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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공백기 文대통령 외교는…한미 결속, 한일 개선, 한중 보류

등록 2020-11-06 05:30:00   최종수정 2020-11-09 09:0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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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바이든 누가 되든 靑 "굳건한 한미동맹 지속 발전"

박지원, 한일 관계 개선 특명…'文-스가 선언' 도출 관심

사드 봉합 3년 만에 갈등 수면 위로…한중 관계 표류 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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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서울=뉴시스] 김태규 기자 = 미국 대선이 결과를 쉽게 예측하기 힘든 대혼전 양상으로 전개되면서 문재인 대통령이 구상하고 있는 외교안보 전략에 많은 관심이 쏠린다. 문 대통령은 미국 국내 정치의 불확실성에 따라 한반도 정세를 예측하기 어렵다고 전망하고 상황별로 정교한 시나리오를 준비해온 것으로 전해진다.

청와대는 5일 오후 3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갖고 미국 대선 개표 상황에 대해 집중적으로 논의했다. 문 대통령은 오후 4시부터 2시간 동안 외교안보관계장관 회의를 주재하며 대선 결과에 따른 영향과 앞으로의 정부의 대응 방안 등을 다각도로 검토했다.

문 대통령은 그간 24시간 풀가동 되고 있는 외교부 미 대선 대비 태스크포스팀(TF)의 분석 결과와 국가안보실 2차장 라인의 별도 분석 결과 등 수백 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자료를 검토해 왔다.

문 대통령은 논의된 내용들을 토대로 적절한 시점에 외교 프로토콜에 따른 대미 정상외교 시스템을 가동할 예정이다. 당선 축하 메시지를 담은 외교 전문 발신, 당선인과의 통화 순으로 절차를 밟는다는 계획이다.

서훈 안보실장은 지난 4일 국회 운영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문 대통령 차원의 미 대선 결과 맞춤형 준비 상황에 대해 "외교 관례에 따라 할 수 있는 통화와 축하 메시지 등을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

다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일부 지역에서의 개표 중단 소송을 제기한 상황이라 첫 메시지인 축전 발신의 세부 시점이 가변적인 상황이다. 청와대 내부에서도 수신 대상이 아니라 공식 메시지 첫 발신 시점과 관련해 고민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트럼프 대통령의 불복 가능성에 따른 축전 발신 보류 여부에 대해 "시나리오별 대응에 대해서 답변 드리기는 적절치 않다. 회의 결과를 기다려 달라"며 구체적인 언급을 삼갔다.

다른 청와대 관계자는 "청와대발 공식 입장은 당분간 기다려 볼 수밖에 없다"며 "미국 상황이 워낙 가변적이라 신중을 기하고 있다. 섣불리 입장을 내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트럼프 vs 바이든 당선 무관…靑 "굳건한 한미동맹 지속 발전"

최종 당선 결과와 무관하게 정부의 외교전략은 당분간 한미 관계 위주로 진행될 수 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때는 기존 한미 관계 기조를 재확인하는 차원에서, 조 바이든 후보자의 당선 때는 탐색전 차원에서 한미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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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박진희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29일 오전 국가위기관리센터에서 열린 2019년 을지태극 국가안전보장회의(NSC)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2019.05.29. (사진=청와대 제공) [email protected]
최근 청와대가 '굳건한 한미 동맹'을 유독 강조해 온 것도 이런 흐름과 무관치 않다. 미 정권 교체기 과정에서 발생하게 될 불가피한 공백기를 활용해 한반도 주변 4강 외교의 핵심 축인 한미 동맹 이슈를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기조는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를 계기로 등장한 2기 외교안보라인 구성 완료 후 뚜렷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문 대통령과 청와대는 지난 7월3일 서훈 안보실장 취임 이후 이날까지 여러 계기를 통해 17차례나 '한미 동맹'을 강조했다. 일주일에 최소 한 번 이상 '한미 동맹'을 언급한 셈이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우리 정부는 굳건한 한미 동맹을 계속 유지하는 것은 물론, 더욱 발전시켜 나가기 위한 협력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3개월 동안 정부의 고위급 외교 인사가 차례로 미국을 찾았던 것도 이러한 흐름 속에서 이뤄진 것으로 볼 수 있다. 7월 말 김현종 2차장의 미국 워싱턴 D.C. 방문을 시작으로 9월초 최종건 외교부 제1차관, 10월 중순 서훈 안보실장 등 정부 고위급 외교인사들이 잇따라 미국을 방문했다.

