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성미경 "더블베이스는 '남자 악기' 편견 깨고 매력 알리고 싶어"
30일 예술의전당 IBK 챔버홀서 리사이틀
독일 작가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단편소설 '콘트라바스'에는 국립오케스트라의 콘트라바스 연주자가 자신의 존재를 자각하지 못하는 세상에 푸념을 늘어놓는 장면이 나온다. 콘트라바스·콘트라베이스로도 불리는 더블베이스는 쥐스킨트의 묘사처럼 오케스트라의 주변부, 즉 조연의 이미지가 강하다. 이름 없는 소시민의 일상을 대변하는 듯하기도 하다. 높이 2m 안팎, 무게 20㎏의 안팎으로 기골이 장대하고 저음 파트를 담당하고 있어 '남성적인 악기'라는 이미지도 덧대 있다. 작곡가 생상스의 관현악곡 '동물의 사육제'에서는 코끼리를 담당하니, 이 악기의 묵직함에 대해서는 새삼 중언부언할 것이 없다. 하지만 더블베이시스트 성미경(27)은 이런 더블베이스에 대한 선입견을 부수는 대표적인 연주자다. 그녀 덕에 더블베이스도 바이올린이나 첼로 못지않은 독주 악기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오랜기간 해외에서 활동한 그녀가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활동하겠다고 선언했다. 11일 오후 종로에서 만난 성미경은 "한국에서 활동하면서 더블베이스에 대한 편견을 깨고 싶어요. 이 악기의 매력을 제대로 알리고 싶다"고 했다.
그녀 역시 더블베이스처럼 활짝 열려 있다. 차를 타고 다닐 때나 가장 많이 듣는 음악 장르는 EDM. 트로피컬 하우스를 대표하는 노르웨이 출신의 DJ 겸 프로듀서 카이고를 가장 좋아한다. 다만 옛날에는 다른 장르의 뮤지션과 협업하고자 하는 열망이 강했는데, 요즘음 클래식 자체에 집중하고 싶다고 했다. "아무래도 더블베이스가 재즈 악기로도 알려져 있잖아요. 당분간 클래식 악기로 알리는데 좀 더 집중을 하고 싶은 욕망이 있습니다." 성미경은 국내에서 보기 드문 '더블베이스 패밀리' 출신이다. 부친 성영석은 서울시향 더블베이스 단원 출신이고 오빠 성민제는 더블베이스계 스타 연주자다. 성미경은 피아노, 첼로를 배우기도 했지만 귀소 본능처럼 더블베이스에 빠져들었다. 이후 일사천리로 경력을 쌓아갔다. 특히 2010년 독일 슈페르거 콘트라베이스 콩쿠르에서 1위와 청중상을 비롯 총 5개의 상을 휩쓸면서 주목 받았다. 한국예술종합학교를 나와 미국 콜번 음악대학교 재학 중 상하이 심포니 오케스트라 오디션에 합격했다. 이 오케스트라 수석 연주자 활동 뿐 아니라 아카데미 더블베이스 교수로 활동하며 후학양성에도 힘썼다.
질질 끌고 다녀야 하며 넘어지기라도 하면 함께 나뒹굴 수밖에 없는 더블베이스의 무게감이 한 때 버겁기도 했지만 성숙해질수록 더블베이스가 좋아진다며 싱글벙글이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이후 해석이 조금씩 달라져요." 오케스트라에서 굵은 음을 '소리 양탄자'처럼 깔아주는 더블베이스처럼, 성미경은 사회 전반에 관심도 많다. 최근에는 편부모 가정을 위해 연주하고 싶다는 마음도 품게 됐다. 성미경의 국내 본격적인 활동 신호탄은 오는 30일 오후 2시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IBK 챔버홀에서 여는 리사이틀이다. 본래 더블베이스를 위한 곡이 아닌 첼로 작품들을 편곡해서 들려준다. 슈베르트의 백조의 노래 D. 957 중 4. 세레나데 d단조, 멘델스존의 첼로 소나타 D 장조 No. 2, Op. 58, 라흐마니노프의 첼로 소나타 g 단조, Op. 19 등이다. 러시아 출신 피아니스트 일리야 라쉬코프스키가 함께한다. 가냘픈 외모와 달리 더블베이스를 닮은 저음이 인상적인 성미경은 믿음직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더블 베이스 곡이 아닌 첼로 곡을 선택한 것은 색다름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코로나19로 인해 몸도 마음도 지쳐있는 때에 음악으로 위로를 드리고 싶어요."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