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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시대 문화현장]연극배우 김영노 "오디션도 취소...오토바이 배달로 생계 유지"

등록 2021-07-24 07:00:00   최종수정 2021-08-25 15: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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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뉴시스] 박진희 기자 = 연극배우 김영노가 지난 22일 경기도 화성시 동탄신도시 한 카페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1.07.24. [email protected]

코로나19 4차 대유행으로, 문화예술계가 다시 타격을 받고 있다. 거리두기와 비대면 시대가 이어지면서 연극 뮤지컬 등 공연 배우와, 야외와 소극장 카페에서 노래했던 가수들이 무대를 잃고 막막한 실정이다. 뿐만 아니다. 극장업계와 여행업계, 종교계 등 오프라인 행사가 줄면서 '보릿고개'를 넘고 있다. 코로나 시대를 힘겹게 건너면서도 희망을 잃지않는 예술인들과 문화계 현장을 밀착 취재해 시리즈로 소개한다.<편집자주>

[화성=뉴시스]이재훈 기자 = 지난 22일 오후 12시 경기 화성 동탄신도시. 절기상 1년 중 가장 덥다는 대서(大暑). 수은주가 섭씨 36도까지 치솟았고, 지열로 인해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배우 김영노(36)는 그럼에도 긴 소매 티셔츠·긴 바지를 입고 있었다. "요즘 같은 날씨에 반 소매를 입은 채,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면 살이 쉽게 타거든요. 더워도 이게 낫죠."

오토바이는 그의 '출근 수단'이 아닌 '생계 수단'이다. 수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점심시간·저녁시간 때 배달일을 하고 있다. 연습실이나 공연장이 아닌, 신도시 아파트가 그의 목적지다. 출발 전부터 헬멧을 쓴 김영노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벌써부터 옷에는 땀이 차올랐다.

"뜨르릉!", 오토바이에 매달린 그의 스마트폰에서 배달 알림이 왔다.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50만원에 샀다는 그의 오토바이가 부릉거렸다. "좋은 가격에 잘 샀어요. 운이 좋았죠.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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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뉴시스] 박진희 기자 = 연극배우 김영노가 지난 22일 경기도 화성시 동탄신도시에서 뉴시스 인터뷰를 마치고 배달을 시작하고 있다. 2021.07.24. [email protected]
 
이날 첫 배달 품목은 매콤한 찜닭. "어제(21일)가 중복이었는데… 고기를 못 드셨나보네요."

김영노는 순식간에 음식점에서 찜닭을 찾아, 인근 아파트로 향했다. 잘 정비된 신도시의 도로를 질주하는 그의 헬멧은 반짝이는 대신 김을 냈다. 어느새 아파트 지하주자창에 도착한 김영노는 바삐 출입문으로 향하며 숨을 몰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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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뉴시스] 박진희 기자 = 연극배우 김영노가 지난 22일 경기도 화성시 동탄신도시에서 뉴시스 인터뷰를 마치고 배달을 시작하고 있다. 2021.07.24. [email protected]
이날 음식을 주문한 고객은 '비대면 배달'을 요청했다. 현관문 앞까지 안전하게 음식을 배달한 김영노는 그 음식 사진을 촬영해 전용 앱으로 보냈다. '배달 완료'. 그제서야 김영노는 숨을 돌렸다.

매일 아침을 안 먹는 김영노는 이날 오후 1시까지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엘리베이터에 찜닭 냄새가 은은하게 배어 있었다. "배고프지 않아요. 배우니까 꾸준히 몸 관리도 해야죠. 하하." 이제 그의 땀은 주르륵 주르륵 흘러내렸다.

전날 백신을 맞은 김영노는 오늘 점심엔 무리하지 않기로 했다. 이날 저녁부터 본격적으로 배달을 다시 할 예정이라고 했다. 사실 통탄신도시는 저녁에 배달이 힘든 곳이다. '베드타운'으로 퇴근 무렵 교통 체증이 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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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뉴시스] 박진희 기자 = 연극배우 김영노가 지난 22일 경기도 화성시 동탄신도시에서 뉴시스 인터뷰를 마치고 배달을 시작하고 있다. 2021.07.24. [email protected]
"차가 밀리면, 제가 처음 생각했던 배달 횟수보다 적어져요. 동탄신도시는 주상복합단지라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내리는 것도 상당히 시간 걸려요. 인도에선 오토바이를 타지 못하니, 딱지를 떼는 경우도 있고요. 오토바이를 멀리 주차를 해야 할 때도 있어, 걷는 거리가 꽤 될 때도 있어요."

