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 필름]오디아르·시아마, 이 조합 싱겁네…'파리, 13구'
[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영화 '파리, 13구'(감독 자크 오디아르)에는 흔히 아는 파리의 모습이 없다. 그곳엔 방사형으로 펼쳐진 거리를 질서 있게 채운 고풍스러운 건물 대신 하늘 위로 높이 솟은 고층 건물이 무질서하게 세워져 있다. 말하자면 낭만은 없고 현실이 있는 곳. 이 영화 원제는 '레 올랭피아드'(Les Olympiades)로, 더 구체적으로 파리 13구 내 고층 건물이 많은 동네를 말한다. 이곳은 1970년대 재개발이 이뤄진, 파리 내에 요즘 건물이 있는 곳이다. 로맨틱 코미디인 이 영화의 정체성이 바로 이 동네에 있다. 말하자면 '파리, 13구'는 요즘 시대 사랑의 현실을 그린다. 자크 오디아르 감독은 그래서 "이 영화는 현시대를 보여주는 시대극"이라고 말한다. '파리, 13구'는 한 남자 카미유와 세 여자 에밀리·노라·제니의 얽히고 설킨 사랑 이야기다. 주류 사회에 편입하지 못하고 주변부를 맴도는 아웃사이더들의 사랑 이야기이며, 단단히 달라붙지 못하고 자꾸만 미끄러지는 사랑 이야기이다. 그리고 아름답기만 한 건 아닌 사랑 이야기다. 그들의 사랑은 섹스와 디지털 기기와 우연과 돈으로 덧칠돼 있다. 그러니까 이들은 사랑을 원하지만 사실 사랑이 어떻게 생긴 것인지도 그게 무엇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네 남녀는 이 영화의 흑백화면처럼 언제나 조금씩 우울한 상태다. 이게 바로 1952년생 노장 감독이 발견하고 관찰하고 진단한 요즘 사랑이다. 이번 작품은 자크 오디아르 감독과 셀린 시아마 감독이 합작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큰 관심을 모은다. 오디아르 감독은 '디판'으로 2015년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거장이다. 시아마 감독은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으로 2019년 칸영화제 각본상을 받으며 최근 가장 각광받는 여성 감독이다. '파리, 13구'는 오디아르 감독이 연출을 맡았고, 시아마 감독이 각본을 썼다. 이 영화가 카미유가 아닌 여성 주인공들의 시선으로 진행되는 건 시아마 감독의 영향으로 추측된다. 이 작품은 에이드리언 토미네 작가 단편 만화 '킬링 앤 다잉' '하와이언 겟어웨이' '앰버 스위트' 세 가지를 섞어 각색한 작품이기도 하다. 다만 '파리, 13구'는 오디아르와 시아마의 이름값에 비하면 평범하다. 오디아르의 연출은 때로 감각적이고 시아마의 각본은 날카로운 구석이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젊은 세대의 사랑을 피상적으로 그려낸다는 인상을 준다. 이 영화는 '이 시대의 사랑'이라는 새로운 경향을 보여주려는 시도를 하면서도 다른 영화들에서 수차례 반복됐던 뻔한 인간 관계를 반복한다. 특히 꼬여버린 관계가 너무 쉽고 안전하게 제자리를 찾아가는 마지막 대목은 너무 편리한 선택으로 보인다. 오디아르와 시아마가 합심해 이전에 보지 못한 영화를 내놓을 거라고 기대한 관객에겐 더 실망스러운 작품이 될 공산이 커보인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