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슬조각 '오토니엘 마법'에 빠진 덕수궁·서울시립미술관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서울이 '오토니엘 마법'에 걸렸다. 구슬 보따리를 보는 순간 눈이 멀듯 매혹된다. 평범했던 연못도 황금빛 보물섬으로, 전시장도 깊고 푸른 환상적인 공간으로 빠지게 한다. “세상에 다시 마법을 건다”는 프랑스 현대미술가 장미셸 오토니엘(58)의 개인전이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과 야외조각공원, 덕수궁 정원 등 3곳에서 열린다. '유리구슬 조각'으로 유명한 그는 공예를 현대미술 조각의 세계관으로 넓힌 작가다. 주요 작품 74점을 한자리에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작가가 최근 10년간 발전시킨 작품 세계를 조망한다. 2021년 프티 팔레(Petit Palais)에서 개최한 전시보다 큰 규모의 개인전이다. 덕수궁 관람 후 서소문본관 야외조각공원을 거쳐 전시실로 이어지는 관람 동선을 추천한다. “나에게는 미술관을 나서서 거리로 나가는 비전과 열망이 있다. 예술과 작가는 퍼블릭을 만나기 위해 나가야 한다”는 오토니엘의 세계관을 연결하는 매듭 같은 형태로 전개된다. 오토니엘은 이번 전시에서 꽃과 물, 불꽃과 영원을 표현한 다양한 작품들로 고통을 이겨낸 부활과 새로운 희망을 염원하는 메시지를 전한다.
◆덕수궁 연못 '황금 연꽃' , 희망과 염원을 바치는 '황금 목걸이' 오토니엘은 연잎으로 덮인 수면과 작은 섬을 지닌 덕수궁의 연못을 보고 즉시 덕수궁을 전시 장소로 결정했다. 덕과 장수의 뜻을 지닌 궁에서 펼쳐진 역사를 사색하고 고행과 깨달음의 상징으로 스테인리스스틸 구슬 위에 손으로 금박을 입힌 '황금 연꽃'을 설치했다. 섬의 나뭇가지에는 꿈이 이루어지길 기원하는 의미에서 '황금 목걸이'를 걸었다. 나무에 걸린 목걸이는 영험한 나무에 소원을 비는 인류의 오랜 풍습을 떠올리게 하며 소원을 적어둔 ‘위시트리(wish tree)’처럼 우리 안에 있는 열망과 미래의 희망을 상징한다. '황금 목걸이'는 서울시립미술관 조각공원의 나무에도 설치되어 덕수궁과 미술관을 이어주며 주변의 풍경을 새로운 공간으로 탈바꿈시킨다.
◆미의 수호, 예술에 바치는 오마주 '거울 매듭' 오토니엘은 1990년대 세계 각지의 문화를 접하면서 아름다움은 개개인이 시대의 사회, 정치, 경제적인 아픔을 극복하고 희망을 일깨우며 인간의 존엄을 수호하는 성스러운 가치라는 믿음을 키웠다. 오토니엘은 ‘미’가 현실에서 탄생하는 시와 같이, 현실에 있되 세계안과 밖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시적 우주를 일깨운다고 보았다. '매듭' 시리즈는 거울 처리된 구형 모듈이 보는 이와 주변 환경을 모두 담아내는 미의 상징이다. 미술관 입구 양쪽에 '바벨의 매듭'과 '상상계의 매듭'을 설치하여 미의 영원한 가치와 예술에 경의를 표한다. ◆꽃과 꽃가루의 확산 에너지에 저항의 기운을 담은 삼면화 '자두꽃' 어린 시절 광업 도시에서 자란 오토니엘은 어두운 풍경에서 보석처럼 반짝이는 꽃과 그에 얽힌 이야기들에 심취했다. 오토니엘에게 꽃은 형상이자 서사이고 에너지이다. 덕수궁에 새겨진 자두꽃의 암술에서 꽃가루가 퍼지며 에너지가 확산하는 모습을 거대한 삼면화 신작 '자두꽃'에 담았다. 자두꽃은 저항과 끈기를 의미한다.
