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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의 카슈끄지 판결에 '꼬리 자르기' 비판 쇄도

등록 2019-12-24 09:52:13   최종수정 2020-01-06 09:4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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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세자 측근들에는 무죄 또는 불기소

'우발적 살인'으로 규정

국제 엠네스티 "눈가림에 불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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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나마=AP/뉴시스】사진은 2014년 12월 바레인 마나마의 한 컨퍼런스에서 발언 중인 자말 카슈끄지의 모습. 2019.9.11.


[서울=뉴시스] 이재우 기자 = 사우디아라비아 법원이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암살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 11명 중 8명에게 사형 또는 징역형을 선고했다.
 
하지만 사우디 법원은 카슈끄지 암살 배후로 지목된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의 측근들은 무죄 선고를 하거나 불기소 처분해 꼬리 자르기에 그쳤다는 비판이 나온다.
 
미국에서 체류하며 워싱턴포스트(WP)에 사우디 왕실을 비판하는 칼럼을 써왔던 카슈끄지는 지난 2018년 10월2일 결혼 증명서를 발급 받고자 터키 이스탄불 주재 사우디 영사관에 들렀다가 사우디 정보기관원들에게 살해당했다. 그의 죽음은 영사관 밖에서 기다리던 약혼자에 의해 알려졌다.
 
23일(현지시간) CNN 등에 따르면 사우디 공보부는 이날 리야드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법원이 비공개 재판에서 피고인 5명에게 '카슈끄지 살인' 책임을 물어 사형을, 3명에게는 '카슈끄지 살인을 은폐한' 혐의를 물어 징역형을 선고했다"고 발표했다. 법원은 나머지 피고인 3명에게는 무혐의 판결했다.
 
사우디 법원은 사우디 정보기관이 카슈끄지 암살에 개입했다는 녹음 파일 등이 공개됐음에도 "카슈끄지 살해는 계획적 살인이 아니라 우발적인 살인"이라고 판시했다. 사우디 법원은 지난 1년간 열차례 가량 열린 공판을 공개하지 않았다. 법원은 물론 검찰도 피고인들의 실명을 공개하지 않았다.
 
카슈끄지 암살을 지휘한 것으로 알려진 사우드 알카흐타니 당시 빈 살만 왕세자 수석 보좌관은 수사를 받았지만 기소조차 되지 않았다. 검찰은 이날 "증거가 없기 때문에 기소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빈 살만 왕세자의 최측근 그룹으로 분류된다.
 
역시 카슈끄지를 영사관으로 유인하는 음모를 직접 지휘한 것으로 추정된 아흐메드 알-아시리 전 사우디 정보국 부국장도 이날 "살인과 관련된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조사를 받고 풀려났다. 이스탄불 총영사였던 무함마드 알오타이비도 "살해 당시 영사관에 없었다"는 이유로 무혐의 판결을 받고 석방됐다.
 
다만 사우디 공보부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들 3명이 해임됐다고 발표했다.
 
CNN은 사우디 법원의 판단은 미국 정보기관들이 카슈끄지 암살사건과 관련해 밝혀낸 것과 매우 대치된다고 지적했다. 

미국 중앙정보부(CIA)는 빈 살만 왕세자가 카슈끄지 암살 지시를 내렸다고 결론을 내렸다. 재무부는 알카흐타니 등을 카슈끄지 암살 계획과 실행에 관여한 혐의로 제재했다. 유엔도 '신빙성 있는 증거가 있다'며 빈 살만 왕세자에 대한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CNN은 사우디 법원의 발표 직후 사우디 국영방송에는 '정의가 이뤄졌다'는 평론가들의 발언이 쇄도했다면서 이번 판결은 빈 살만 왕세자와 카슈끄지 암살사건을 분리하고, 빈 살만 왕세자의 국제적 명성을 회복하기 위한 캠페인의 일부에 불과하다고도 꼬집었다.
 
사우디는 빈 살만 왕세자가 카슈끄지 암살 배후라는 국제사회의 지적에 대해 "현장팀의 판단이었다. 빈 살만 왕세자는 잘못된 작전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다"고 맞서왔다. 빈 살만 왕세자도 언론 인터뷰에서 "그것(카슈끄지 암살)은 나도 모르는 사이 일어났다"고 혐의를 부인한 바 있다.
 
국제엠네스티(사면위원회)는 이날 성명을 내어 "이번 판결은 사우디 당국의 개입 여부 또는 카슈끄지 유해 위치를 밝혀내는데 실패한 판결"이라고 비난했다.
 
국제엠네스티 중동연구소장인 린 말루프는 "이번 판결은 눈가림(whitewash)에 불과하다"고 평가절하했다. 인권단체들은 그간 카슈끄지 암살사건을 조사할 국제적이고 독립적인 위원회 설치를 요구해왔다.
 
터키 관영 아나돌루통신에 따르면 터키 외무부도 이날 성명을 내어 "사우디 법원의 판결은 카슈끄지 살해 사건의 모든 측면을 밝히고 정의를 실현하길 바란 터키와 국제사회의 기대에 못 미친다"고 비판했다.
 
이어 "살해 주모자와 현지 협력자 등 중요한 사실이 여전히 어둠 속에 남아있는 것은 정의의 관념에 어긋나는 것이자 책임의 원칙에 위배되는 것"며 "터키 영토에서 자행된 이번 살인사건이 명확히 밝혀지고 주모자를 포함해 모든 관련자를 규명해 책임을 묻는 것이 사법뿐만 아니라 양심적 책무"라고 지적했다.
 
미국 정치전문매체 더힐에 따르면 미국 백악관은 이날 오후 현재 사우디 법원의 판결과 관련해 공식 성명을 내놓지 않고 있다. 다만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고위 관계자는 더힐에 "이번 판결은 끔찍한 범죄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에게 책임을 지게 하는 중요한 조치"라고 옹호했다.
 
이와 관련해 더힐은 백악관을 제외한 모든 이들이 사우디 법원의 판결을 비판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과 맞서고 전세계 주요 석유 공급원을 보호하기 위해 사우디와 동맹이 필요하다면서 사우디 당국에 대한 제재에 반대해왔다.
 
상원 군사위 민주당 간사인 잭 리드는 성명을 내어 "(사우디 법원의 판결은) 정의가 아니라 희극(farce)에 불과하다"며 "살인을 명령하고 감독하고 지휘하고 은폐한 책임자들을 붙잡지 못한 채 극악무도한 범죄에 연루된 소수의 하급자 몇명만 사형과 징역형에 처하는 것은 진실을 숨기려는 끔찍한 시도"라고 비난했다.
 
리드는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한 국방수권법(NDAA)에 정보당국에게 카슈끄지 암살사건 책임자와 그의 사망사건 조사를 방해한 인물의 신원을 밝히도록 하는 내용이 반영된 것을 언급하면서 "이번 판결이 카슈끄지 암살사건에 대해 말하는 것을 막지 못할 것"이라고도 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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