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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소설가 윤고은 "英대거상 수상, 웜홀에 접속한 느낌"

등록 2021-07-17 06:00:00   최종수정 2021-07-26 09: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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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여행자들'로 한국인 최초 수상

첫 산문집 '빈틈의 온기'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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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박진희 기자 = '빈틈의 온기' 윤고은 작가가 지난 13일 서울 중구 카페느티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최근 윤 작가의 장편소설 '밤의 여행자들' 영어판 (Serpent's Tail, 2020)이 영국 추리작가협회(Crime Writers Association(CWA))에서 주관하는 대거상(The CWA Dagger) 번역추리소설상을 수상했다. 2021.07.17.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이현주 기자 = "다른 차원으로 가는 웜홀에 접속한 느낌이었어요. 영국과 시간이 달라 새벽에 해외 축구 보는 기분으로 앉아있었는데 공이 제 앞으로 튀어 나왔죠."

'밤의 여행자들'로 영국 추리작가협회에서 주관하는 대거상 번역추리소설상을 수상한 윤고은 작가는 최근 뉴시스와의 인터뷰에서 "처음에는 온라인 시상식에 굳이 접속해야 하나 싶었다.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며 예상치 못했던 '깜짝 수상' 당시를 떠올렸다.

"6명의 후보 중 저만 아시아 사람이었어요. 다른 후보들은 다들 비슷한 시간대인데 저만 다른 시간대, 다른 차원에 접속한 것 같았죠. 그렇다고 잠옷을 입고 접속할 수는 없어 차려입고 큰 귀걸이까지 하고 비몽사몽 간에 앉아있는데 꼭 놀이하는, 이벤트하는 느낌이었죠."

올해로 65주년을 맞은 대거상은 영어권에서 가장 오래된 상일뿐 아니라 가장 권위있는 상으로 꼽힌다. 윤 작가는 우리나라 최초 수상자다.

'밤의 여행자들'은 재난 지역 여행상품 판매사의 프로그래머인 주인공이 사막의 싱크홀로 떠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장편소설이다.

윤 작가는 "2005년이었나, 대학 졸업할 즈음에 신문 기사로 허리케인이 휩쓸고 간 마을에 여행을 간 사람들 이야기를 접했다"며 "그때 다크 투어리즘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고 해당 기사를 오려놨다. 이후 잊고 살다가 2011년 동일본대지진 때 다시 그 소재를 떠올렸다"고 회상했다.

"무너진 마을, 떠내려간 어느 중학생의 농구화, 바다를 따라 흘러내려간 원전 쓰레기… 그 즈음 '무이네'라는 베트남의 한 남부 지역을 여행했는데 작은 사막, 사구 풍광과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리조트를 보며 소설 속 '무이' 배경을 떠올렸어요. 2013년에 책을 냈는데 2021년 이렇게 제게 돌아왔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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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박진희 기자 = '빈틈의 온기' 윤고은 작가가 지난 13일 서울 중구 카페느티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최근 윤 작가의 장편소설 '밤의 여행자들' 영어판 (Serpent's Tail, 2020)이 영국 추리작가협회(Crime Writers Association(CWA))에서 주관하는 대거상(The CWA Dagger) 번역추리소설상을 수상했다. 2021.07.17. [email protected]
최근 첫 산문집 '빈틈의 온기'를 출간했다. 하루 3~4시간 출퇴근길을 포함해 일상의 순간순간을 유쾌하고도 따스하게 포착했다.

그는 "첫 에세이를 사실 출퇴근 이야기를 쓰게 될 줄은 몰랐다. 원래 고정적인 출퇴근을 하진 않았으니까"라며 "그런데 EBS 라디오 진행을 하게 되면서 2년 이상 일산을 정기적으로 오고 가게 됐고, 이를 기록하게 됐다"고 말했다.

"출퇴근 시간 지하철은 사람이 바글바글해요. 이 시국에 그 안에 섞여서 서로의 간격을 신경 쓰며 가는데, 사실 필요한 일이지만 불안하죠. 그러면서도 가끔 모두가 똑같이 마스크를 쓰고 지하철에 있는 걸 보면 코로나 시대 다들 각자의 자리에서 무언가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걸 쓰고 싶었죠."

