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 필름]남성 권력·가스라이팅 통쾌한 복수…블랙 위도우
MCU는 '어벤져스:엔드게임'(2019)에서 아이언맨과 캡틴아메리카의 퇴장에 무척이나 공을 들였다. 아마도 그건 스무 편이 넘는 영화에서 전 세계 관객과 함께 울고 웃었던 영웅을 향한 예의였을 것이다. 영웅놀이를 한다고 비난 받던 토니 스타크는 마침내 진정한 영웅 아이언맨으로 다시 태어났다. 수십년 간 세상을 구해야 한다는 대의를 어깨에 짊어진 채 살아온 캡틴아메리카는 평범한 남자 스티브 로저스로 돌아갔다. 하지만 이상할 정도로 블랙위도우 나타샤 로마노프(스칼릿 조핸슨)에 대한 언급은 적었다. 지난 7일 개봉한 '블랙 위도우'(감독 케이트 쇼트랜드)는 우리 곁을 떠난 또 한 명의 영웅 블랙위도우를 추모하는 작품이다. '엔드게임'에서 블랙위도우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이상할 정도로 적었던 건 아마도 이 영화를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된다. '블랙 위도우'는 나타샤가 자신을 정신적으로 길들여 암살자로 키운 드레이코프에게 복수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 과정에서 자신과 마찬가지로 킬러로 길러진 동생 옐레나(플로렌스 퓨)와 힘을 합쳐 드레이코프를 제거하고, 그가 손아귀에 넣고 있던 수많은 여성 암살자(위도우)를 자유인으로 살게 해준다. 말하자면 '블랙 위도우'는 매우 노골적으로 여성 해방과 연대를 그린다. 그리고 우리의 영웅 나타샤는 이 과정을 통해 슈퍼 히어로이자 여성 운동가로 다시 태어난다. 그는 말한다. "이제 모든 걸 스스로 결정해." 아마도 이 작업은 나타샤를 MCU에서 완전히 퇴장시키기 전에 반드시 해야 할 과제였을 것이다. 그가 어벤져스에 합류한 건 암살자 시절 저지른 살생을 반성하기 위해서였다. 나타샤는 시리즈 내내 자신에게 희생당한 사람들에 대한 죄책감에 관해 얘기했고, '엔드게임'에 이르러서는 그 빚을 갚기 위해 자기 목숨을 내던졌다. 그는 그렇게 가해자로서 과거를 청산한다. 그런데 이렇게 끝인가. 나타샤는 분명 가해자이지만 동시에 피해자가 아닌가. 그는 어린 시절 납치돼 철저히 암살자로 키워졌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야만 한다고 세뇌당했다. 그렇다면 이제 나타샤는 피해자로서의 과거를 정리할 차례다. 그게 바로 '블랙 위도우'에서 그리는 드레이코프에 대한 복수다. 이 복수는 나타샤의 사적 원한만을 뜻하진 않는다. 여성을 성적 대상화 하는 남성 권력에 대한 복수이고, 장기간에 걸쳐 체계화한 남성 중심 지배 구조를 구축하는 데 동원된 가스라이팅을 향한 복수이기도 하다. 나타샤는 그렇게 피해자로서 그리고 가해자로서 모든 과거와 온전히 이별했다. MCU는 그제서야 이 영웅의 장례를 치러준다. 이제 나타샤의 자리는 옐레나가 물러받게 될 것이다. 흥미로운 건 옐레나를 연기한 배우 플로렌스 퓨가 처음 이름을 알린 영화인 '레이디 맥베스'(2016)가 여성 해방과 관련 있는 작품이라는 것이다. 이 영화는 남편의 재산이 되는 걸 본능적으로 거부하는 한 여성이 광기에 휩싸여 남성 중심 체제를 전복하는 내용을 그린다. 이 여성은 심지어 같은 편에 서지 않는 다른 여성에게도 벌을 내린다. 나타샤의 의지를 이어받은 옐레나를 연기하기에 퓨는 더할 나위 없는 캐스팅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