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소설가 김금희 "과거 상처·좌절 부인하지 않고 직시해야 성장"
네번째 소설집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
신동엽문학상, 현대문학상, 김승옥문학상, 이효석문학상 수상에 빛나는 김금희 작가가 네번째 소설집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를 냈다. 표제작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는 2020년 김승옥문학상 대상을 수상했으며, '마지막 이기성'은 2019년 김승옥문학상 우수상과 2020년 이효석문학상 우수작품상을 수상했다. 이외에도 지난 3년간 각종 문학상의 호출을 받은 탄탄한 수작 일곱편이 모였다. 27일 서울 마포구 창비 서교사옥에서 만난 김금희 작가는 "2000년대 이야기가 많다. 내가 20대였을 때인데, 40대에 썼다"며 환하게 웃었다. 좌절을 겪으며 성장하는 주인공들을 그려내며 자신도 성장했다. "과거 처했던 상황은 분명 좋은 일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사람이 성장을 하려면 과거 상처, 좌절을 부인하지 않고 고통스러워도 직시해야 하죠. 저도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는 '나'와 '기오성'과 함께 노교수의 종택에서 족보 정리 아르바이트를 하며 3개월 동안 가까워졌다가 어긋나는 과정을 그린다. 그 관계에는 노교수의 손녀인 '강선'이 끼어있다.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는 2000년대 배경이에요. 제가 20대 때인데, 20대는 세계에 대한 자신의 입장이 확정되지 않았을 시기죠. 그 시기의 인물 3명을 떠올려 썼어요. 지금 마흔이 넘은 저는 기성세대 입장이라 또 다른 느낌이더라구요." 노교수의 종택과 족보로 대표되는 세상의 질서와 위계를 대놓고 무시하는 강선은 '나'와 '기오성'의 관계를 교묘하게 훼손한다.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라는 제목은 실제 피자가게에서 점심을 먹고 나온 날 떠올렸다. "'페퍼로니'에서 왔다는 말은, 나는 이런 것들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다, 이런 세계에서 온 사람이라는 의미에서 정했어요. 자기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정확하게 말할 순 없지만 자기 생각에 중요한 가치가 다 있죠. 각자의 페퍼로니, 가치가 있어요." 소설집 첫 번째 수록작 '우리가 가능했던 여름'은 대학 진학에 거듭 실패한 삼수생 '나'와 의대에 입학했지만 적응하는 데 실패한 '장의사'가 함께 보낸 패배한 여름의 풍경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특히 2000년대 초 황우석 사건을 배경으로 하는 것이 눈에 띈다. "2000년대를 생각해보면 한국 사회에 많은 변화들이 있었어요. 어느 날 황우석 사건을 생각해보니 여성의 신체에 대한 명백한 훼손이 있었는데 잘 짚지 않고 넘어갔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는 "'훼손'을 생각하다보니 결국 2000년대에 우리가 겪었던 청춘의 훼손, 좌절감을 생각하게 됐다"며 "당시 우리는 많은 것을 기대했지만 그 기대는 이뤄지지 않았고, 한국사회는 그 훼손에 대한 반성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마지막 이기성'은 유학생 '이기성'과 재일 한국인 '유키코'의 연애와 연대가 교차하는 이야기다. 인종차별이라는 같은 부당한 일을 당했지만 서로 달리 접근하는 방식이 인상적이다. "'유키코'는 일본에 남아서 계속 살아야 하는 인물이죠. 그곳을 떠날 '이기성'과는 다를 수밖에 없어요. 자신의 삶에 있어서 유키코는 매우 현명한 친구라 생각했습니다."
