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웃기면 웃어' 놀이공원 같은 무대…'비틀쥬스'
오는 8월7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제4의 벽'(공연에서 무대와 객석 사이에 존재하는 가상의 벽)을 끊임없는 깨는 주인공 '비틀쥬스'의 유머는 쉴 새 없이 객석에 '웃음 폭탄'을 뿌린다. 팝업북처럼 세트가 접혔다 펼쳐지고, 거대한 퍼핏이 쉴 새 없이 등장하며, 오케스트라 피트에서 각종 소품이 올라오는 무대는 거대한 '놀이공원' 같다. 두 차례 연기 끝에 당초 개막일보다 18일 지각 개막한 뮤지컬 '비틀쥬스'가 그간 쌓인 우려와 아쉬움을 한번에 날렸다. 지난 6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개막한 '비틀쥬스'는 애초 지난달 18일 국내 처음 선보일 예정이었다. 하지만 기술 구현 문제로 두 번 연기됐다. 더구나 어렵게 개막한 첫날에 발권 기계가 고장, 관객들의 입장이 지연돼 15분가량 늦게 시작했다. 타이틀롤 비틀쥬스가 유령이니, 공연도 마치 뭔가에 씌인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공연이 시작되자마다 걱정·근심이 저 세상 밖으로 싹 물러났다. 공연도 죽은 자들의 세계인 '저 세상'과 '이 세상'을 오간다. 유령이 된 부부 '바바라'와 '아담'이 자신들의 신혼집에 '리디아' 가족이 이사 오자, 이들을 쫓아내기 위해 비틀쥬스를 소환하며 펼쳐지는 이야기.
1988년에 제작된 팀 버턴 감독의 영화가 원작이다. 버턴이 창조한 영화 속 세계는 환상적이고 그로테스크하다. 이 물리적으로 재현할 수 없을 거 같은 세계를 뮤지컬은 무대 위로 소환한다. 비틀쥬스가 손을 까닥하면 바로 불이 켜지고, 무대가 빠른 속도로 전환된다. 곳곳에서 불꽃이 튀고, 배우들의 공중부양도 자주 등장한다. 제작사인 CJ ENM이 개막을 연기해가며 기술적인 합과 타이밍에 공을 들였던 이유가 수긍이 된다. 안전한 무대가 또 다른 주인공이었기 때문이다. 이승과 저승을 오가며 생(生)을 연주하는 일종의 퍼포머 역이다. 빠른 속도로 천변만화하며 극과 인물에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이런 무대의 에너지를 재간꾼 정성화가 맡은 비틀쥬스가 통째로 흡수한다. 사람이 죽는 광경을 '팝콘 각'이라며 흥분하는 이 캐릭터는 아스트랄(뭔가 신기한 것을 봤을 때, 4차원 세계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을 표현할 때 쓰는 말)하다. 독특함을 넘어 특별하다. 쉴 새 없이 움직이고 농담하며 '저 세상 텐션'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비틀쥬스가 팝콘통을 들고 있을 때 CJ ENM의 모회사인 CJ그룹 계열사 CGV의 팝콘통을 들고 있는 등 곳곳에 '깨알 재미'도 숨겨져 있다. 비틀쥬스와 함께 극의 중심을 잡아 이끌어가는 당돌한 소녀 '리디아' 역을 맡은 홍나현은 베테랑 정성화의 에너지에 전혀 눌리지 않는 기운을 보여준다. 극이 너무 이국적이라 한국 문화에 어울리지 않을 수 있다는 걱정도 있다. 하지만 김수빈 번역가는 '언어 번역'이 아닌 '문화 번역'을 해냈다. 2막에서 리디아가 부르는 넘버 '크리피 올드 가이(Creepy Old Guy)'는 직역하면 '늙고 징그러운 아저씨'인데, 김 작가는 '푹 삭았지만 멋있는 저승에서 온 아저씨'라는 콘셉트로 공감대를 형성한다.
어머니가 죽은 후 다른 방식으로 슬픔을 받아들인 리디아와 그의 부친 '찰스'는 저승에서 서로를 이해한다. 그 과정이 급작스럽지만, 안정된 '홈(Home)'으로 돌아가는 이야기는 따듯하다. 하지만 '비틀쥬스'는 절대 착한 공연은 아니다. 그래봤자 '죽음'이 주제다. 오프닝 곡 '뭐 죽음에 관한 그런 거(The Whole Being Dead Thing)'에 나오는 노랫말이 공연 전체 성향을 대변한다. "웃기면 웃어 불편하다면 그걸 즐겨!" 마지막 해리 벨라폰테의 '점프 인 더 라인(Jump In the Line)'을 재해석한 넘버에서, 관객 모두 노랫말 '셰이크 세뇨라(Shake senora)'라고 외치는 주문에 걸릴 수밖에 없다. 2019년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초연했고, 라이선스 공연은 이번에 한국이 처음이다. 비틀쥬스 역은 유준상, 리디아 역은 장민제도 맡는다. 바바라 역 김지우와 유리아, '아담' 역 이율과 이창용, 델리아 역 신영숙과 전수미도 출연한다. 오는 8월7일까지.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