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대로]유승준은 미워도…남성 복수국적자들의 항변
현행법, 18세 때 국적 선택 기회 이후 이탈 불가18세 넘기고 뒤늦게 국적 이탈 허용 요청 상당수자신이 복수국적인지, 규정 있는지 몰랐던 경우성인도 되기 전 진로·국적 결정 어렵다 호소도마동석·최우식 등 외국 국적 연예인들과 형평성전문가들, 대체복무 도입-사증 제도 개선 제안
※ '군사대로'는 우리 군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전하는 연재 코너입니다. 박대로 기자를 비롯한 뉴시스 국방부 출입기자들이 독자들이 궁금해할 만한 군의 이모저모를 매주 1회 이상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서울=뉴시스] 박대로 기자 = 병역 기피 문제로 2002년 이후 한국 땅을 밟지 못하고 있는 가수 스티브 유(유승준)를 둘러싸고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유승준은 1990년대 가요계를 풍미했던 인물이다. 그는 군 입대를 앞둔 2002년 돌연 미국 국적을 취득하는 방법으로 병역을 면제 받아 국민적 공분을 샀다. 이후 유승준은 법무부로부터 입국 제한 조치를 당하면서 18년째 한국 땅을 밟지 못하고 있다. 그는 20년에 걸친 소송전 끝에 지난해 3월 대법원에서 승소했지만 같은 해 7월 LA총영사관에서 비자발급을 또다시 거부당하자 거듭 행정소송을 내는 등 소송을 이어가고 있다. 새해에도 유승준은 입국 못할 전망이다. 모종화 병무청장은 지난해 10월28일 "입국 후 한국에서 연예인 등으로 경제활동을 할 경우 사회적 악영향을 끼칠 것으로 판단한다"며 입국 금지 입장에 변함이 없다고 재차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김병주 의원은 지난해 12월17일 유승준처럼 병역기피를 위해 한국 국적을 포기한 사람의 국내 입국을 막는 패키지 법안(국적법·출입국관리법·재외동포법·국가공무원법·지방공무원법)을 발의했다. 이 법안들에는 병역기피자의 취업 비자 발급 제한을 37세까지로, 재외동포 체류 자격 비자(F-4 비자) 발급 제한을 45세까지로 정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유승준은 법안 발의 소식에 결국 폭발했다. 그간 정부 눈치를 보며 자세를 낮춰왔던 유승준은 자포자기한 듯 추미애·조국 자녀 의혹, 세월호 참사, 촛불 집회, 박근혜 탄핵 등을 언급하며 정부 여당 측을 비난하고 자신의 보수우파 성향을 여과없이 드러냈다.
재외동포재단의 한우성 이사장은 지난해 10월19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우리나라가 대법원 판결에 의해 입국을 허락했으면 (유승준의 입국이) 허용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발언해 파장을 일으켰다. 이는 재외동포를 지원하는 기관의 장으로서 젊은 재외동포 남성들의 고민을 반영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현행법은 재외동포 남성들에게 젊은 나이에 감당하기 쉽지 않은 과제를 안겨주고 있다. 현행법을 보면 한국인 아버지나 어머니가 외국에서 낳은 아이는 해당국 국적과 한국 국적을 동시에 보유한 '선천적 복수국적자'가 된다. 선천적 복수국적자인 여성은 만 22세까지 국적을 선택해야 한다. 이 기간 내에 국적을 선택하지 않더라도 추후 국적을 선택하거나 이탈할 기회가 있다.
이런 규정은 복수국적자와 단일국적자 간 형평성을 확보한다는 취지로 마련됐다. 이런 규정을 두지 않으면 복수국적인 남성이 한국 국민으로서 혜택을 누리다가 병역 의무를 면탈하기 위해 군 입대 나이에 이르러 한국 국적을 포기하는 불합리한 상황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이 규정은 언뜻 보기에 합당한 듯하지만 실제로는 많은 재외동포 남성들이 문제점을 지적하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뒤늦게 국적이탈 허용을 요구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복수국적자인지 몰랐다거나, 복수국적자가 만 18세가 되는 3월 이전에 국적을 정리해야 한다는 규정을 몰랐다고 항변하면서 자신들이 대한민국 국적법의 피해자라고 주장한다. 또 다른 사람들은 규정을 알았더라도 성인도 되기 전인 만 18세 이전에 자신의 장래 진로를 결정하고 한국 국적 포기를 결정하기 어렵다고 주장하고 있다.
재미동포 중 성인이 돼 미국 사관학교 입학이나 정부 고위직 등에 진출하려다 뒤늦게 자신이 대한민국 국적도 보유한 복수국적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사례가 있다. 이들은 복수국적자라는 사실이 취업이나 진학에 불이익이 있다고 판단해 대한민국 국적을 이탈하고자 하지만 대한민국 국적법은 병역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이상 국적 이탈을 허락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이들은 한국 출신 남성들이 거주국에서 역량을 발휘하는 데 현행법이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현행법의 허점은 또 있다. 애초에 외국 국적만 보유한 한국 출신 부모에게서 태어난 남성이나 18세 이전에 국적을 이탈한 남성은 병역 의무 없이도 한국에 들어와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다는 점이다. 선천적 복수국적자는 국민으로서 권리와 동시에 의무가 부과돼 병역 의무를 이행해야 하는 반면 외국국적만 보유한 동포는 재외동포(F-4) 사증을 발급받고 국민으로서의 의무는 면제된 상황에서 사실상 국민에 준하는 혜택을 누리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유승준처럼 한국 국적을 이탈하거나 상실해 외국인이 된 남성은 40세가 될 때까지 재외동포 사증 발급이 제한돼 입국조차 못하는 반면 마동석이나 최우식, 안효섭 등 외국 국적인 연예인은 병역 의무를 이행하지 않고도 재외동포 사증을 발급받아 한국에서 배우로 활동하는 데 제약이 없다.
전문가들은 재외동포 남성들이 겪는 이 같은 고민을 덜어주기 위해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견해를 밝히고 있다. 김종세 계명대 법학과 교수는 '병역미필자 국적이탈허가의 예외 가능성에 대한 소고' 논문에서 재외동포 남성을 위한 대체복무제도 도입을 제안했다. 김 교수는 "대체복무가 입법대안으로 마련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며 "물론 현시점에서 병역미필자의 국적이탈허가의 예외적 규정을 마련하기란 국민의 법 감정이나 법사회질서의 논란이 될 수 있지만 이민자 관리 등 대체복무라는 병역의 종류에 있어서 다양한 형태로 국민의 의무를 다한다면 장기적으로 예외규정이 마련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오정은 한성대 교수는 '재미동포사회의 선천적 복수국적제도 개선 요구 분석' 논문에서 재외동포 사증 제도를 고침으로써 선천적 복수국적 남성들의 불만을 다소나마 달래야 한다고 했다. 오 교수는 "2010년 제10차 개정국적법을 제정하면서 선천적 복수국적을 허용한 취지는 우수한 인재가 한국국적을 보유하고 한국을 위해 활동하도록 유도하려는 측면이 있었다"며 "그러나 재미동포사회의 불만은 선천적 복수국적 허용이 본래의 취지와 달리 우수한 재외동포가 한국을 거부하는 부작용을 낳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병역의 의무를 이행한 복수국적자 입장에서는 자신과 병역의 의무를 면제 받은 외국국적 동포가 한국에서 누리는 권리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납득하기 어렵다"며 "재외동포 사증 보유자의 국내 혜택은 유지하되 사증 취득 자격요건을 강화하는 방식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