자주 가는 카페에서 손소독제로 오인한 시럽으로 열심히 테이블을 닦은 에피소드는 현 시국 유쾌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는 "라디오를 진행하다 보면, 실제 커피에 소독제를 넣은 분도 있고 이런 에피소드들이 많이 나온다"며 "일상을 선물하는 느낌으로 '이런 일도 괜찮아' 이런 말을 하고 싶었다"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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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박진희 기자 = '빈틈의 온기' 윤고은 작가가 지난 13일 서울 중구 카페느티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최근 윤 작가의 장편소설 '밤의 여행자들' 영어판 (Serpent's Tail, 2020)이 영국 추리작가협회(Crime Writers Association(CWA))에서 주관하는 대거상(The CWA Dagger) 번역추리소설상을 수상했다. 2021.07.17. [email protected]
삶의 하루에서 매일 세 시간 이상을 차지하는 지하철은 작가에게 하나의 의미 있는 공간이다.

"영감을 많이 주는, 움직이는 카페와 같은 공간이죠. 만원 지하철이야 힘들겠지만 일산 쪽으로 가까워지면 빈 자리가 좀 나요. 그러면 앉아 노트북을 펴서 작업도 하고, 주변도 관찰해요. 만약 제가 직접 운전을 하거나 버스를 타면 이렇진 못했을 것 같아요."

이번 산문집에 싣지 못한 아쉬운 이야기들도 많다. 윤 작가는 "금요일 오후 6,7시쯤 신분당선을 타면 비슷한 이야기들이 들려온다. 치킨? 만두? 피자? 이런 말들"이라며 "다닥다닥 붙어서 저녁 메뉴에 대한 목소리들이 들려온다. 그 풍경이 재미있어서 기록하고 싶었는데 페이지가 넘쳐서 못 담았다"고 아쉬워 했다.

책 속 자주 등장하는 남편 L의 존재도 눈길이 간다. 그는 "남편은 아무래도 한 집에 사는 사람이고, 일상 곳곳 저의 빈틈에 가장 큰 증인이 될 수밖에 없다"며 "소설을 쓸 땐 아이디어도 많이 주는 굉장히 큰 조력자"라고 애정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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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박진희 기자 = '빈틈의 온기' 윤고은 작가가 지난 13일 서울 중구 카페느티에서 뉴시스 인터뷰를 마치고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최근 윤 작가의 장편소설 '밤의 여행자들' 영어판 (Serpent's Tail, 2020)이 영국 추리작가협회(Crime Writers Association(CWA))에서 주관하는 대거상(The CWA Dagger) 번역추리소설상을 수상했다. 2021.07.17. [email protected]
8월말~9월초 새로운 장편소설 출간을 앞두고 있다. "소설은 나도 가본 적 없는 세계에 미리 답사가는 기분으로 지도를 그리고 독자를 초대하는 느낌"이라며 "에세이는 우리 집으로 초대하는 느낌이라 소설과 다르다. 조금 더 쑥스럽다"고 말했다.

차기작은 결혼 보험을 소재로 한 소설이다. "보험은 시대상을 반영해요. 반려동물, 날씨 등 다양한 상품이 나오고 있죠. 결혼이라는 게 예전에는 의심 없이 받아들였지만 이젠 선택의 영역이 됐어요. 이를 보험으로 다뤄봤죠."

그는 "안심결혼보험회사가 나오고, 사람마다 보험료도 다 다르다"며 "20년 만기로 한 번도 결혼을 안하면 만기 때 130%를 받는다. 은행 적금보다 나은 투자 상품일 수도 있고, 가입조건이 까다로워서 결혼정보회사에서 등급처럼 취급하는 그런 결혼 상품이 등장한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 상황이 좋아지면 여행을 가고 싶다. "여행을 좋아하는데 코로나 이후 국내 여행조차도 제대로 마음을 못 먹고 있다"며 "마음 편하게 예전 같은 느낌으로 여행을 가고 싶다. 따듯한 곳에 가서 편안하게 햇살 아래 고민 없이 열대과일을 즐기고 싶다"고 바랐다.

"'밤의 여행자들'은 재난 여행을 다룹니다. 그런데 지금은 우리 일상에 재난이 들어와있네요. 엘레베이터 버튼, 손잡이 조차도 두려워지는 세상이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언젠가 '그때는 다 마스크를 쓰고 다녔어'라고 웃으며 말할 수 있을 거예요. 지금은 다들 조심하면서 다같이 이 시기를 이겨내요."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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