구매자 수수료 포함가)에 낙찰됐다고 크리스티 코리아가 밝혔다.김환기 작가 세계 최고 기록이자 한국 미술품 경매 최고가 기록이다. 60억원대에 경매에 오른 '우주'을 갖기 위한 열기가 뜨거웠다. 10여분만에 현장과 전화 경합이 33번이나 치열하게 이어졌다. 이후 132억원을 부른 전화 응찰자가 낙찰 망치 세례를 받았다. 크리스티측은 고객 정보 보호를 위해 ‘신원 미상의 전화 응찰자’로 밝혔지만 한국인이 아닌 외국인 구매자로 알려졌다. 홍콩 시위 격화 속에서도 홍콩미술시장은 건재하다는 것을 증명한다. 미술시장 관계자들은 "한국 미술시장의 역사적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특히 국내 미술품경매사가 아닌 해외 유명 경매사, 크리스티 홍콩에서 100억원대를 돌파했다는데 큰 의미를 뒀다. 지난해 5월 서울옥션 홍콩경매에서 85억원에 최고가 신기록을 경신하면서 100억 돌파는 시간 문제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지난 5년간 김환기의 작품은 경매에 나오기만 하면 최고가를 경신했다. 자신의 신기록을 계속 바꾸며 국내 미술품 낙찰가 톱10 중 1위부터 8위까지 차지했다. 김환기 질주는 2015년 10월 서울옥션홍콩경매에서 시작됐다. 1971년작 푸른색 전면점화 ‘19-Ⅶ-71 #209’가 약 47억2100만원에 낙찰되면서, 당시 국내 미술품 낙찰가 1위 기록이었던 박수근의 ‘빨래터’를 제치고 존재감을 드러냈다. 2015년부터 2019년 상반기까지 김환기의 작품은 총 1413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이는 서울옥션·케이옥션등 국내 미술품경매사 10여곳에서 거래한 낙찰가를 분석한 결과다. 이 같은 내용은 뉴시스가 국내 언론 최초로 개발한 작품가격 사이트인 'K-Artprice(k-artprice.newsis.com)'에서 확인할 수 있다. ◇'우주'는 어떻게 경매에 나왔나 올해부터 국내 미술시장이 좀처럼 활기를 띄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대세 김환기'도 숨죽이고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지난 10월 크리스티 홍콩경매에 김환기 대작이 나온다고 알려지면서 미술시장의 촉각이 곤두세워졌다. 추정가는 73억~93억, 크리스티측은 "작품성·희귀성을 모두 갖춰 최고가를 기록할 가능성이 크다"며, "100억원 낙찰"을 전망했다. 이러한 자신감은 한국 미술품 경매 사상 이례적으로 '우주'의 단독 도록을 출간하며 홍보에도 적극적이었다. 대작이 나오기까지 타이밍은 필수. 이 작품은 크리스티 아시아 현대미술 부문 총괄 에블린 린 부회장이 5년을 숙성시켰다. 그가 경쟁사인 소더비에 근무할때부터 눈여겨봤던 작품. 계속 소장자를 찾아갔고, 결국 지난 7월 뉴욕에서 소장자의 OK를 받아냈다. 크리스티측은 "'우주' 작품은 자연의 본질을 화폭에 담고자 매진하며, 예술사상과 미학의 집대성을 위해 헌신한 그의 인생의 최고 절정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세계적인 경매사 크리스티가 153억원에 쏘아올린 '우주'는 김환기를 '아시아 미술시장 100억대 작가'로 등극시켰다. 현재 100억대를 넘어선 작가는 중국 산유·자오우키, 일본 무라카미 다카시, 나라 요시토모 등 6~7명이 올라있다. '153억 낙찰'은 세계 미술시장에 김환기 뿐만 아니라 한국 미술품의 인식과 관심도를 새롭게 바꾸는 연쇄 반응이 일어날 것이라는 전망이다.
