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파티에 초대 된 듯 신나는 특별한 경험···위대한 개츠비
기존 공연 관객 아닌 힙스터들도 끌어들이는 '인싸' 공연최근 국내서 유행한 이머시브 공연, 확장 가져올 듯2020년 2월28일까지 서울 을지로 그레뱅 뮤지엄
'머틀 윌슨'(정해은)의 말 한마디에 어색함이 증발했다. 지난 22일 오후 을지로 그레뱅 뮤지엄, 아니 '개츠비 맨션'을 홀로 방문하기 직전까지 어색함이 몸을 휘감았다.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무너뜨린 '이머시브 공연'은 여러 번 접한 지라 낯설지 않았다. 그런데 국내에 아직까지 낯선 파티 문화가 접목돼 제대로 즐길 수 있을지에 대해 조바심이 들었다. 1층 대기실 한쪽 구석에 어정쩡하게 앉아 있을 때만 해도 기우는 현실이 될 듯했다. 어색하게 오른손에 든, '웰컴 드링크' 잔을 홀짝일 뿐이었다. 중절모를 쓴 신사가 등장하기 전까지 그랬다. 그 신사를 따라 2층으로 올라가자 신세계가 펼쳐졌다. 진짜 파티에 온 것처럼 삼삼오오 모여 시끌벅적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1920년대 미국 풍경이 자연스럽게 떠올려지도록 근사하게 차려 입은 이들도 꽤 눈에 띄었다. 홀로 온 이들이 수줍게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공연이 원작으로 삼은 미국 소설가 F. 스콧 피츠 제럴드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 속 인물들로 변한 배우들이 자연스럽게 말을 걸어주니, 외톨이가 아닌 마치 배우가 된 듯했다. 영화 속에서나 보던 파티 군무의 일원이 되기도 한다. 스윙 리듬에 맞춰 발을 앞으로 뒤로 차고, 손을 위아래로 올리고 내리면서 네 방향으로 움직이다 보면, 어느새 극과 한 몸이 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공연장에는 총 3개의 방과 로비가 있다. 로비에서는 주로 '위대한 개츠비'의 중심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리고 3개의 방에서는 여러 인물들의 속사정이 각각 펼쳐진다.
두 사람은 와인 병을 돌려 미니 게임 '진실 또는 도전'을 벌이는데 지목 당한 관객들은 테이블 위해서 춤을 추거나 마음에 드는 이성의 손등에 입술을 맞춰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대다수의 관객들은 적극적으로 게임에 임하며 극의 배경이 아닌 중심인물이 된다. 이처럼 관객들은 공연 내내 자연스럽게 움직이면서 자기만의 공연을 만들게 된다. 세상에 하나뿐인 공연이 한 사람에게만 허락되는 특별한 경험이 발생된다. 알렉산더 라이트 연출은 "우리 공연은 관객이 그 때 그 때 마주한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이야기를 즐길 수 있다"고 권했다. 이에 따라 못 보는 장면도 생겨나는데, 마음껏 상상의 나래로 퍼즐을 맞춰가는 재미도 있다. 모든 방을 보고 싶어서 지난 21일 정식 개막했는데 벌써부터 여러 번 공연을 보는 '회전문 관객'도 생겨나고 있다. '몰입형 연극'으로 번역되는 '이머시브 시어터(Immersive Theater)'는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몇 년 전부터 크게 유행한 공연 형태다. 무대와 객석이 사라진 형태로, 일반적으로 관객들이 공연장을 자유롭게 돌아보면서 둘러보거나 참여할 수 있는 형식의 작품을 가리킨다. 해외에서는 '슬립 노 모어(Sleep No More)'가 대표적이다. 호텔을 셰익스피어의 맥베드라는 가상공간으로 재탄생시켰다. 국내에서도 남산예술센터에서 아트선재센터와 공동제작한 '천사 – 유보된 제목', 서울예술단이 김연수 작가의 동명소설(2001)을 바탕으로 삼은 창작가무극(뮤지컬) '꾿빠이, 이상' 등이 이머시브 공연 형태로 큰 호응을 얻었다.
기존 뮤지컬, 연극 팬뿐 아니라 '특별한 경험'이라는 점이 힙스터들에게 강조되면서 '인싸 공연'으로 입소문이 나고 있기 때문이다. 공연 관람 풍경을 다양화시키는데 몫을 하고 있는 것이다. 공연이 끝나면 파티의 기분 좋은 피로감이 남는다. 동시에 오직 한 여자만을 사랑하고, 영원한 사랑을 꿈꾸는 백만장자 '제이 개츠비'의 '데이지 뷰캐넌'에 대한 사랑과 상실감이 주는 여운도 진하게 남는다. 개츠비 역에는 박정복과 강상준이 더블 캐스팅됐다. 연극 '레드' '알 앤 제이' '오펀스' 등에 출연하며 핫한 배우로 떠오른 박정복은 좀 더 절박한 개츠비다. 서울예술단 단원인 강상준은 '꾿빠이, 이상'에 참여했던 경험도 있는데 그는 좀 더 역동적이다. '위대한 개츠비'는 관객이 연극의 중요한 3대 요소라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준다. 공연은 시간과 공간의 예술인데 그 결과물을 예술가와 관객이 정확히 나누는 경험을 선사한다. 흘러가는 극 중 시간과 그걸 바라보는 자신의 시간이 공간 안에서 일치하는 것을 목격하게 만든다. 관객이 좀 더 자신의 마음을 열면, '위대한 개츠비'는 그 경험을 무한대로 확장시킨다. 당신, 이제 배우가 될 시간이다. 2020년 2월28일까지 서울 을지로 그레뱅 뮤지엄.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