◆상처를 품고 새로운 희망의 세계를 펼친 7500여 장의 '푸른 강' 미술관 1층 전시장을 채운 모뉴멘털 설치는 세 작품으로 구성된다. 우선 '푸른 강'은 인도의 유리 장인들과 협력하여 제작한 유리 벽돌 7500여 장으로 구성된 바닥 설치작품이다. 오토니엘의 유리 벽돌은 멀리서 보면 빛나지만 가까이에서 살펴보면 미세한 기포와 불순물이 있어 아름다움의 현실적 취약함과 꿈의 상처를 표현한다. 유리 벽돌을 육면체 부조로 설치한 '프레셔스 스톤월'은 성소수자운동의 시발점이 된 1969년 뉴욕에서의 스톤월 항쟁과 관련한 오마주에 이어 코로나 팬데믹 시기 경험을 연장한 시리즈다. 시간과 목표가 상이한 두 개의 사건은 힘없는 개개인이 발휘한 극복 의지와 해방감을 공유하며 작가는 이를 미니멀한 형태와 불꽃처럼 일렁이는 반사광으로 표현했다. 천장에 매달린 조각은 3차원 공간에서 풀어지지 않은채 무한 변형을 거듭할 수 있는 매듭을 일컫는 수학 용어인 ‘와일드 노트’를 표현한다. '와일드 노트'는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 라캉이 주장했던 상징, 상상, 실재계 간의 관계를 참고하고 2015년경부터 발전된 매듭 연작이다. 서로를 비추고 관계하며 무한한 변형을 거듭하는 상징, 상상, 실재의 세계는 오토니엘의 미학이자 그의 우주관이며 작가가 관객과 나누고자 하는 비전이다.
◆상처와 단절 너머 꿈과 상상의 나눔터 '아고라' '아고라'는 2750개의 스테인리스스틸벽돌로 만들어진 움막 형태의 조형으로 관객이 들어가 앉아 쉬거나 대화를 할 수 있는 공간이다. 다양한 시공간대를 융합한 오토니엘의 세계에서 작가는 '아고라'가 각자의 내면에 방치된 꿈과 상상의 세계를 되찾는 묵상과 대화의 공간이 되기를 기대한다. 서울시립미술관 백지숙 관장은 “팬데믹으로 지친 관람객에게 작품과 관람객, 전시 장소가 상호 관계를 맺고 공명하는 이색적인 전시 경험을 제공하고자 했다”라고 전했다. 전시는 예약 없이 관람 가능하며 서울시립미술관 전시도슨팅앱을 통해 이상협 KBS 아나운서가 녹음한 음성 작품 해설을 들을수 있다. 전시는 8월7일까지.
◆장-미셸 오토니엘은? 1964년 프랑스 생테티엔에서 출생한 장-미셸 오토니엘은 현재 파리를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다. 1980년대 후반부터 신화에 기반한 현실과 환상, 미래의 꿈을 엮어 경이의 세계로 이끄는 매력적인 작업을 선보여왔다. 특히 유리 등의 재료를 사용하면서 현대미술에서 도외시되어 온 공예적 제작 방식이 지닌 의미와 다양한 가능성을 확장해 오고 있다. 1992년 독일의 현대미술축제인 카셀 도큐멘타에 참가하여 이름을 알리기 시작해 파리 루브르박물관, 퐁피두센터, 구겐하임미술관 등 세계 주요 미술관과 베니스비엔날레 등 국제적인 행사 등에서 전시했다. 2000년에 파리 지하철 개통 100주년을 기념해 팔레 루아얄-루브르 박물관역에 유리와 알루미늄으로 지하철 입구를 제작한 '여행자들의 키오스크'로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고, 2015년 베르사유궁전에 '아름다운 춤'을 영구 설치해 동시대의 영향력 있는 작가로 인정받았다. 2019년 루브르박물관의 초청으로 제작된 '루브르의 장미'가 현대미술 작업으로는 이례적으로 영구 소장되어 화제가 되었다. 국내에서는 2011년 삼성미술관 플라토에서 개인전 'My Way'를 비롯해, 국제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연바 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