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투시대 끝나나③] 집값 떨어질 때까지? 강력 대출규제는 '진행형'
"총량규제라는 것이 행정편의주의 아니냐. 퍼센트만 내려주면 되니 하기 쉽지만 그러다보면 금융으로부터 혜택 받으려는 사람들엔 폭탄으로 다가온다. 그것이 숫자의 함정이라고 생각한다."(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 정부의 대출 규제를 둘러싸고 연일 비판이 나오고 있지만, 금융당국은 현재의 총량규제 방식을 유지하겠단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금융당국은 가계부채 증가 목표치를 맞추기 위해 적어도 내년까진 숫자를 '타이트'하게 관리하겠단 방침이어, 잔뜩 얼어붙은 대출 시장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당국의 강도높은 '조이기'에도 지난달 5대 시중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700조원을 넘어섰다. 일부 시중은행들은 금융당국이 제시한 가계대출 총량 증가율 목표치(연 5~6%)에 다다르고 있는 상황이다. 기대했던 만큼의 성과가 나오지 않자, 일각에서는 앞으로 '더 센 규제'가 나올 일만 남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지난 8월 기준 금융권 가계대출 잔액의 전년동월 대비 증가율은 9.5%다. 정부가 제시한 올해 목표치를 맞추려면 고삐를 더 조여야 하는 상황이다. 금융위는 올해 가계대출 연간 증가율을 6%대까지, 내년엔 4% 이내에서 관리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일각에서는 당국이 2023년 7월까지 전면시행을 목표로 단계별로 적용하려던 차주별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의 2·3단계 조치를 조기 시행하거나, 아직까지 60%가 적용되고 있는 2금융권의 DSR을 40%로 강화할 것이란 관측을 내놓고 있다. 최근 들어 급증세를 보이는 전세자금이나 집단대출에도 규제를 가할 것이란 예상도 나오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계약을 갱신할 때 보증금이 오른 만큼만 대출을 내주는 조치가 전 은행권에 확대되거나, DSR 산정 대상에 전세대출을 포함하는 방안을 거론한다. 전세대출 보증비율을 줄이거나, 전세대출 금리를 올리도록 유도할 가능성도 언급된다. 다만 전세자금 등 실수요 대출의 경우 당국이 직접적인 규제를 가하기보다는 은행들이 대출심사 문턱을 높이는 방식으로 조일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다. 실제 시중은행들은 신규 주택담보대출을 중단하고 신용대출을 제한하고도 증가세가 꺾이지 않자, 실수요 대출로 분류되는 전세자금대출 한도를 줄이기 시작했다. 여기에 연말까지 남은 대출 한도를 한꺼번에 소진하지 않기 위해 영업점별로 가계대출 신규취급 한도도 차등 분배해 관리하는 추세다. 하지만 가계대출 관리를 위해 시작된 총량관리 규제가 오히려 불필요한 대출을 유발하는 등의 부작용만 낳고 있다는 지적도 거세게 나오고 있다. 목표치에 다다른 은행들은 정부가 낸 숙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출문을 더 꼭꼭 걸어 잠그는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해 생긴 대출 난민들과 불안함에 휩싸인 가수요자들은 아직까지 문이 열려있는 은행으로 향하는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란 우려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관리하는 입장에서는 농협은행처럼 상반기에 연간 한도를 소진해버리는 게 속 편하지 않겠냐"면서도 "주거래 고객들을 위해 마냥 그렇게 할 수도 없는데 풍선 효과가 생기니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참 난감하다"고 토로했다. 이번 국정감사에서도 정부의 가계대출 규제 방식은 현실성 없고, 무리하게 추진되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김병욱 의원은 6일 국감에서 "가계부채에 대한 위기감을 느끼고 관리하는 것은 동의하나, 총량규제 숫자에 얽매이다 보니 부작용이 나타나는 것"이라며 "서민들의 불만과 실수요 자들의 요구가 빗발칠 것이라 생각함에도 굳이 (총량규제를)하겠다 하는데 앞으로도 이런 일은 매번 반복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행정편의주의를 유지할 지 금융위가 가이드라인을 두고 은행에서 불필요한 대출을 하지 않고 실수요자들에게 하게끔 규제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고민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도 이번 국감에서 "가계부채 관리란 이름 뒤에 숨어 결국 부동산 가격을 잡으려는 것 아니냐"며 "그렇지 않고선 이렇게 경제가 어려운데 실물경제와 어울리지 않는 총량 규제로 대출을 제한하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 상당한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단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금융당국은 내년까진 총량 규제를 통한 강도 높은 대출 규제를 이어가겠단 입장이다. 앞서 금융위는 총량 관리의 시계를 내년 이후까지 확장하고 대책의 효과가 나타날 때까지 강도 높은 조치들을 지속적, 단계적으로 시행할 것이라 밝힌 바 있다. 고승범 금융위원장도 지난 6일 국감에서 "지난해와 올 들어 코로나19 관련해 완화적인 정책을 추진하다 보니 가계대출이 많이 늘었다"며 "결국 가계부채 관리는 강화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앞으로도 이러한 관리 강화 추세는 계속 가져가려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정은보 금융감독원장도 7일 국감에서 "왜 이렇게까지 무리하게 총량규제를 하느냐는 지적이 있고, 국민들께서도 불편함과 어려움을 느낄 수 있다"며 "그렇지만 전체적인 리스크 접근이 필요해 총량적인 부분으로 강하게 관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달 중순 가계부채 대책, 상환능력에 초점…"실수요도 예외없다" 가장 큰 문제는 실수요자들이다. 은행들이 총량을 맞추기 위해 그간 일종의 '성역'으로 여겨졌던 전세자금과 집단대출에 손대기 시작하자, 당장 이사를 앞두거나 잔금을 치러야 하는 실수요자들은 그야말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특히 은행들이 대표적 실수요인 잔금대출마저 외면하면서 올해 입주 예정인 5만6592세대의 입주 대란이 우려되고 있다. 유의동 의원이 국내 4개은행(신한·KB국민·우리·하나은행)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이달부터 오는 12월까지 중도금대출이 만기되는 사업장이 5만3023세대, 5조727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유 의원은 "가계부채를 관리해야 한다는 총론에는 동의하지만, 수많은 실수요자를 피눈물로 몰아가는 이 대책의 각론에는 분명한 반대를 표한다"며 "실수요자 보호방안이 마련된, 국민들이 수긍할만한 진짜 실효성 있는 가계대책을 금융당국이 다시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실수요자 대출을 최대한 보호하겠다면서도, 단 '상환능력 범위 내'에서라는 단서를 달아 실수요 대출도 규제에서 자유롭진 않을 것임을 예고했다. 고 위원장은 "실수요 보호와 가계부채도 관리해야 해서 상당히 어려운 과제이며, 관련 보완대책을 만들고 있다"며 "전세대출과 집단대출 경우 실수요자를 보호해야 하는 측면이 있어서 그 부분을 세심하게 들여다보겠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가계대출 증가율 6%대를 맞추기 위해서는 굉장한 노력이 필요하며,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다"며 "결국 실수요자도 상환 범위 내에서 이뤄지도록 제한해야 한다. 그렇게 노력하지 않으면 정부 목표치를 달성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