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대로]천안함 부활했지만 '천안함 음모론'은 침몰 안해
11월9일 신형 호위함, 천안함 이름 승계정부 기관, 천안함 음모론에 미온적 태도천안함 음모론, 당시 진보언론 주장 계승진영 논리 벗어난 비판적인 사고·태도 要
지난 9일 오후 울산 현대중공업에서 신형 호위함 7번함인 천안함이 위용을 드러냈다. 초계함 천안함이 2010년 3월26일 북한 잠수정이 발사한 어뢰에 피격돼 퇴역한 지 11년 만이다. 더 강력해진 새 함정이 천안함이라는 이름을 물려받았다. 천안함이 부활하면 각종 의혹도 자연스레 해소될 것으로 예상됐지만 현실은 달랐다. 한국 정부가 전 세계에 공표한 '천안함 피격사건 백서'가 발간돼있고 격침 후 건져진 선체가 해군 2함대 안보공원에 전시돼있음에도 천안함이 북한 어뢰 공격이 아닌 다른 이유로 침몰했다는 주장은 여전히 재생산되고 있다. 유튜브에는 ▲천안함은 좌초 후 잠수함과 충돌해 반파됐다 ▲천안함의 절단면이 불 탄 흔적이 없어 폭발에 의한 침몰이 아니다 ▲한주호 준위는 이스라엘 잠수함을 구조하려다 사망했다. ▲생존자 진술서를 보면 폭발음을 청취한 14명보다 충격음을 청취한 24명이 훨씬 많다 ▲부하 46명을 잃은 천안함 함장을 비롯해 어느 누구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으며 대부분 진급까지 했다 등 주장이 담긴 영상이 게재돼있다. 정부 기구들은 이 같은 분위기가 조성되는 데 책임이 없지 않다.
대통령과 국회가 위촉한 인사들로 구성된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천안함 좌초설 등을 주장한 유튜브 영상에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려 파장을 일으켰다. 방심위 위원 중 일부는 천안함의 진실이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며 정부가 공식 발표한 북한 어뢰 공격 결론을 인정할 수 없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방심위 심의 결과가 알려지자 천안함 생존 장병들은 결국 천안함 진수식에 불참하겠다고 선언했다. 천안함 침몰 원인을 둘러싼 극단적인 의견 대립은 사건 직후부터 시작됐다. 민군합동조사단이 '북한이 어뢰로 천안함을 공격했다'고 공식 발표했지만 논란은 이어졌다. 언론의 보도 행태는 논란을 부추겼다.
천안함 사건과 관련해서 연상되는 사건을 놓고도 보수언론과 진보언론의 예시가 극단적으로 엇갈렸다. 보수언론은 6·25전쟁, KAL기 폭파 사건, 버마 아웅산 폭파 사건, 동해안 잠수함 사건, 9·11 테러 사태 등을 언급했다. 반면 진보언론은 유신헌법, 군의 의문사 처리, 미 해군의 정보 은폐 사건인 아이오와함 사고, 이라크 대량살상 무기 거짓정보와 이라크 전쟁 등을 거론하며 합조단 발표를 의심했다. 현재 유튜브에 게재된 천안함 의혹은 사건 당시 진보언론의 주장을 계승하고 있다.