그는 "애착에 대해 쓰고 싶었다. 애착과 애정은 다르다. 애착은 좀더 행동적이고 욕구적"이라며 "'나'는 '선생님'에 대한 애착을 갖고 있지만 선생님 자체를 좋아한다기 보다는 자신이 생각한 모델 안으로 끌어오려고 한다. 그게 잘 안되니까 공격적이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실 타인을 이해한다는 게 가능할까 싶어요. 이해한다는 건 결국 자기적 심취가 아닐까. 이해한다고 하면서 폭력적이 되는 것, 참으로 기괴해요." SNS에서 '맛집 알파고'로 유명한 옛 연인을 인터뷰하기 위한 부산행을 그린 '크리스마스에는'에 대해서는 "내 모든 유머 코드가 담겼다"고 웃었다. "되게 웃기다고 생각하면서 썼어요. 상을 받은 작품은 아니지만 애착이 많이 가요. 쓰면서 독자들이 너무 무겁지 않은, 따듯한 느낌을 받길 원했어요." 최근 첫 번째 소설집 '센티멘털도 하루 이틀'을 7년 만에 새롭게 선보였다. 그는 "첫 소설집은 작가가 되고 5년 만에 나온 터라 감격적인 면이 있었다. 그때 초판 3500권을 찍었는데 7년 동안 그정도가 팔렸다는 것"이라며 "판매가 중요하다기보다는, 제 시작이 그렇게 화려하거나 멋지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낼 수 있었던 것 같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때는 30대 초반이었어요. 주로 제 성장기와 관련된 이야기였죠. 지금 보면 이 작가가 처음 시작하는구나, 머뭇거리는구나 하는 흔적이 보여요. 최근 작품집과 비교해보면 차이를 알 수 있을 거예요." 지난해 국내 대표 문학상 중 하나인 '이상문학상' 거부로 화제가 됐다. 수상작 저작권을 3년간 출판사에 양도하고 작가 개인 단편집에 실을 때도 표제작으로 내세울 수 없다는 계약 요구사항에 김 작가는 반기를 들었다. "작가들이 뭔가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환경이 됐다는 것을 작가들이 알게 된 데 대해 큰 보람을 느낍니다." 특히 "같이 거부해 준 최은영, 이기호, 동료 작가들이 가장 큰 힘이 되었다"며 "처음에 상을 거부한다는 글을 올리고 난 뒤 주최측, 문학사상사에서는 그런 일이 없다고 하더라. 그게 가장 충격이었고 분노하게 됐다. 저 하나였으면 무고하게 당했을텐데, 다른 사람들이 한 마디 해준 것이 가장 큰 힘이 됐다"고 회고했다.
"요즘 방송에 작가들이 많이 나오는 것 같아요. '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 정유정 작가가 나온 것도 재밌게 봤고, 박준 시인과 아버지도 너무 재미있었어요. 과거에는 작가들이 작품으로만 말해야 한다는 말도 많았는데, 언젠가부터 독자들을 만나는 방식이 한 가지인 건 어려운 시대인 것 같아요." 최근 오디오북 녹음 작업을 시작했다. 그는 "내가 쓴 글이라 뉘앙스 같은 걸 생각하면서 읽게 된다. 목을 쓰는 게 익숙하지 않아서 체력적으로 힘들다"며 "소리내서 읽는다는 것이, 내 글에 대해 거리를 둔 채 대해보는 거니까 재미있는 경험"이라고 말했다. "요즘은 글 쓰는 건 좀 쉬고 있어요. 제가 글을 참 많이 쓰는 작가인데, 그동안 너무 달렸던 것 같아요. 한동안 소설은 안쓸 생각이에요." 올해로 데뷔 12년차다. 그는 "글 쓰는 건 여전히 너무 어렵지만, 그래도 여러 단편을 마감하면서, 아 어떻게든 완성은 되는구나, 너무 두려워하지 말자는 생각이 들었다"며 "초반보다 용감해졌다"고 웃었다. 차기작에 대해 묻자 "뭐부터 써야할지 모르겠지만 역사적 인물에 대한 이야기가 될 것 같다"며 "자료를 많이 찾아봐야 해서 시작도 못하고 있다. 해보지 않은 시도라, 기대는 된다"고 했다. 코로나19 시대를 살고 있는 김금희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너무 외로워요. 안그래도 외로운데 사람들을 편하게 못 만나니까 훨씬 더 외로운 것 같아요. 그래서 관계가 뭔지에 대해 계속 고민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이제 백신도 나오고 코로나가 지나면 관계가 어떻게 될지에 대한 기대도 생깁니다. 빨리 코로나가 지나가고 독자들을 만나는 행사를 많이 갖고 싶어요."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