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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전두환 5·18학살 책임 묻히나…"신군부 양심고백 절실"

등록 2021-11-23 16:57:52   최종수정 2021-11-23 17: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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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사망에 진상 규명 차질 우려, 적극 고백 분위기 관측도

전두환 중심 지휘체계 사격·발포이뤄졌다는 軍기록·증언 명백

5·18조사위 역할↑, 軍수뇌부·보안사 출신 인사들 진실 말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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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뉴시스] 신대희 기자 = 5·18민주화운동 전후 정권 찬탈을 위해 국민을 무차별 학살한 전두환(90)씨가 참회의 말 한 마디도 없이 숨지면서, 5·18의 진상을 낱낱이 밝히기 어려워질 것이란 일각의 우려가 나온다.

다만, 전씨가 회고록 등으로 만행을 부정하며 책임을 회피해왔다는 점에서 일부 신군부 세력이 발포경위 등에 대해 더 적극적으로 고백을 할 수 있을 것이란 조심스러운 관측도 제기된다.

1980년 당시 군 수뇌부와 보안사(광주분실 포함)에서 활동했던 신군부 세력들이 전씨 사망을 계기로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지적이 거세지고 있다.

23일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5·18조사위) 등에 따르면 5·18조사위는 이날 전씨 사망 이후 입장문을 내고 "전씨는 41년 동안 사죄하지 않고 변명·부인으로 일관해왔다. 그의 사망에도 불구, 법률이 부여한 권한·책임에 따라 엄정하게 조사를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5·18조사위는 그동안 5·18 집단발포 경위, 최초 발포 명령자, 지휘 체계 이원화, 헬기 기관총 사격·암매장의 실체, 군 자료 은폐·왜곡 경위, 1980년 5월 공권력에 의한 인권 침해, 민간인 사망·상해·실종 등과 관련한 조사를 벌여왔다.

5·18조사위는 35명을 '5·18 학살과 인권 유린 책임자'로 지목하고, 이 중 신군부 중요 인물 5명(전두환·노태우·이희성·황영시·정호용)과 대면 조사를 추진해왔다.

전씨와 노태우씨는 건강 악화를 이유로 조사를 거부하다 숨졌다. 이희성·황영시에 대한 방문 조사만 이뤄진 상태다.

5·18 유혈 진압의 핵심 책임자인 전씨가 사망하면서 전씨 중심의 비공식 지휘체계에서 발포 명령이 내려졌다는 의혹을 규명하기 위한 증언·고백들이 더욱 절실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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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씨는 5·18 당시 광주시민을 '폭도'로 광주를 '폭동의 도시'로 날조하는 이른바 '편의대'를 운용하며 권력을 찬탈했다. 이후 5·18 핵심자료(사격·발포 지시, 관련 증언, 전투 상보·상황일지)를 폐기·조작, 내란목적 살인행위를 '정상적인 군 작전'인 양 180도 호도했다.

전씨는 결국 1980년 5월 20~21일 광주역·전남도청에서 자행된 집단발포와 여러 차례의 시민 학살에 대해서는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다.

다만, 군 기록들은 전씨 중심의 별도 지휘체계에서 사격과 발포가 이뤄졌다고 방증하고 있다.

육군 제2군사령부의 '광주권 충정작전 간 군 지시 및 조치 사항'에 '전(全) 각하(閣下) : 초병에 대해 난동시에 군인복무규율에 의거 자위권 발동 강조'라고 명시돼 있는 점은 사실상 전씨가 발포 지시를 내린 정황을 선명하게 뒷받침하고 있다.

505보안부대가 5월 21일 작성해 보안사령부에 보고한 것으로 추정되는 일일속보철 '광주 소요사태'(21-57) 문건에는 '23:15 전교사(전투병과교육사령부) 및 전남대 주둔 병력에 실탄 장전 및 유사시 발포명령 하달(1인당 20발)'이라고 적혀 있다.

'1980년 기갑부대사'에는 5월 21일 오전 8시 전투태세인 진돗개 하나가 발령됐고, 오전 11시 각급 부대에 개인당 M16 소총 실탄 90발씩을 지급했다고 기록돼 있다.

'5공 전사' 등에는 '1980년 5월 21일 국방부장관실에서 열린 열린 자위권 발동 결정 국방부회의와 5월 25일 광주 재진압 작전 최종 결정 회의에 전씨가 참석했다고 적혀 있다.

전 505보안대 수사관, 미군정보 요원, 공군 706보안부대장 운전병 등은 5월 21일 정오 전씨의 광주 방문 직후 이뤄진 전남도청 발포에 대해 한결같이 증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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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부대 투입 과정에 작전통제권을 갖게 될 전교사령관·31사단장과 사전협의가 없던 점 ▲상급 부대 승인 없이 공수부대가 독자적으로 실탄을 분배한 점 ▲발포 관련 보고가 공식 지휘 계통에 누락된 점 ▲계엄군 간 오인 사격이 잇따른 점 등도 비공식 지휘 체계에 따른 발포를 방증하고 있다.

5·18조사위는 일부 기록과 증언을 토대로 한 발포 명령·암매장 관련 조사에 진전이 있으나 특별법상 의결 없이 조사 내용을 공표할 수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이재의 5·18조사위 전문위원은 "전두환은 5·18 인권 유린 행위에 대한 퍼즐을 맞춘 이후 조사를 해도 범죄를 부인했을 가능성이 높다"며 "전두환 사망과 별개로 전두환 회고록이 거짓임을 다시 한 번 재입증해 국가보고서로 펴내는 게 앞으로의 과제다. 신군부 세력들의 진실 고백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정수만 전 5·18유족회장도 "5·18 학살, 실종자·암매장에 대한 사죄 없이 죗값을 치르지 않고 떠난 전씨는 역사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면서 "오히려 전씨의 사망으로, 진실을 밝힐 수 있는 이야기가 더 나올 수 있다고 본다. 41년 전 공작을 주도하고 민주주의를 지킨 시민을 불법 구금·수사·고문한 이들이 이제는 진상을 밝혀야 한다"고 역설했다.

나의갑 전 5·18기록관장도 "전두환은 12·12, 5·17 군사 반란에 이은 유혈 진압과 배후 조종을 해놓고도 항상 역사를 왜곡해왔다. 5·18 학살 총지휘는 정권 찬탈이란 못된 꿈을 광주에 적용한 전두환이 한 것으로, 그와 보안사의 정황·행적을 반드시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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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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