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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연배의 이야기와 함께하는 와인] 닌자와 와인

등록 2022-04-30 06:00:00   최종수정 2022-04-30 07:5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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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킬빌' 속 '핫토리 한조' 모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쿠엔틴 타란티노는 독특한 개성을 가진 영화감독이다. 그는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펄프 픽션’처럼 작품성과 흥행성을 모두 인정받은 작품도 만들었지만, 주로 B급 감성처럼 보이는 흥행성 높은 작품을 자기 방식대로 만든다.

그는 영화감독이기 전에 지독한 영화광이다. 3살 때부터 어머니를 따라 극장을 다녔고, 10대 초반에는 직접 영화 각본을 썼다. 22세에는 아예 비디오 가게에 취업해 하루 종일 각종 장르의 영화를 섭렵하고 손님에게 추천했다. 그는 서부극, 홍콩 느와르, 이소룡 영화, 일본의 사무라이 영화들을 좋아했다. 그가 좋아하는 영화 리스트에는 우리나라의 정창화 감독이 1972년 홍콩의 쇼 브라더스에서 만든 ‘죽음의 다섯 손가락’도 있다.

2003년과 2004년 각각 개봉된 2부작 ‘킬빌(Kill Bill)’은 이러한 그의 취향을 양념처럼 버무린 대표적인 영화다. 주인공 베아트릭스 키도(우마 서먼)이 입었던 검은 줄의 노란 트레이닝복은 이소룡의 ‘사망유희’를 오마주했다.

타란티노의 영화에는 와인을 비롯해 각종 음주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킬빌’에는 ’아네호’라는 데킬라가 등장한다. 실제 그는 와인을 좋아하고 와인에 관해서도 종종 언급을 한다. 2009년 개봉한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에 브래드 피트를 캐스팅하기 위해 피트의 자택에서 밤새도록 둘이 레드 와인 5병을 마시고 출연 승낙을 얻어낸 일화도 있다.

‘킬빌’에는 ‘핫토리 한조’라는 흥미로운 인물이 등장한다. 전설적인 검객이자 일본도 명인으로 오키나와에 은둔하며 초밥집을 운영한다. 그는 자신을 찾아온 키도를 위해 직접 일본도를 만들어준다.

그런데 사실 핫토리 한조는 실존 인물로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함께 일본사에 등장하는 유명한 닌자다.

‘닌자(忍者)’는 12세기에 시작된 가마쿠라 막부 시대에서 메이지 유신 이전의 에도 막부까지 존재했던 특수전 집단이다. 미국의 특수부대인 ‘델타 포스’나 ‘네이비 실’처럼 지방의 영주(다이묘)에 소속되거나 독립적으로 첩보 수집, 암살, 은밀한 침투, 파괴, 요인 경호 등 임무를 수행했다. 위장과 변장, 은신, 폭발물 및 독극물의 사용, 각종 특수 무기의 사용에 능했다. 검은 복면을 쓰기도 했다. 이중 일부는 나중에 근대화된 일본의 첩보조직에 흡수되기도 한다.

핫토리 한조(服部半藏)는 1500년대 이후부터 이어진 한조 가문을 지칭하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2대 핫토리 한조인 ‘핫토리 마사나가(服部正成)’를 의미한다. 아버지 대부터 도쿠가와 가문을 돕던 핫토리 마사나가는 1582년 발생한 ‘혼노지의 변’ 당시 휘하 병력 없이 적진의 한가운데에 고립된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안전지대로 탈출시키고 그의 생명을 구한다.

혼노지의 변이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함께 일본 전국시대의 3대 영웅으로 일컬어지는 오다 노부나가가 그의 직속 장수인 아케치 미쓰히데의 모반으로 혼노지(本能寺)라는 절에서 암살당한 사건을 말한다. 이 사건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아케치 미쓰히데를 토벌하고 일본을 천하 통일하는 계기가 된다. 이때 핫토리 한조의 도움으로 살아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나중에 히데요시가 사망하자 1600년 10월 동군을 이끌고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서군의 이시다 미쓰나리를 격파하고 에도 막부를 창건한다.

핫토리 한조는 에도 막부가 끝날 때까지 대를 이어 도쿠가와 가문에서 봉록을 받으면서 쇼군의 경호임무에 종사했다. 재미있게도 킬빌에서 핫토리 한조 역을 맡은 배우 치바 신이치는 핫토리 한조 가문의 100대 후손으로 알려져 있다. 다른 일본 드라마에서도 같은 배역을 맡기도 했다. 그는 지난해 코로나에 감염되어 82세로 사망했다.

일본에는 1594년에 포르투갈 선교사에 의해 와인이 처음 전래됐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나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선교사로부터 와인을 진상 받았다는 기록도 있다. 그 당시 진상 받은 와인은 강화 와인인 포트 와인이었다. 도쿠가와 에이야스는 와인을 좋게 평가했다.

닌자와 핫토리 한조는 브랜드 네임으로도 쓰이는데 이를 딴 ‘닌자 와인(Ninja Wine)’도 있다.

역사와 와인은 꼬리를 물고 이어져 있다. 와인이 역사고, 와인이 없는 역사도 없다. 그리고 영화는 이를 소재로 끝없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든다. 그리고 와인은 그들이 창의성을 발휘하도록 돕는다.

▲와인 칼럼니스트·경영학 박사·우아한형제들 인사총괄 임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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