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천선란 작가 "학교폭력, 아이 주변 어른들에게는 왜 죄 묻지 않나"
영어덜트 소설 '나인' 출간"SF작가 타이틀 감사…상상한 모든것 다 쓰고파"
'천 개의 파랑'으로 한국과학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천선란 작가가 신작 장편소설 '나인'으로 돌아왔다. 이번엔 한국형 영어덜트 소설에 도전했다. 천 작가는 최근 뉴시스와 만나 "우리 주변에 사는 사람들 중 사실 인간이 아닌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알에서 태어나고, 식물처럼 땅에서 뽑힌 사람도 있을 수도 있다"고 웃었다. '나인'은 평범한 고등학생 '나인'이 어느 날 식물들의 목소리를 듣기 시작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다. 숲의 속삭임을 따라 우연히 2년 전 실종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된 나인은 친구 미래, 현재, 승택과 함께 숨겨진 진실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그는 작가의 말을 통해 "타인을 이해하지 못할 때, 타인에게 이해받지 못할 때 우리가 종족이 다른 외계인이라고 생각하면 언제나 마음이 편안해졌다"고 운을 뗐다.
"지하철에서 스마트폰을 보지 않고 사람을 유심히 관찰하는 누군가를 보면 외계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요. 신호등 초록불이 3초 정도 남았는데 뛰지 않고 걸음을 멈추는 사람을 볼 때도, 길가에 핀 꽃을 찍기 위해 기꺼이 땅에 누워 버리는 사람을 볼 때도. 아이와 강아지에게 친절한 사람을 볼 때도. 너무도 당연했던 선의를 잃은 인간들 속에서 그 원초적인 힘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을 마주칠 때마다 외계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면서 "8년 전 한적한 공원 벤치에 앉아 목 놓아 울다 문득 나무와 들풀이 듣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 나무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울음을 들었을까 고민도 했다"며 "이 이야기는 아마도 그날로부터 시작됐을 것"이라고 했다. 외계인이 주인공인 영어덜트 장르다. 천 작가는 "영어덜트라고 하면 청소년 성장 소설이라고 하는데 제가 알기론 외국에서는 10대 후반~20대 초반 나이 주인공이 성장하는 이야기"라며 "학생, 어른 상관 없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고 말했다. 영어덜트 장르를 대표하는 작품으로는 '헝거게임', '메이즈러너' 등을 꼽았다. "사실 아이들은 자신만의 확고한 세계가 있어요. 그런데 그 주변에 자라지 못한 아이들이 있죠. 청소년 주변에서 어른들이 성장하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학교폭력도 주요 소재로 등장한다. 그는 "최근 학교폭력 관련 슬픈 일들이 많지 않았나"라며 "성인 범죄와는 다르게 학생 범죄는, 물론 그 아이도 처벌을 받아야 하지만 정말 가해자가 그 아이 한 명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이번엔 외계인, 지난 6월 출간한 '밤에 찾아오는 구원자'는 뱀파이어가 주인공인 로맨스 판타지 장르였다. 천 작가는 "미래에 우리가 어떻게 될까에 대한 생각을 소설로 풀어내다보니 SF작가로 불리기는 하는데 사실 SF만 쓰겠다는건 아니다"며 "호러도 좋아하고 판타지도 좋아한다. 요즘은 아예 애매하게 쓰고 있다"고 웃었다. 그럼에도 'SF작가' 타이틀엔 감사할 따름이다. "SF를 과학적 고증에 따라 풀어낼 수도 있지만 이야기를 중심으로 쓸 수도 있어요. 제약 없이 상상한 모든 것을 다 쓸수 있는 작가라는 직업에 감사하고 있죠." 자신을 전업 작가로 만들어준 '천 개의 파랑'에는 특별한 애착이 있다. 안락사당할 위기에 처한 경주마, 하반신이 부서진 채로 폐기를 앞둔 휴머노이드 기수, 장애를 가진 채 살아가는 소녀 등이 함께 하는 이야기. "문예창작학과를 전공했고, 꾸준히 공모전에 많이 도전했었는데 늘 떨어졌었어요. 20대 후반 집안 사정도 어렵고 해서 소설을 그만 써야겠다 다짐했고, 그러다 과학문학상에 '인생 마지막 공모전'이라고 생각하면서 냈는데 됐죠. 덕분에 전업 작가로 살고 있네요."
'천선란'은 필명이다. "본명이 흔해서 필명을 짓고 싶었다"며 "가족에게 정서적으로 영향을 받았다. 엄마, 아빠, 언니 이름 글자를 하나씩 따서 필명을 지었다"고 했다. "아빠가 건축일을 해서 해외 출장을 많이 다니셨어요. 주로 중동, 남미 쪽을 갔는데 돌아오시면 사막 등 낯선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죠. 그래서 지금 제 작품에 그런 세계에 대한 동경이 들어가는 것 같아요. 어머니도 치매를 앓고 계시지만 작가라는 제 직업을 변함없이 지지해 주시죠." 코로나 장기화로 최근 작업실을 만들었다. 그는 "원래 카페를 옮겨다니며 작업하는 걸 좋아하는데 코로나 때문에 카페에서 오래 머물 수 없게 됐다"며 "그래서 작업실을 마련했는데, 책도 많이 가져다놓을 수 있고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차기작은 내년 중순쯤 나온다. SF 단편 소설들을 모은 소설집이다. "인물이 살아나는 소설을 많이 쓰고 싶어요. 애정, 증오 등 다양한 인물이 입체적으로 등장하는 소설을 많이 쓰고 싶은 욕심이 있네요. 제 책을 읽을 때 어떤 인물을 만나게 될지 설렘으로 기다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