◇김환기 주치의였던 김마태 박사 47년간 소장 작품 그림도 주식처럼 장기투자의 미학이다. 153억원을 쏘아올린 김환기의 '우주'는 우정이 빚어낸 산물이다. '우주'를 47년간 소장했던 김마태 박사(91·본명 김정준)의 선한 마음이 담겼다. 김 박사가 크리스티 부회장에게 설득 당했지만, 단순한 판매가 아니었다. “미술 시장 내에서 김환기에게 걸맞은 자리를 찾아주기 위해서”라고 알려졌다. 1971년 제작된 이후 ‘우주’는 그동안 환기미술관에서만 전시됐었고, 2013년 에블린 린 부회장이 보게 되면서 세상밖 유혹에 시작됐다. 대박을 터트린 이번 경매는 '우주'의 첫 경매다. 김마태 박사는 김환기 주치의였고, 그를 마지막까지 챙긴 친구이자 후원자 컬렉터였다. 김 박사와 김 화백의 만남은 전쟁이 맺어줬다. 1951년 부산으로 피난 온 시절, 광복동에 있는 한 다방에서있다. 예술인들이 모여 들던 그 다방에는 소설가 김말봉도 있었다. 그녀의 딸 전재금이 김 박사의 약혼자였고, 전재금과 함께 우연히 만난 김환기와의 인연은 뉴욕까지 이어진다. 1953년 김 박사는 미국으로 떠나 의사가 됐고, 김환기 화백도 홍익대 학장직도 버리고 한국을 떠나 파리로 갔다. 1959년 서울로 귀국했지만 50세인 1963년 뉴욕으로 이주할 것을 결심했다. 그때 그의 부인(김향안)이 이듬 해에 합류할 때, 항공권 비용을 김 박사가 도왔다고 한다 이에 김환기 화백은 김 박사에게 감사의 표현으로 자신의 1959년작, '섬의 달밤'을 선물했다. 이후 두 부부는 점점 더 자주 만나게 되었고, 병원 개업과 함께 김 박사는 더 많은 김화백의 작품을 구매하며 컬렉션이 점차 커져갔다. '우주'는 김환기가 뉴욕으로 이주해 가장 심혈을 기울인 작품. 254×254㎝ 크기로, 김환기의 전작 가운데 유일한 두폭화다. 1971년 완성된 이 그림을 김마태(91·본명 김정준)박사가 포인덱스터 화랑 개인전때 구입했다.
이들은 47년 후 이런 일을 상상을 했을까? 김 박사는 "김환기 화백은 언제나 환영 받는 손님이었다. 친화력 있는 웃음과 짓궂은 농담으로 인해 그는 중심 인물로 종종 주목을 받곤 했다"고 회상하며 김 박사의 거실에 걸린 '우주' 앞 쇼파에 앉아 두 팔을 벌리고 여유 있는 모습으로 찍은 김 화백의 단독 사진을 공개, 이번 김환기 '우주' 경매 도록에 실었다. 1972년 뉴욕 김마태 박사 자택. 벽면을 가득 채운 '푸른 점화' 아래서 김환기와 부인 김향안이 김마태 박사와 함께 쇼파에 앉아 기념 사진도 찍었다. 김환기의 그림을 구매한 후 벽에 걸던 날 이었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김환기는 '우주'의 기쁨을 누린 2년 후인 1974년 7월 25일 뇌일혈로 별세했다. 그 해 7월 7일에 입원하고 수술을 받았으나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뉴욕의 한 병원에서 홀연히 세상을 떠났다. 임종을 맞이할 때까지 그림을 그려 드로잉을 포함한 3000여 점의 작품을 남긴 것으로 전해진다. 1913년 2월 27일 전남 신안 섬에서 태어나 일본 도코에서 미술공부를 하고, 파리, 뉴욕에서 열정적인 화가로 살아낸 그는 미국 뉴욕 맨해튼 북쪽 외곽에 있는 묘지에 이름을 남겼다. 그 옆에는 2004년 3월 그를 따라간 부인 김향안(1916∼2004) 여사도 나란히 묻혀 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