진보 진영의 확증편향은 의심을 증폭시켰다. 북한에 대해 유화적이고 이명박 정부에 비판적인 태도를 가졌던 이들은 애초부터 북한 관련설을 부인하고 군의 실수와 관련된 정보들에 집중할 가능성이 컸다. 나아가 이들은 천안함 사건을 보면서 과거 군사 정권들이 민주화 요구를 억누르고 정권 유지를 위해 안보 관련 정보를 조작했던 경험을 떠올린 것으로 풀이된다.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으로서도 합조단 결과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 남북 화해를 주장해 온 진보 진영에게 북한의 도발은 대북 유화 정책의 입지를 약화시키는 사건이었다. 또 2개월여 뒤 열릴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천안함 사건이 북한의 소행으로 확정될 경우 국민들이 안보 불안감에 휩싸여 보수여당을 지지할 가능성이 컸다. 이에 따라 진보 진영은 천안함 침몰이 북한의 소행이 아니기를 바라는 욕구를 느꼈을 수 있다. 진보 진영의 이 같은 뿌리 깊은 의심은 문재인 대통령의 지난해 3월 "북한 소행이라는 것이 정부 입장"이라는 발언으로 새 국면을 맞게 됐다. 진보 진영의 지지를 받아 당선된 문 대통령이 북한 어뢰 공격설을 인정함으로써 좌초설 등 의혹은 사실과 다른 주장, 즉 음모론으로 규정됐다. 음모란 겉으로 드러난 사실 외에 특정한 목적을 위해 치밀하게 계획된 모종의 비밀을 뜻한다. 음모론이란 사회적 현상과 사건들을 소수의 특정 집단의 음모의 결과로 돌리는 태도다. 아울러 음모론은 국가와 정부의 관점이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에 의해 의도적으로 불신되는 현상을 뜻하기도 한다. 음모론이 국가나 정부에 대한 불신에 따른 일종의 반동이자 저항의 일환일 때도 있다. 한국 사회는 음모론이 형성되기 쉬운 공간이다. 광복 후 한국 사회에서는 격동적인 변화 속에서 국민적 관심을 받는 크고 작은 수많은 사건들이 발생했다. 이 사건들은 정치적 이념에 따라, 진영논리에 따라 제각각 다른 해석을 불렀다. 식민지 통치에 의해 시작된 정치권에 대한 저항적 태도는 군사정권까지 지속됐다. 권력을 독점한 정치세력에 대한 저항감이 극대화되면서 국민은 음모론을 제기하는 다른 정치세력을 지지함으로써 저항적 태도를 보였다.
비단 정치적 소수 집단이나 정치적 약자만 음모론을 활용하는 것은 아니다. 1979년 박정희 사망 후 12월12일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세력은 1980년 5월에 발생한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북한이 광주민주화운동에 연관돼있다'는 음모론을 제기했다. 신군부는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과잉진압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북한 고정간첩들에 의해 시위가 확대됐다고 주장했다. 1980년 5월21일 계엄사령관 육군대장 이회성은 담화문에서 "오늘의 엄청난 사태로 확산된 것은 상당수의 타 지역 불순인물 및 고정간첩들이 사태를 극한적인 상태로 유도하기 위해 여러분의 고장에 잠입해 터무니없는 악성 유언비어의 유포와 공공시설의 파괴 및 방화, 재산약탈행위 등을 통해 계획적으로 지역감정을 자극하고 난동행위를 선동한데 기인된 것"이라고 발표했다.
신군부가 제기한 이 음모론은 보수 정당 인사들에 의해 재생산되면서 아직까지도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그 결과 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와 그 가족은 음모론이 거론될 때마다 상처를 입고 있다. 전문가들은 천안함 음모론과 이를 둘러싼 충돌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진영논리를 넘어선 비판적인 사고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대형 사건이 터졌을 때 정부가 신중하고 정확한 발표를 통해 의혹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윤종성 성신여대 교수는 '천안함 침몰원인에 관한 증거위주의 실증적 연구' 논문에서 "한국 정부의 과학적 수사에 대한 타당한 결과 발표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제한적 요소가 내재돼 많은 오해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며 "군과 정부의 신중치 못한 대응으로 군에서는 사건 발생 시각의 혼돈이 있었다. 정부 수뇌부에서는 천안함 피격사건이 북한의 소행이 아닌 듯한 발언으로 국민들에게 많은 혼란을 줬다"고 지적했다.
곽인신(동아대)은 '음모론의 특성과 한계 : 시론적 분석' 논문에서 "음모론을 맹신하면 불충분한 정보에 근거해 잘못된 지식으로 사회를 바라봐 자칫 사회와 괴리될 수 있다"며 "인터넷의 홍수와 언론에 유포된 정보 속에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판단이 흐려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한승훈(독립연구가)은 '언론보도를 통해 본 천안함 갈등과 그 해결 방안' 논문에서 "갈등 상황에서 당사자들은 흔히 자신이 공정하다고 생각하지만 이기적 편향에 빠져 갈등이 고착되거나 악화된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확인편향과 이기적 편향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신념과 반대되는 정보들을 적극적으로 검색하고 개방된 자세로 검토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정태일 충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한국정치에서 음모론과 선거의 연관성: 장준하 사망, 광주민주화운동, 천안함 침몰을 중심으로' 논문에서 "한국의 정치권은 음모론이 등장할 수 있는 변수를 제거하기 위해 전문가에 의해 투명한 조사과정을 진행시켜야 한다"며 "국민들도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적 잣대를 통해 정치적 사건을 인식하지 말고 비판적 사고를 통해 정치적 사건을 수용하는 객관적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고 주문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