코로나19가 준 시련…"배달 알바 하나만 남았네요"
김영노는 올해 데뷔 11주년을 맞은 대학로 기반의 배우다.

2010년 오디션이 어렵기로 소문난 극공작소 마방진에 오디션을 통해 들어갔다. 성공한 배우·가수들의 레퍼토리인 '친구 따라 갔다 친구는 떨어지고 자신이 붙은' 경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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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연극배우 김영노가 2018 평창 동계 패럴림픽에서 마스코트 '반다비' 인형(왼쪽)을 쓰고 개막식 공연하는 모습과 연극 '진주, 푸른 눈을 가진 아이' 공연 모습. 2021.07.24. [email protected]
그해 '들소의 달' 앙상블로 데뷔했다.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성격 때문에 대학로 극단 생활은 이전까지 생각조차 안 했다. 고선웅 연출에 대한 팬심, 배우 형님들에 매료돼 연극에 빠졌다.

어렸을 때 서태지를 보고 가수의 꿈을 키우기도 한 김영노는 만능 엔터테이너. 2009년 MBC TV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의 프로젝트 '돌아이 콘테스트' 결승까지 올랐다. 같이 출연한 형이 심한 노출을 해 방송에선 편집됐다. 그 형은 현재 경찰 공무원이다.

사실 김영노는 전 국민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들 앞에 등장한 적이 있다. 2018년 3월 '제12회 평창 동계 패럴림픽' 개막식에 그가 출연했다. 강추위 속에서 스케이드 보드를 신나게 타던 마스코트 '반다비' 인형 속에 그가 있었다. 10년 동안 인형탈을 쓰고 각종 공연을 해온 알바 덕분이었다. 추위에 바퀴가 얼어, 굴러가지 않는 어려움 속에서도 기지를 발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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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뉴시스] 박진희 기자 = 연극배우 김영노가 지난 22일 경기도 화성시 동탄신도시 한 카페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1.07.24. [email protected]
김영노는 연기 활동과 함께 각종 알바를 병행해왔다. 최소 '스리잡(three job)'은 기본이었다. 최대 '파이브 잡'까지 해봤다. 생계를 위해서다. 그가 속한 마방진은 다른 대학로 극단보다 형편이 낫지만, 그럼에도 연극배우는 많은 돈을 벌지 못한다. PC방 야간 알바, 음식점 서빙, 놀이공원 안내원 등 기본적인 알바를 비롯 다양한 일을 했다.

새벽 5시에 기상을 해서 승합차를 타고 전국을 도는 인형극 알바도 그 중 하나다. 자신의 차를 끌고 택배일도 했는데 차가 망가져 이 일은 접었다. 설상가상, 코로나19로 인해 현재 배달 일만 남았다. 예술강사 등의 일은 연기됐다.

근데 왜 배달지가 화성일까. 김영노가 올 3월 화성 내 행복주택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이곳은 청년층 대상 장기 임대주택이다. 주거기반이 취약한 청년들을 위한 공간으로, 자격조건에 해당된 그는 바로 당첨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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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뉴시스] 박진희 기자 = 연극배우 김영노가 지난 22일 경기도 화성시 동탄신도시에서 뉴시스 인터뷰를 마치고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2021.07.24. [email protected]
연극배우에게 실질적 도움은 무엇일까
문화체육관광부 '2018 예술인 실태조사'(3년마다 조사·2021년 버전은 올해 말 발표 예정)에 따르면, '예술활동 수입이 없다'고 답한 예술가가 28.8%였다. 3명 중 1명 꼴에 육박하는 비중이었다.

연수입 500만원, 즉 한달에 40만원 정도 버는 예술인이 27.4%로 뒤를 이었다. 예술인 절반 이상이 한달에 50만원 미만을 벌어들인 것이다. 예술 활동만으로 생계를 유지하기는 벅차다.

