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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즈업 필름]과감한 척 왜 자꾸 눈치를 보세요…'모럴센스'

등록 2022-02-15 07:54:55   최종수정 2022-02-21 09:5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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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넷플릭스 영화 '모럴센스'(감독 박현진)는 이중적이다. 당당한 척하면서 움츠려들고, 과감하게 내딛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꾸만 제자리에서 머문다. 산뜻하고 도발적으로 출발하고나서도 진부한 길을 간다. 말하자면, '모럴센스'는 뻔한 로맨틱코미디를 거부하면서 그저 그런 로맨틱코미디를 답습한다. BDSM이 도대체 왜 불편하냐고 외쳐놓고 BDSM을 불편해할지도 모를 이들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서둘러 수습한다.

'모럴센스'는 그간 한국 영화·드라마가 다룬 적 없는 성적 취향인 본디지(Bondage)·디서플린(Discipline)·사디즘(Sadism)·마조히즘(Masochism), BDSM을 다룬다. 꽤 익숙한 단어인 S&M만 있는 게 아니다. B&D(Bondage & Discipline·구속과 훈육)가 있고, D&S(Dominace & Submission·지배와 복종)도 있다. 이 영화는 'S'(복종) 성향의 남자 정지후(이준영)가 자신을 'D'(훈육·지배) 해줄 여자 정지우(서현)를 만나면서 벌어지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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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본 적 없는 소재 덕분에 '모럴센스'는 관객이 숱하게 봐온 로맨틱코미디가 가보지 않은 길을 가는 것 같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어떻게 보면 이 영화는 로맨틱코미디의 정도(正道)를 걷는다. 약점과 상처가 있는 두 존재가 만나 상대의 약점이 사실은 약점이 아니라는 걸 확인해주고, 서로 상처를 보듬어 안으며 사랑하게 된다는 그런 스토리 말이다. 이 익숙한 전개에 편안함을 느낄 관객이 있겠지만, 새로운 걸 기대한 관객에겐 이건 싱거운 얘기일 수도 있다.

물론 이 작품은 BDSM을 관객의 말초신경을 자극하기 위한 도구로만 쓰지는 않는다. D&S를 활용해 오랜 세월 이 세계가 주입해온 남성성과 여성성의 고정관념을 전복하고 비판하려는 게 이 영화의 목표 중 하나다. '모럴센스'는 강한(강하다고 여겨지는) 남성이 지배하고 약한(약하다고 여겨지는) 여성이 복종해야 한다는 식의 낡을대로 낡은 사상을, 복종을 원하는 남자와 그를 지배하는 여자의 사례로 간단히 기각해버린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가벼운 로맨스물인 것처럼 보이지만,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PC)의 메시지를 대놓고 전달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 두 남녀가 짝을 이루기 전에 정지후는 흔히 말하는 남성성을 배신하는 성향을 가졌다는 이유로 사회적으로 매장당하지 않기 위해 가면을 쓴 채 살아가는 인물이고, 반대로 정지우는 거짓된 여성성에 종속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회 생활 내내 유별난 여자 취급을 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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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의미에서 볼 때 지우가 지후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D&S 관계를 명확히 하는 장면은 이 영화 최고의 시퀀스(sequence)다. 이 대목에선 많은 관객이 짜릿함 비슷한 걸 느낄 수밖에 없는데, 두 사람 사이에 성적 긴장감이 최고조로 치솟는다는 의미에서 뿐만 아니라 공적인 공간인 회사에서 '여성 부하 직원'이 '남성 상사'에게 육두문자를 퍼부으며 그동안 이곳에서 남성들에게 당한 수모를 고스란히 되갚아 준다는 의미에서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쾌감을 만들어내기 떄문이다.

다만 '모럴센스'는 이처럼 일부 장면에서 쌓아올린 성과를 후반부에 관습적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설정들을 수차례 남발하면서 무너뜨리고만다. 다소 과장되게 표현하면, BDSM을 활용해 통념의 전환을 요구하며 체제를 뒤집는 표현을 해놓고,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자' '상대의 참 모습을 인정해주자'는 식의 뻔한 결론으로 급선회하는 모습은 다소 허무하기까지 하다. 게다가 이런 결정이 이 영화의 일부 설정을 불편해 할 수도 있는 불특정 관객의 눈치를 본 것으로 느껴지게 하는 부분이 있다는 점에서 자기모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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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반드시 봐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역시 두 주연 배우인 서현과 이준영의 존재다. 시대를 대표하는 아이돌 그룹 출신인데다가 바른 생활 막내 이미지를 갖고 있는 서현에게 정지우를 맡긴 건 최적의 캐스팅으로 보인다. 서현이 채찍을 휘두르고 욕설을 내뱉으면서 그간 그에게 덧씌워진 '아이돌 출신 배우'라는 이미지를 깨부수는 장면들은 심지어 산뜻하게 느껴진다. 데뷔 이후 드라마·뮤지컬 등에 출연하며 꾸준히 다져온 연기력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걸 증명하며 앞으로 행보를 기대하게 한다.

이준영은 자신이 20대를 대표하는 배우가 될 만한 재능을 갖고 있다는 걸 마음껏 드러낸다. 정지후라는 캐릭터는 그가 가진 성향 탓에 자칫 잘못하면 너무 오버스러운 캐릭터가 될 수 있었는데도, 이준영은 과장된 표현을 해야 할 때와 그렇게 하지 않아야 할 때를 명확히 구분해내며 전에 본 적 없는 이 인물을 관객에게 설득하는 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이준영은 이제 더 다양한 작품에서 더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될 것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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