특히 최종건 1차관이 기존 한미 워킹그룹과는 별도로 외교당국간 국장급 실무협의체인 '동맹대화' 신설을 미국 측에 적극 제안한 점에서 한반도 정세와 관련한 정부의 방향타가 어느 쪽을 향해 있는지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평가다.

익명을 요구한 외교 소식통은 "지난해 한미 워킹그룹이 남북관계 발전에 '족쇄' 역할을 하고 있다는 국내 여론이 한미 동맹 강화를 위해 정부가 움직일 수 있는 외교적 공간을 상당폭 좁혀 왔다"며 "미국 대선 전에 한미 동맹 문제를 해결할 필요성이 제기됐고, 정부 차원의 의지를 적극적으로 나타내기 위한 도구적 장치로 추가 협의체 제안이  이뤄졌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 외교안보의 컨트롤타워인 서 실장이 취임 3개월 만인 지난달 미국을 찾은 것은 앞서 한미 간 진행됐던 논의 사항을 최종 점검하고, 향후 우리 정부의 외교정책 노선을 설명하기 위한 성격의 자리로 풀이된다. 이 과정에서 미 측으로부터 한미동맹의 연속성을 확인 받은 것으로 평가된다.

트럼프 행정부 체제에서 표류하고 있는 한미 방위비분담금 협상, 이와 맞물린 주한미군 철수 문제 여부, 문 대통령 임기 내 실현을 목표로 한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등은 한미 동맹과 관련한 핵심 이슈다.

강 대변인은 지난달 18일 서 실장의 방미 결과 브리핑에서 "서 실장은 이번 방미에서 강력한 한미동맹에 대한 미 측의 변함없는 지지와 신뢰를 재확인했으며, 공통의 가치에 기반해 동맹을 미래지향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다양한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고 설명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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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전진환 기자 = 서훈 국가안보실장이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회운영위원회의 청와대 대통령비서실·국가안보실·대통령경호처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email protected]
박지원, 한일 관계 개선 특명…'문재인-스가 선언' 도출 관심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일본 총리 체제에서 최악의 국면을 벗어나지 못했던 한일 관계에도 변화의 조짐이 감지된다.

지난해 7월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를 계기로 경색되기 시작했던 한일 관계는 우리 정부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통보와 조건부 유예, 세계무역기구(WTO) 정식 제소 등이 더해지며 '강대강(强對强)' 대치로 이어졌다.

더이상 회복이 어려울 것만 같았던 한일 관계는 신임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총리 체제 출범과 함께 반전의 계기가 마련됐다는 평가다. 스가 총리가 외교적으로 아베 정부노선을 계승했다고는 하지만 적절한 타협점을 만들 수 있다는 기대감이 한일 외교가 안팎에서 조금씩 나오고 있다.

다만 스가 총리 역시 한일 갈등의 근본적 배경으로 깔려 있는 강제징용 대법원 판결에 대한 한국 정부의 전향적인 조치 없이는 관계 개선을 먼저 시도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어 쉽게 풀리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24일 스가 총리 취임 기념 한일 정상통화에서 "강제징용 문제와 관련해 (한일) 양국 간 입장에 차이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양국 정부와 모든 당사자들이 수용할 수 있는 최적의 해법을 함께 찾아나가길 바란다"고 제안한 바 있다.

이에 스가 총리는 "한일 양국 관계가 과거사를 비롯한 여러 현안들로 어려운 상황이지만, 문 대통령과 함께 양국 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구축해 나가기를 희망한다"며 "현안 해결을 위한 대화 노력을 독려해 나가겠다"고 했다.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는 지난달 20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스가 총리가 표면적으로는 아베 라인을 (따라)가고 있지만 사실 한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싶어하는 일본 안의 자민당 세력도 닛카이파를 중심으로 분명히 존재한다"고 분석했다.

22년 전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물밑에서 이끌어 냈던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의 내주 일본을 방문키로 한 것도 한일 관계 개선의 물꼬를 트기 위한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에게 박 원장에게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한 역할을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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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원장은 1998년 당시 김대중 정부의 문화관광부 장관으로, 일본 운수성(한국의 국토교통부) 장관을 지낸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 자민당 간사장과 연을 처음 맺은 뒤 막역한 관계를 유지해오고 있다.