코로나19는 이 예술활동마저 없앴다. 한국고용정보원이 지난 5월 발표한 '코로나19 직업 영향 관련 재직자 조사' 결과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로 임금이나 소득(일에 대한 보상) 증감을 물은 설문에서 연극·뮤지컬배우의 97.1%가 소득이 감소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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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뉴시스] 박진희 기자 = 연극배우 김영노가 지난 22일 경기도 화성시 동탄신도시 한 카페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1.07.24. [email protected]
한국뮤지컬협회 배우 분과에 속해 있는 송임규 배우는 뉴시스에 "코로나19로 인해 작품이 올라가지 않아 대다수의 오디션이 취소됐다"면서 "생계 유지를 위해 배달, 물류센터 일을 하는 배우들이 상당수"라고 말했다.

최근 장우현·이지연이 발표한 논문 '코로나19가 예술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 : 예술인 실태조사를 중심으로'에 따르면 예술인이 주관적으로 인식하는 코로나19 전후의 사회경제적 수준의 변화를 비교했을 때, 코로나19 전의 사회경제적 수준은 최상(0.4%), 중상(13.8%), 중중(54.9%), 중하(28.5%), 최하(2.4%)였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최상(0.4%), 중상(4%), 중중(19%), 중하(43.1%), 최하(33.6%)로 결과가 변했다.

해당 논문에서 예술인들은 '코로나19가 예술 활동과 삶에 영향을 줬나?'라는 물음에 "예술인들 대부분이 보통 아르바이트를 겸하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는 예술인들은 비정규직이기 때문에 일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번번이 발생하고 본업인 예술 활동조차 협업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것이기에 촬영허가가 나지 않는다. 만일 코로나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최저생계는 유지됐고 지금만큼 상황이 악화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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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뉴시스] 박진희 기자 = 연극배우 김영노가 지난 22일 경기도 화성시 동탄신도시 한 카페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1.07.24. [email protected]
사는 곳이 대학로와 멀어진 김영노는 당분간 매체 연기 오디션에 주력할 계획이다. 배달일이 없는 월화수에 오디션만 보러 다닌다. 하지만 코로나19 여파는 오디션으로도 이어진다. 감독과 미팅을 한 이후에도 기약 없이 기다리는 경우가 생긴다.

"경제적 열악함은 처음부터 생각했던 거라, 아직은 괜찮아요. 무슨 일이든 열심히 하면, 돈은 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안타까운 건 저희가 미래를 먹고 사는 직업인데, 예정됐던 작품이 계속 취소되고 한 없이 연기되는 거죠. 관객이 많지 않더라도 작품이 계속 올라가면 행복을 느끼고 계속 도전하게 되는데 지금은 그렇지 못하니까요."

그런데 본업과 부업 사이에 아이러니가 생기고 있다. 김영노가 배달 한건에 받는 돈은 약 4000원에서 1만원. 일주일 중 사흘만 일해도, 연극배우만 할 때보다 2배 이상 번다고 한다.

예술인 고용보험도 '그림의 떡'으로 여겨지는 상황에서, 생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예술인들을 위한 실질적인 도움이 필요하다.

김영노는 "대중교통 할인만 돼도 배우들에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제 대학 같은 학번에서 70명이 졸업을 했는데 현재 대학로에서 활동하는 배우는 저 1명이에요. 농부, 간호조무사, 필라테스 강사 등의 일을 하고 있어요. 한달에 교통비 30만원만 절약해도 저희 같은 배우들에겐 크죠."

각종 위기에도 대학로에 대한 김영노의 애정은 폭염보다 더 펄펄 끓고 있다. 오는 8월엔 전인철 연출이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에서 올리는 SF 신작에 출연 예정이다. 그는 기상천외한 역을 맡는다고 했다.

"전 연극과 연극 배우들이 가장 순수하다고 생각해요. 경제적인 어려움을 감수하면서도 내뿜는 행복한 에너지가 있죠. 물론 지금 너무 어려운 상황이지만 제 건강한 신체를 움직이면서, 돈을 벌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연극만 하는 것이 가장 행복하겠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으니까요. 8월 신작이 제 대표작이 될 겁니다. 하하."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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