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책] 세렌디피티…'우연과 과학이 만난 놀라운 순간'
[서울=뉴시스] 임종명 기자 = 떼었다 붙였다 편하게 쓰는 메모지 포스트잇. 지금에 와서 다시 생각해보면 참 신기하고 잘 만든 발명품이다. 그런데 의외로 포스트잇을 처음 봤을 때에 감탄한 것은 잠깐에 그쳤던 것 같다. '신기하네'하고는 메모를 하고, 필요한데 쓰기 바빴다. 그 뒤로 놀랐던 것은 이 포스트잇을 어떻게 쓰느냐를 느꼈을 때였다. 이때까지 내가 썼던 용도와는 다르게 쓰는 사례나 상황을 마주했을 때였다. 누군가는 읽고 있는 책의 책갈피로 썼고, 누군가는 잊지 않고 해야 할 일들을 적어 벽에 붙여뒀다가 해결하면 하나씩 떼어버리는, 일종의 버킷리스트처럼 사용했다. 혹자는 팝아트의 재료로 사용하면서 배트맨이나 슈퍼맨, 심슨 가족의 주인공들, 앵그리버드, 스파이더맨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런데 포스트잇을 '어떻게' 만들었는지에 대해선 그저 '만든 사람 머리 좋네'라고 여기곤 넘어갔던 것 같다. 포스트잇은 1970년 화학제품·의료기 등을 만들던 미국 회사 '3M'의 연구원 스펜서 실버가 발명했다. 실은 실버가 개발 중이던 것은 초강력 접착제였다. 애초의 목적을 놓고 보면 실버는 실패한 연구를 한 셈이다. 접착력도 떨어지고 점성도 약한 접착제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 어정쩡한 접착제는 실버의 동료에 의해 빛을 보기 시작한다. 이 접착제를 종이에 바르면 쉽게 붙일 수 있고 다시 떼어낼 때 책장이 찢어지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었다. 그렇게 1981년 포스트잇이 시장에 나왔다. 처음 발매됐을 때는 이걸 어디다 써야할까라는 고민도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머지않아 포스트잇은 각 사무실에 없어서는 안 될 물건이 됐고 애용되고 있다. 애초에 포스트잇을 만들려고 연구, 개발한 것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사회에 필요하고 유용한 물건이 개발된 것이다. 포스트잇처럼 오늘날 존재하는 것 중에는 본래 목적을 위해 연구 끝에 탄생한 것도 있지만 우연한 기회에 의도치 않게 탄생한 것들도 많다. 남성들의 발기부전 치료제 비아그라는 본래 협심증 치료제로 개발된 것이었다. 임상실험 과정에서 부작용이 나타나면서 발기부전을 겪는 남성들의 희망으로 떠올랐다. 강력한 환각 증상을 일으키는 마약 LSD도 처음에는 혈압 조절과 편두통 치료를 위한 연구를 하던 중 발명됐다. 세렌디피티(Serendipity). 뜻밖의, 또는 우연히 발견하는 능력 또는 행운. 엉뚱한 물리학자이자 '하늘과 우주'라는 잡지에서 저널리스트로 활동 중인 라파엘 슈브리에의 저서 '우연과 과학이 만난 놀라운 순간'은 바로 이러한 사례들을 모아 소개한다. 저자는 단순히 사례 소개에 그치지 않고 "어떤 과학적 발견들이 의도된 것이 아니라 예상하지 못한 뜻밖의 사건이었다면 그것들이 세계가 발전하는데 미친 영향에 대해 살펴봐야 한다"고 말한다. 본 목적과 다르게, 우연히 발견됐다고 해서 그 기술이나 능력이 평가 절하되어선 안 된다. 사소한 우연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인류를 인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르고 있던 과학적 지식과 함께 철학적 사고를 동시에 가져볼 시간이 될 것이다. 224쪽, 북스힐, 1만3000원.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