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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책]김영하의 시칠리아 여행기...'오래 준비해온 대답'

등록 2020-04-29 07:00:00   최종수정 2020-05-11 10:3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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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출간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 개정 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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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김영하 작가의 '오래 준비해온 대답'. (사진 = 복복서가 제공)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임종명 기자 = "지금 생각해보니 굉장히 특별한 여행이었습니다. 스마트폰이 없던 때, 구글 지도도 없던 때, 그래서 모든 것을 전화, 종이 지도, 이런 것들에 의존해서 여행을 해야만 했고, 본의 아니게 길도 많이 잃었고 생각지도 않은 많은 일들을 겪게 됐습니다." - 김영하 작가

정확히 10년 전 대학생의 마지막 여름방학을 평생 기억에 남기고자 두 달여 동안 유럽을 유랑한 적이 있다. 지하철 1호선 어느 포장마차에서 술잔을 기울이던 친구의 제안에 별다른 준비랄 것 없이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떠난 여행이었다.

발 편한 신발과 잘 마르고 시원한 옷, 수납용량이 큰 배낭, 방문할 지역들의 지도와 안내책자. 아 그리고 물병. 이 정도만 챙긴 채 세 개 도시를 각 20일 정도씩 탐방했다.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화가들과의 조우. 책으로, 사진으로만 봐왔던 명소 방문. 현지인들의 일상 따라 하기 등 멋스러운 경험도 많았지만 지도를 봐도 모르겠어서 길을 잃은 경험, 그로 인해 예고 없이 겪게 된 추억, 프랑스어·스페인어를 몰라서 시간을 허비했던 기억도 남아 있다.

김영하 작가의 신간 '오래 준비해온 대답'은 이러한 아날로그 여정을 담은 여행기다. 10여년 전 시칠리아를 여행하며 보고 느낀 것을 생생히 그렸다.

2009년 출간 됐던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의 개정 복간이다. 김영하 작가는 나이 마흔,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람이 되어 있던 때에 시칠리아를 향했다고 한다. 자신의 내면에 있었던 어린 예술가가 아직 무사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품으면서.

생생함은 기본이고 여행지 곳곳에 얽힌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나 신화, 전설과 함께 바라본 작가 '김영하'의 시선이 백미(白眉)로 꼽힌다.

신간에는 초판에 싣지 않았던 지중해 요리법이나 10여년이 지나 당시 여행을 돌아보며 작성한 새로운 서문이 담겼다. 여행에서 남긴 사진 자료 등도 새로 정리해 아날로그 여행의 감성을 더했다.

개정 복간의 제목은 김영하 작가가 10여년 전 여행 프로그램 PD로부터 '어디로 여행하고 싶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오래 준비해온 대답'처럼 시칠리아라고 대답했던 데서 비롯됐다고 한다.

 김영하 작가는 "어떤 나라나 도시를 마음에 두었다 한동안 잊어버린다. 그러다 문득 어떤 계기로 다시 그곳이 떠오른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새 그곳에 가 있다. 그런 여행은 마치 예정된 운명의 실현처럼 느껴진다"고 말한다.

김영하 작가는 '오래 준비해온 대답' 출간 관련한 출판사 문학동네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아날로그 여행은) 이제 더 이상 불가능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는 바로 그런 시절의 여행의 모습들이 담겼다"고 소개했다.

최근의 여행은 스마트폰 하나로 현재 위치와 목적지를 확인하고, 이동수단까지 내 위치로 부를 수 있다. 방문할 곳의 운영 시간을 미리 확인하고 예약한다. 늦지 않도록 도착해서 관람한 뒤 숙소로 돌아가는 과정까지, 스마트폰은 빼놓을 수 없는 여행 필수품이 됐다.

하지만 기술 발전으로 편리함을 누리게 된 대신 불편했던 시절, 불편함으로 인해 얻을 수 있었던 추억은 경험하기 어려워졌다. 그래서인지 김영하 작가의 시칠리아 여행기에서는 그 불편함에 대한 향수마저 느껴진다. '나도 이런 적 있는데' 하며 그 때를 떠올리는. 300쪽, 복복서가, 1만6500원.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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