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필휘지 내공에 '그려진 그림'...이강소 화백 '몽유'
서울 삼청동 갤러리현대서 16일 개막1990년~2021년까지 완성한 회화 30점기운생동 붓질...채색 사용한 '청명' 연작 눈길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세계가 계절에 따라서 우주만물이 동서남북으로 춘하추동으로 순환합니다. 우주의 심포니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 속에 우리가 서로 구조되어 있다는 것이죠. 우리가 이 세계 속에서 먼지처럼 떠돌아 다니면서, 서로 소통을 어떻게 하는 것이 가능하고, 좋을 것인가. 그래서 제가 택한 방법은 예술이었고, 또 회화였고, 이런 여러가지 방법론이었습니다." 이강소 화백이 '일필휘지(一筆揮之) 회화'의 내공을 보여준다. 1990년대 말부터 2021년까지 완성한 회화 30여 점을 들고 '몽유(夢遊, From a Dream'로 돌아왔다. 서울 삼청동 갤러리현대에서 16일 개막하는 몽유전은 '화가 이강소'의 진면목을 확인하기 위해 마련된 신작전이다. 역동적인 붓질과 과감한 여백. 여러 층위로 칠한 거친 추상적 붓질이 눈길을 사로잡는 작품이다. 대체 무엇을 그린 것일까. (미술시장 블루칩 이우환의 바람 시리즈가 언뜻 스치기도 하지만 결이 달라보인다)
갤러리현대는 "평면의 캔버스에 무한의 공간성을 구현한 실험적 신작 회화"라며 "이번 전시는 이강소가 지난 20년 넘게 전개한 회화적 언어의 정수를 만끽할 수 있을 것"이라고 소개했다. 이강소 화백과 갤러리현대의 상생은 3년전부터 이어지고 있다. 2018년 이강소의 개인전 '소멸'을 개최해, 그의 1970년대 역사적 실험미술 작품을 집중적으로 재조명했다. 이듬해, 갤러리 현대는 이탈리아 베니스 팔라초 카보토에서 그의 초기 설치와 비디오, 근작 회화와 조각 등을 아우르는 특별전 'Becoming'을 베니스비엔날레 기간에 맞춰 선보여 국제적으로 주목 받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 화백은 한국 현대미술과 동시대미술사를 논하며 빼놓을 수 없는 거장이다. 그는 1970년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설치, 퍼포먼스, 사진, 비디오, 판화, 회화, 조각 등 매체에 구애받지 않는 왕성한 창작 활동을 펼치며 특정 사조나 형식적 방법론에 안주하지 않았다.
이강소 "회화는 무엇인가?" 화두 ‘회화는 무엇인가?’ 이강소 화백의 화두다. 그것을 쫒기위해 다종다양한 매체를 아우르며 천착해왔다. 1970년대 선보인 실험적 퍼포먼스, 비디오, 설치작품도 결국 '회화의 개념'을 찾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무언가를 그리는 대신, 찢고 벌거벗은 채 회화의 밑바닥을 헤쳤다. 캔버스천의 실밥을 한 올씩 뽑거나 찢어서 물질로서의 회화와, 회화의 평면성을 동시에 제시하기도 했고, 자신의 벌거벗은 신체 곳곳에 붓으로 물감을 칠하는가 하면, 캔버스용으로 쓰이는 광목천으로 물감을 닦고 그 천을 바닥에 펼친 '페인팅(이벤트 77-2)'을 선보이기도 했다. '그린다'는 것을 행위로 나타내기도 했다. 모니터 화면의 안쪽에서 밖을 향해 모니터의 면을 물감을 묻힌 붓으로 천천히 칠하며 그 모습을 상영하는 비디오 작품을 등장시켜 신선한 충격을 가했다. 미술평론가들은 "가장 오래된 매체인 전통적 회화 형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며, 허상인 이미지의 실체를 드러내 객관화하고 있다"는 평가를 하고 있다.
