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서혜란 관장 "도서관은 다이아몬드 품고 있는 곳…대선 후보들 관심 가졌으면"
도서관 첫 민선·사서출신 첫여성 국립중앙도서관장올해 개관 76주년...디지털 서비스 3개년 계획 추진 역점2024년 평창 '국가문헌보존관' 완공 "관광상품으로 개발 됐으면""'이건희 기증품' 고문헌 많은데 도서관 배제돼 아쉬워""도서관, 책만 빌려가는 곳 인식은 옛말...국민 삶 복지와 밀접한 곳"
국립중앙도서관 최초 민간 공모를 통해 뽑힌 전문직 관장이자 사서 출신 첫 여성 관장인 서혜란 관장은 연말 뉴시스와의 인터뷰에서 도서관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많은 관심을 촉구했다. 국립중앙도서관은 올해 개관 76주년을 맞았다. 서 관장은 올해 가장 의미있었던 일로 '디지털 서비스 3개년 계획' 추진을 꼽았다. 4차 산업혁명과 코로나19 확산은 디지털 전환의 가속화와 비대면 자료 수요증가로 도서관 주요 서비스의 변화를 가져왔으며 도서관의 디지털 서비스와 역량이 점점 강조되고 있는 상황이다. 서 관장은 "2023년까지 3개년 계획을 세우고 다양한 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가장 큰 일 중 하나는 직제개편이 있었다는 것"이라며 "그간 여러 부서로 분산된 온라인 자료 업무를 일원화해 온라인자료과를 신설했고, 온·오프라인으로 나눠진 자료이용서비스 업무를 지식정보서비스과로 통폐합했다"고 설명했다. 또다른 핵심 사업은 2024년 완공 예정인 평창 국가문헌보존관이다. 국가문헌보존관 건립사업은 평창 동계올림픽 유휴시설을 리모델링하는 사업이다. 지난 8월 설계안 '무한의 길'이 당선된 후 현재 기본 설계가 진행 중이다.
"전 세계 올림픽 역사상 경기장을 운동시설로 활용하는 경우는 많지만 다른 시설로 리모델링하는 사업은 처음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역사적 상징성과 건립비 절감 등 경제적 이점이 많죠. 사실 2024년 1~2월 강원도에서 동계국제청소년올림픽이 열려서 그 전에 개관해서 IOC 위원들에게 선보이고 싶은데 쉽지 않네요." 국가문헌보존관의 명칭도 바꿀 의향이 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서고로만 생각하는데 단순히 서고의 기능뿐 아니라 국가 문헌들을 디지털화하고 그걸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보존도 하는 데이터센터의 역할도 한다"며 "보존과 데이터 두개 서로 다른 기능을 다 드러낼 수 있는 명칭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나아가 평창 인근 지역에 있는 오대산사고와 연계해 관광상품으로도 개발할 수 있다는 바람이다. "오대산사고는 조선시대 국가의 가장 중요 문헌인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당시 국가 문헌을 보존했던 시설입니다. 그와 연계해 국제적으로 관광상품을 개발할 수 있지 않을까요. 해외여행을 가면 그 나라의 도서관을 찾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흔히 한 나라의 미래를 보려면 도서관을 보라고 하는데 많은 나라들이 국가도서관을 그 포인트로 사용하지요."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국립중앙도서관이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며 아쉬운 마음이다. 서 관장은 "미국, 호주, 프랑스 등을 보면 관광버스 필수 코스 중 하나가 도서관이고 시설도 구경하는 등 주요 관광상품"이라며 "하지만 우리는 도서관이 그 역할을 하고 있지 못하다. 이번 평창 국가문헌보존관을 계기로 우리가 지식문화를 얼마나 숭상하는 국가인지 전 세계에 알릴 수 있지 않을까 한다"고 기대했다.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도서관 본관에 대해서는 건물, 소장품 등 미진한 부분이 많다는 자평이다. "사실 서울 도서관은 건물도 그렇고 그리 매력적인 공간은 아니에요. 전 세계 도서관들 중에는 건축적으로 굉장히 훌륭한 건물들이 많습니다. 또 콘텐츠 면에서도 국가대표 도서관이지만 자랑할만한 국보급 문화 기록유산이 별로 없어요. 매우 아쉽죠." 외국에는 도서관에 주요 문헌들이 전시돼 있는 경우가 많지만 우리나라는 여러 곳에 흩어져 있다. 규장각 문헌은 서울대학교에 있고 조선 왕실 일부 문서는 한국학중앙연구원에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은 동의보감과 십칠사찬고금통요 두 개의 국보를 보유하고 있다. 서 관장은 "우리는 직지라는 기록문화가 있고 기술도 세계 최고인데 한꺼번에 보여줄 수 있는 곳이 잘 없다"며 "국가도서관이 해야 하는 일인데 그런 일을 하지 못하는 게 아쉽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소유권과 상관없이 기록문화유산을 모아 국가문헌관 같은 곳이 있었으면 좋겠다"며 "우리가 자랑할만한 좋은 문헌들을 한꺼번에 모아 전시도 하고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런 면에서 올해 화제가 된 '이건희 기증품'에서 도서관이 빠진 데 대해서는 미련이 남는다. "국립중앙박물관에 들어간 기증품 중 절반 이상이 고문헌이에요. 박물관과 도서관은 소장품을 보존한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도서관은 문헌의 디지털화 등을 통해서 콘텐츠로서 대국민 서비스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박물관과 다르잖아요."
