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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왕 국새 찍힌 과거합격증, 보물 지정된다

등록 2020-03-03 10:58:52   최종수정 2020-04-13 10: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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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최광지 홍패.(사진=문화재청 제공) 2020.3.3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박정규 기자 = 630년 전 고려시대 왕의 국새가 찍힌 과거합격증이 보물로 지정된다.

문화재청은 고려시대 과거합격증인 '최광지 홍패' 1점과 고려 후기 선종(禪宗) 경전인 '육조대사법보단경' 1책, 조선 후기 '백자 항아리' 1점 등 총 3점을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고 3일 밝혔다.

'최광지 홍패(崔匡之 紅牌)'는 고려 말∼조선 초에 활동한 문신 최광지가 1389년(고려 창왕 1년) 문과 '병과 제3인'(전체 6등)으로 급제해 받은 문서다. 약 630년 전 고려 말에 제작된 매우 희귀한 사료다.

문과와 무과 합격증인 홍패는 보통 홍화씨 등으로 붉게 염색한 종이로 발급됐고 생원·진사시험 통과자에게는 합격증이 흰 종이로 발급돼 '백패(白牌)'라고 부른 것과 구분해 이같이 불렸다.

최광지는 고려 말기∼조선 초기에 활동한 문관으로 족보에는 1389년 문과에 급제했다는 기록만 있으며 본관은 당시 정치·경제적으로 영향력이 있었던, 전라북도 부안에 집성촌을 둔 전주최씨다.

홍패에는 '성균생원 최광지 병과 제삼인 급제자'(成均生員 崔匡之 丙科 第三人 及第者)와 '홍무 이십이년 구월 일'(洪武 貳拾貳年 玖月 日)이라는 문장이 두 줄로 적혀 있으며 발급연월일 위에 '고려국왕지인'(高麗國王之印)이라는 국새가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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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최광지 홍패(국새 부분).(사진=문화재청 제공) 2020.3.3 [email protected]
고려국왕지인은 1370년(고려 공민왕 19년) 명나라 황제 홍무제가 고려에 내려준 국새로 조선 건국 후인 1393년(조선 태조 2)년에 명에 다시 반납됐다.
 
고려시대 공문서에 이 직인이 찍힌 사례는 최광지 홍패가 지금까지 유일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조선 개국 직후인 1392년(조선 태조 1년) 10월에 태조 이성계가 개국공신 이제(李濟)에게 내린 '이제 개국공신교서'(국보 제324호)에 고려국왕지인이 사용된 사실이 있다.

현재까지 알려진 고려시대 홍패는 ▲장양수 홍패(국보 제181호) ▲우탁  홍패(비지정) ▲장계  홍패(보물 제501호) ▲이자수 홍패(비지정) ▲양이시 홍패(보물 제725호) ▲양수생 홍패(보물 제725호) 등 총 6점이다. 시기는 모두 최광지 홍패보다 빠르지만 관청에서 왕명을 대신해 발급했기 때문에 국왕의 직인이 없다는 점이 다르다.

문서의 형식과 성격 측면에서도 '왕지(王旨·왕명)'라는 문서명과 국왕의 인장이 찍힌 정황으로 보아 임금의 명령을 직접 실천한 공식문서로서 완결된 형식을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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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육조대사법보단경(권수제).(사진=문화재청 제공) 2020.3.3 [email protected]
이처럼 왕명의 직인이 찍혀 있고 형식상 완결성을 갖춘 예는 최광지 홍패가 유일하다고 할 수 있으며 이 같은 형식이 후대로 계승돼 조선시대 공문서 제도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또 1276년(고려 충렬왕 2년)부터 과거합격증에 '선지(宣旨)'라는 기존 용어 대신 왕지라는 용어를 사용하게 했다는 고려사(高麗史)의 기록을 처음 확인시켜 준 실물이기도 하다. 조선시대 문서제도와 관련성이 밀접하다는 점에서도 역사·학술 가치와 희소성이 인정돼 보물 지정 가치가 충분하다는 게 문화재청의 설명이다.

이번에 함께 보물로 지정 예고된 '육조대사법보단경(六祖大師法寶壇經)'은 1책(64장)으로 1290년(충렬왕 16년) 원나라 선종의 고승 몽산덕이(蒙山德異)가 편찬한 책을 고려 수선사에서 당시 제10대 조사(祖師)인 혜감국사 만항(萬恒)이 받아들여 1300년(충렬왕 26년) 강화 선원사에서 간행한 판본이다. 현재 경상남도 사천시 백천사에 소장돼있다. 

육조대사법보단경 중국 선종의 제6조인 당나라 혜능(慧能)이 육조(六祖·중국 선종의 창시자 달마대사의 법계를 이은 제6대 조사)의 지위에 이르기까지의 수행과정과 문인들의 수행을 위해 설법한 10가지 법문을 그의 제자 법해(法海)가 집성한 책이다.

혜능의 선사상을 이해하거나 선종의 역사를 연구하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경전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19세기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간행됐으며 백천사 소장본은 우리나라에 전래된 관련 경전 가운데 시기적으로 가장 이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조선 시대에 보이는 '덕이본(德異本)' 계열의 책들과도 판식의 차이점이 드러나 고려시대의 특징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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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백자 항이리.(사진=문화재청 제공) 2020.3.3 [email protected]
육조대사법보단경은 선종의 핵심사상을 파악할 수 있는 지침서이자 한국 선종의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불경으로 불교사에서도 중요하며 이 가운데 백천사 소장본은 국내 현존하는 같은 종류의 경전 중 가장 오래된 판본으로 가치가 높다고 문화재청은 전했다.

부산박물관이 소장한 '백자 항아리(白磁 大壺)'의 경우 조선 17세기 말∼18세기 초에 제작됐으며 높이가 52.6㎝에 이르는 대형 항아리다. 구연부와 어깨에 미세하게 금이 간 것을 수리했지만 거의 완전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으며 보존상태도 양호하다.

형태는 좌우가 약간 비대칭을 이루고 있으나 자연스럽고 당당하며 담담한 청색을 띤 백색의 유약이 고르게 발라져 전체적으로 우아한 품격을 나타낸다. 안정된 기형(器形)과 우수한 기법 등으로 볼 때 당시 관요(官窯·왕실 도자기 가마)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관요백자의 제작기술이 완숙한 단계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이자 지금까지 알려진 조선 후기 백자 항아리 중 크기와 기법 면에서 대표작으로 꼽을 수 있다.

문화재청은 이들 3건에 대해 30일간의 예고기간을 거쳐 각계의 의견을 수렴한 뒤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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