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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대로]특수능력 갖춘 北 민간인들의 '경이로운 귀순'

등록 2021-02-21 08:30:00   최종수정 2021-03-02 09:3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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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바다 6시간이나 수영해 고성 해안 도착

작년 11월 체조선수 출신 3m 이상 철책 넘어

군인들 중심에서 민간인 귀순으로 변화 양상

北, 국가안전보위성 등 통해 간첩 공작 지속

민간인 귀순 쉬워지면 대량 탈북도 배제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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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박진희 기자 = 합동참모본부는 17일 오전 "우리 군이 어제 동해 민통선 북방에서 신병을 확보한 인원(귀순 추정)은 잠수복과 오리발을 착용하고 해상을 통해 GOP(일반전초) 이남 통일전망대 부근 해안으로 올라와 해안철책 하단 배수로를 통과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사진은 강원도 고성군 통일전망대 인근 남측 해변. 2021.02.17.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박대로 기자 = 지난 16일 동해안으로 넘어온 북한 남성이 거친 겨울 바다에서 6시간에 걸친 수영 끝에 우리측 해안에 도착했다고 진술했다. 이처럼 뛰어난 신체 능력을 가진 북한 민간인들이 남북 접경지역을 직접 건너오기 시작하면서 귀순 양상이 달라지는 모양새다.

군은 해당 남성이 겨울 바다 10㎞를 6시간 동안 수영해 남쪽으로 왔다고 설명하고 있다. 군인도 아닌 민간인 남성이 어업용 머구리 잠수복과 오리발을 착용하고 월남에 성공했다는 게 군의 설명이다.

일각에서는 불가능에 가깝다는 의견이 제시된다. 16일 일기예보에 따르면 동해에는 풍랑경보가 발효될 정도로 높은 파도가 일었다. 당시 해수 온도는 영상 8도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해수 온도 8도에서는 생존 가능 시간이 약 2시간이고 의식이 지속되는 시간 역시 45분에 불과하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 때문에 이 민간인은 남하 과정에 관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의심까지 받고 있다.

게다가 이 민간인은 육군 22사단이 관할하는 철책 아래 배수로 48개 중 몇 안 되는 미보완 지점을 콕 집어 통과하는 주도면밀함을 과시했다. 이에 대해 초인적인 수준의 체력과 정신력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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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전진환 기자 = 박정환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이 17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22사단 해안 귀순(추정) 관련 상황 보고를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2021.02.17. [email protected]
귀순한 북한 민간인이 일반인을 뛰어넘는 신체능력을 보여준 사례는 최근에도 있었다.

지난해 11월3일 체중 50여㎏의 기계체조 선수 출신 북한 민간인 남성이 마찬가지로 22사단 GOP(일반전초) 철책을 넘었다. 이 민간인은 3m가 넘는 철책을 뛰어넘는 놀라운 기량을 발휘했다.

이 민간인은 철책 기둥을 타고 올라간 뒤 철책 상단의 Y피켓(Y자 모양의 긴 쇠막대)에 안착했다. 공교롭게도 이 Y피켓에 하중 감지 장비가 설치돼있지 않았다. 이 민간인은 체조를 할 때 익혔던 날렵한 몸놀림으로 철책을 넘은 뒤 우리측 민간인 통제선 부근까지 어려움 없이 남하했다.

이 남성은 밤새 군의 수색과 추적을 따돌리다 이튿날 오전에야 붙잡혔다. 게다가 이 남성은 미확인 지뢰지대를 휩쓸고 다니며 감시망을 교란하는 능력까지 발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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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합동참모본부는 4일 "우리 군은 동부지역 전방에서 감시장비에 포착된 미상인원 1명을 추적해 오늘(11월4일) 오전 9시50분께 안전하게 신병을 확보했다"고 밝혔다.(그래픽=전진우 기자) [email protected]
이처럼 북한 민간인이 군사분계선을 넘어 우리측까지 넘어와 붙잡힌 뒤 뒤늦게 귀순의사를 밝히는 일은 흔치 않다. 그간 육로로 월남해 귀순한 북한 사람들은 대부분 군인이었다.

2005년 북한 강원도 평강군 방공포병사령부 예하 122㎜ 포병부대 소속인 초급 병사 리용수의 월남 귀순, 2012년 GOP 철책을 넘은 북한군 병사가 우리 군 막사 문을 두드린 노크 귀순 등도 군인에 의한 귀순 사례였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최근 넘어온 민간인들이 북한 당국에 의해 남파된 훈련된 인원일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북한은 간첩 남파를 위한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

김윤영 경찰대학 치안정책연구소 연구관이 발표한 '북한당국의 탈북민 재입북 공작 대비 탈북민 신변보호 개선방안' 논문에 따르면 현재 북한 국가안전보위성과 군 보위국(옛 보위사령부)은 위장 탈북민 간첩 남파와 탈북민 재입북 공작을 하고 있다.