당시 박 원장은 니카이 간사장과의 물밑 협상을 통해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을 이끌어냈다. 박 원장은 일본 문화의 국내 개방을, 니카이 간사장은 한일 항공노선 신설을 협상 카드로 제시한 것이 공동선언 발표의 결정적 역할을 했다.

박 원장은 이번 일본 방문 기간 강제징용 해법과 관련한 돌파구 마련을 시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일본측이 거부했다가 최근 긍정적 반응을 보이고 있는 '문희상 안(案)'을 중심으로 퍼즐을 맞출 수 있다는 관측이다.

문희상 전 국회의장이 제시했던 '문희상 안'은 한일 양국 기업과 국민(1+1+α)이 자발적으로 낸 성금으로 재단을 설립해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위자료 또는 위로금을 지급하는 일종의 절충안이다.

다만 '문희상 안'에는 문 대통령이 내세우고 있는 '피해자 중심주의'가 배제돼 있어 제2의 '12·28 위안부 합의'가 될 수 있다는 우려의 시각이 있다. 최근 일본 언론을 통해 신일본제철 등 가해 기업이 대법원 판결 대로 배상에 응하면 추후 한국 정부가 보전해주는 방안이 새로운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만일 박 원장이 물밑 협상을 통해 합의를 이끌어낸다면 올해 내 국내 개최를 목표로 하고 있는 한중일 정상회의 성사는 물론, 문 대통령과 스가 총리의 한일 양자 정상회담에서 '문재인-스가 선언'이 탄생할 수 있다는 기대감도 나온다.

사드 봉합 3년 만에 갈등 수면 위로…한중 관계 표류 예상

한미 동맹 강화, 한일 관계 개선의 흐름으로 비춰볼 때 한중 관계는 당분간 잠정 보류될 가능성이 크다. 당초 연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국빈 방한과 한중 정상회담을 모색했지만 현실적으로 성사되기 어렵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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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중국)=뉴시스]박영태 기자 =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3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정상회담 전 악수를 하고 있다. [email protected]
시 주석의 방한과 관련한 청와대의 기류는 크게 3차례 바뀌어 왔다. 상반기 방한→연내 방한→코로나19 상황 안정 여건 조성된 적절한 시기 등이다. 지난 8월 양제츠(楊潔篪) 중국 공산당 외교 담당 정치국원의 부산 방문 때 서훈 안보실장과의 주된 논의 의제 역시 시 주석의 방한 관련된 내용이었지만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러한 상황은 미·중 갈등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한미 동맹에 대한 구심력이 크게 작용할 수록 한중 관계는 원심력이 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과 중국은 봉합하기로 했던 주한미군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둘러싼 갈등이 재현되고 있다.

남관표 주일본대사는 지난달 21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2017년 국가안보실 제2차장 시절 본인이 체결한 '10·31 합의(한중 관계 개선 관련 양국간 합의)' 내용을 전면 부정하며 논란의 중심에 섰다.

남 대사는 '중국과 사드를 추가 배치하지 않겠다고 한 3불(不) 입장을 표명했고, 한중 교류협력을 정상화 시키기로 발표한 사실을 기억하느냐'는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 질의에 "약속 부분에 차이가 있다"며 "제가 어디에 3불 약속을 해줬다고 말씀하시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부인했다.

남 대사의 이러한 발언은 2017년 11월 문재인 대통령의 중국 국빈 방문을 앞두고 10월31일 중국과 체결한 이른바 '10·31 합의' 문서에  '3불(不)' (사드 추가 배치 중단, 미국의 미사일방어체계 참여 중단, 한·미·일 군사동맹 발전 중단)이라는 표현이 명시적으로 담기지 않았다는 점을 이유로 한중간 합의 자체가 없었다는 취지의 부인을 한 것으로 풀이된다.

과거 중국과 맺은 사드와 관련 3불 합의가 부각될 경우 한미 관계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우려가 반영된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중국 외교부는 대변인 성명을 통해 "한중 양국은 2017년 10월 사드 문제를 단계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합의'를 달성했고 양자관계를 정상적인 궤도로 되돌리는 사안을 추진하기로 했다"며 남 대사의 발언을 반박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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