그래도 이번 기증품 중 고문헌은 박물관과 도서관이 협력하는 방안을 협의 중이다. 그는 "당장 1월부터 도서관 전문인력들이 박물관에 파견을 가서 거기서 갖고 있는 문헌들 정리를 시작한다"며 "각각의 문헌들 정리 후 디지털화해 박물관과 도서관 누리집 및 한국고문헌종합목록시스템 등을 통해 대국민 서비스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이건희 기증품 중 주목할만한 고문헌에 대해서는 '동의보감'과 '석보상절'을 꼽았다. "허준의 동의보감은 국보급 유물로 우리 도서관도 갖고 있어요. 동의보감은 여러 판본이 있는데 같은 판본인지 다른 판본인지는 제대로 봐야 할 것 같아요. 석보상절도 풀 텍스트가 없는데 기증품 안에 석보상절이 있다고 해서 어떻게 다른지 봐야할 것 같아요. 아직 저도 뭐가 있는지 다 몰라요. 현재로서는 이건희 기증품에 좋은 문헌들이 많다는 예측만 하고 있네요." K-드라마, 영화, 웹툰 등 한류 콘텐츠가 전 세계로 뻗어나가는 상황에서 도서관 역할에 대한 제고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올해 도서관이 보유한 장서는 1300만 이상으로 어마어마한 이야기들이 보유돼 있는 셈이다. 서 관장은 "창의적인 노래, 드라마, 만화 등 굉장히 많은 원천 소스 데이터들이 잠자고 있다"며 "이를 효과적으로 끌어내기 위해서는 기술적인 연구를 많이 해야 하는데, 예산 확보가 쉽지 않다"고 아쉬워했다.
"도서관을 조용히 앉아서 책이나 보고, 책만 빌려가는 곳으로 생각하는데 옛날 생각이죠. 그런 기능을 부정하는 건 아니지만 그건 진짜 일부에 불과해요. 도서관은 땅 속에 다이아몬드는 품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죠. 숨겨져 있어서 파내야 하는데 그러려면 투자가 필요해요. 많은 국민들이 도서관에 광맥이 있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대선 정국 속 대선 후보들도 도서관에 많은 관심을 가져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쉽게도 아직 도서관을 찾은 후보는 한 명도 없다. "(후보들) 세대가 최근 도서관을 경험하지 못해서 그런 것 같아요. 물론 시장에 가지 말라는 건 아니지만, 시장만 가지 말고 좋은 도서관들도 좀 찾았으면 하네요. 도서관은 어린이, 노인, 주부 등 여러 계층이 찾는, 풀뿌리 민주주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곳이거든요. 제가 참모라면 도서관에 가자고 권유할텐데요." 1955년 서울 출생인 서 관장은 연세대 문헌정보학 석·박사 출신으로 신라대 문헌정보학과 교수, 대통령 소속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 위원, 한국도서관협회 부회장, 한국문헌정보학교수협의회 회장, 한국기록관리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2019년 8월 국립중앙도서관 첫 개방형 관장으로 임명됐으며 임기는 내년 8월까지다. 그는 "내년 내 임기는 만료되지만 도서관 사업은 계속돼야 하는 것들이 많다. 디지털 서비스 3개년 계획도 그렇고 평창 국가문헌보존관도 차질 없이 진행됐으면 좋겠다"며 "나아가 지금 국립중앙도서관이 별도의 관련법이 따로 없고 도서관법 안에 속해있는데 법 체계를 개선해서 국가 대표 도서관의 기반을 확고히 다졌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도서관은 고대부터 있었지만 시간을 거치며 서비스 방향은 계속 변해왔습니다. 지금 도서관은 단순히 정적인 공간이 아니라 삶에 있어 기본적인 것을 다 제공해주는 곳이죠. 우리도 그런 서비스를 하려고 노력하고 있고요. 모든 국민들이 이걸 잘 알고 도서관을 최대한 잘 이용해 개개인의 풍요로운 삶, 여유로운 삶을 함께 이끌어나갔으면 좋겠습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