특히 국가안전보위성은 2012년부터 해외 반탐(反探: 대간첩) 전담부서 안에 탈북자 귀환 공작팀을 신설해 탈북민 대상 대남공작활동을 수행하고 있다. 이들은 과거 대남공작원을 양성해 직접 남파했던 것과 달리, 간첩을 탈북민으로 위장시켜 탈북민 국내입국 방식으로 침투시키는가 하면 국내외 탈북민을 재입북시켜 대남비방 선전 등 김정은 체제 선전도구로 활용하고 있다.

북한의 직파 간첩공작 빈도가 2000년대 이후 줄어들었지만 완전히 중단됐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북한은 간첩지령방송인 A3통신을 2000년 12월에 중단한 대신 다른 방식의 간첩통신을 지속하고 있다. 또 인터넷을 활용한 사이버 간첩통신, 변형된 A3지령(편지 낭독 형식 등) 하달, 합법적 남북교류를 이용한 지령수수와 보고 등을 통해 간첩교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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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뉴시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된 간첩 원정화씨의 첫 공판이 열릴 예정된 10일 오전 원씨가 법무부 호송차량에서 내려 수원지법으로 향하고 있다. 이에 앞서 원 씨는 첫 공판을 하루 앞둔 9일 범죄 혐의를 대부분 인정하고 반성하는 취지의 전향서를 제판부에 제출했다. /강종민기자 [email protected]
탈북자로 위장한 간첩이 발각된 사건으로는 원정화 사건(2008년), 김명호와 동명관 사건(2010년) 등이 있다.

원정화 사건은 북한이 원정화를 중국에서 한국 국적의 남성과 결혼시켜 입국하게 한 위장간첩사건이다. 원정화는 북한으로부터 탈북자 동향 파악, 국가 주요시설 위치 파악, 황장엽씨 위치 파악 등 지령을 받고 임무를 수행했다. 그는 탈북민 정보와 군사기밀 등을 북한에 넘긴 혐의로 체포돼 2008년 징역 5년을 선고 받았다.

김명호와 동명관은 북한 정찰총국 소속 공작원으로 위장 탈북했던 인물들이다. 이들은 황장엽을 살해하라는 지령을 받고 활동하다 우리 공안당국에 덜미를 잡혀 징역 10년을 선고 받았다.

이후에도 북한은 위장탈북을 활용해 대남 공작원을 침투시키고 있다.

2016년 9월27일 이종명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의원이 합동참모본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2~2016년 우리나라에 침투한 북한의 남파 간첩은 13명이었고 이 중 12명은 탈북자를 위장한 간첩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관형 NK워치 사무국장은 '북한 공작원 연구: 전직 공작원들과의 인터뷰' 논문에서 "한국 내 지하당 조직은 결정적 시기가 도래할 때까지 스스로의 존재를 표출하지 않고 활동해야만 한다"며 "기존의 지하당 조직이 일부 노출·파괴됐더라도 북한의 대남공작 지도부는 이에 대한 수습을 위해 대남 공작원을 계속해 남파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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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원=뉴시스】 사진공동취재단 = 육군은 비무장지대 내 6.25 전사자 유해발굴을 위한 지뢰제거작업을 2일 강원도 철원군 5사단(열쇠부대) 인근 비무장지대 수색로 일대에서 개시했다. 장병들이 지뢰탐지 및 제거작업을 벌이고 있다. 2018.10.03.   [email protected]
지금처럼 남북 접경지역을 활용한 북한 민간인의 귀순이 본격화될 경우 앞으로 북한 주민의 대량 탈북사태가 발생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어 보인다.

제성호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량 탈북사태 시 경찰의 치안 유지 방안' 논문에서 "김정은 정권이 표면상으로는 체제 안정을 이룩하고 있으나 내부적으로는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예상치 못한 곳에서 김정은 정권의 모순이 폭발하면 권력투쟁이 심화될 것이고 이는 급변사태를 야기할 가능성이 높다. 또 이 과정에서 북한 주민들의 대량 탈북 현상은 현실로 나타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제 교수는 "대량 탈북민들의 갑작스런 국내 유입은 사회 혼란을 조성할 수 있다. 일시에 수만명에서 수십만명의 대규모의 탈북민이 유입될 경우 기존의 북한이탈주민 지원관리 체제와 재정만으로 감당하기 어렵다"며 "대응 초기에 미리 계획된 수용시설이나 물자를 확보하는 데 실패하게 되면 정책 혼선과 사회적 불신을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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