신작 전시 '몽유'...보이지 않는 ‘기(氣)’ 담아 갤러리현대 1층 전시장은 춤추는 듯한 붓질로 날아갈 듯한 리듬감을 전한다.빠른 붓 놀림으로 굵은 선을 표현한 '청명' 연작 3점과 '강에서'(1999) 연작 3점을 소개한다. 이 작품들은 작가가 작품을 통해 전달하려는 ‘기(氣)’의 양상이 잘 나타난다. 만물의 기운을 붓으로 시각화하는 것은 작가로서 이강소에게 큰 과제였다. 그는 "보이지 않는 ‘기(氣)’가 존재한다고 믿고, 항상 '기’를 이미지로 남기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고 했다. 지하 전시장과 2층 전시장에서는 역동적인 획과 대담한 여백의 다채로운 변주에 집중한다. 붓과 손, 감정과 정신이 혼연일체를 이룬 변화무쌍한 붓질이 강렬하다. 좌에서 우로 화면을 가로지르며 툭툭 던져지고, 캔버스와 싸우듯 격렬한 파장을 일으키며 ‘일획의 미학’을 전한다. 옛 문인화의 전통을 품으며, 동시대 회화의 언어성을 풍성하게 확장한 모습이다. 지하 전시장의 폭 5m의 작품 '허-14012'(2014), '청명-20062'(2020), '청명-20063'(2020), 2층 전시장의 '청명-16124'(2016), '청명-17010'(2017) 등은 소용돌이치는 어떤 풍경이다. 2층 전시장은 호흡이 정리된다. 이강소의 작품에 19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하며,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새와 배 등의 형상이 드러난 작품이 전시됐다. 새, 사슴, 배 혹은 산, 집 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색과 농담을 달리한 추상화된 붓질이다. '그려지다 만 듯'한 몇 개의 선만으로 이뤄진 '이강소 회화'의 특징이다. '무엇을 그렸나'는 중요치 않다. 이 화백은 "오리로 보든 배, 사슴으로 보든 상관없다. 보는 사람이 인지하고 즉시 사라지는 환상일 뿐이다. 각자 자신이 판단하고 느끼고 경험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일갈한다.
이번 전시에는 회색·무채색과 달리 강렬한 주홍 채색이 사용된 '청명' 연작이 나와 시선을 사로잡는다. 여러 차례 겹쳐진 붓질로 다층화된 추상의 공간으로 역동적이면서도 평온한 분위기를 전한다. 이강소 화백은 "스스로 그려진 그림”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입자와 에너지, 이곳과 저곳, 있음과 없음, 나와 너 등 그 모든 시공간의 찰나를 마치 신선처럼 '왔다리 갔다리'하다 그려진 예상하지 못한 ‘기운생동(氣韻生動)’의 붓질"이라고 했다. 마치 춤추는 무술같은 그림이 묘하게 아름답게 느껴지는 이유다. “매 순간마다 조금씩 낯선 저에 의해 그려지는 회화들과 붓질들의 느림과 빠름을 경험해 봤습니다. 습관적인 붓질로부터 조금씩이나마 벗어나 보려고 노력했습니다" 전시는 8월1일까지.
'기운생동' 회화 작가 이강소는 누구? 이강소는 1943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고등학생때 ‘청운회(淸雲會)’라는 그룹을 결성해 경북공보관 화랑에서 전시를 기획했다. 1961년 서울대 미술대학 회화과에 입학했다. 1965년 대학을 졸업한 후 ‘신체제’라는 미술 연구 모임을 결성하며, 본격적으로 현대미술 운동에 뛰어들었다. 1970년대 ‘신체제’, ‘A.G.그룹’, ‘서울현대미술제’ 등의 미술 운동을 주도하며 한국 화단을 대표하는 작가가 되었다. 특히 1974년부터 김영진, 최병소 등과 함께 '대구현대미술제'의 창립에 주도적 역할을 하며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1985년 국립경상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주립대학교에서 객원 교수 겸 객원 예술가로 지냈으며, 1991년부터 2년간 뉴욕 현대미술연구소(PS1)의 국제스튜디오 아티스트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2002년 제3회 이인성미술상을 수상했다. 작품은 영국 런던 빅토리아앤알버트미술관, 일본 미에현립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대구미술관, 부산시립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호암미술관 등 세계의 주요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