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 사회일반

[자녀살해②]반복되는 비극…"생활고·스트레스·돌봄부담에..."

등록 2022-08-02 12:20:16   최종수정 2022-08-08 09:23:46
  • 크게
  • 작게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이메일
  • 프린트

자녀살해, 경제·정신적 곤란 주된 이유

법원 "부모의 위기, 자녀의 위기 아냐"

사회구조적 아쉬움 드러내는 판결도

associate_pic
[서울=뉴시스] 홍효식 기자 = 서울고법. 2021.07.25.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신귀혜 기자 = 극단적인 선택 과정에서 자녀를 살해하기로 마음먹는 '자녀 살해' 사건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 사회적으로 '극단적 아동학대 범죄'라는 지탄이 나온다. 법원은 살아남은 부모에게 '자녀에 대한 인식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2일 뉴시스가 대법원 판결 인터넷 열람시스템을 통해 확보한 판결문 29건에 따르면 자녀를 살해하거나 미수에 그쳐 유죄 판결을 받은 부모들은 대체로 경제적·정신적으로 궁지에 몰린 상황에서 범행을 결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적 원인…"극심한 생활고에 월세도 못내"

A씨는 지난 2013년 배우자와 혼인신고를 한 뒤 자녀 두 명을 낳아 키우고 있었다. 그러다 2018년께부터 경제적 문제로 배우자와 갈등을 빚다 별거를 선택했고, A씨 홀로 두 자녀를 양육하기 시작했다.

A씨는 월세마저 제대로 내지 못해 살던 곳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할 정도로 극심한 생활고를 겪었다. 여기에 양육 스트레스까지 더해져 자녀들을 살해한 뒤 극단적 선택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A씨는 자녀들에게 여행을 가자고 한 다음 투숙한 숙소에서 자녀들을 살해하기로 했다.

지난해 2월 A씨는 여행지 호텔에서 첫째(당시 7세)에게는 'TV를 보고 있으라'고 한 뒤 둘째(당시 5세)를 '숨바꼭질을 하자'며 방으로 유인했다. A씨는 둘째를 흉기로 찌른 뒤 자해를 시도했으나 첫째가 데리고 온 호텔 관리자의 신고로 미수에 그쳤다.

이 사건 1심 수원지법은 "우리 사회는 그동안 이 사건과 같은 유형의 범죄에 관하여 '부모가 오죽했으면'이라는 온정적인 시각으로 '동반자살'로 미화해 왔다"며 "피고인을 사회로부터 격리하는 처벌은 불가피하다"며 A씨에게 징역 4년을 선고했다.

A씨는 형이 무겁다며 항소했지만 수원고법은 "피해아동은 16주간의 치료가 필요한 중한 상해를 입었을 뿐 아니라 피고인을 두려워할 정도로 정서적 후유증을 겪고 있다"며 원심 판단이 정당했다고 보고 항소를 기각했다.

◆정신적 스트레스가 질병으로 악화…"신변비관"

B씨는 직장생활 중 받은 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지난 2020년 우울증·공황장애 등을 진단받고 정신과에서 약물치료를 받았다.

B씨는 지난해 2월께 새로 처방받은 약이 몸에 받지 않는다고 생각해 임의로 약 복용을 중단했고, 수면장애까지 발생한 상황에서 순간적으로 신변을 비관해 극단적 선택을 하기로 결심했다.

이후 B씨는 자신이 죽으면 어린 자녀가 부모 없이 혼자 살아가기 힘들겠다는 생각에까지 이르렀다.

이에 B씨는 집에서 컴퓨터를 하던 자녀(당시 11세)를 질식시켜 살해하려 했으나 자녀가 도망쳤고, B씨가 다시 자녀를 흉기로 찔렀으나 약 4주간의 치료가 필요한 상해를 입힌 채 미수에 그쳤다.

청주지법 제천지원은 "피해자와 가족들은 평생 지울 수 없는 큰 정신적 충격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극도로 심신이 불안정한 상태에서 이 사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여 엄중한 처벌보다는 적절한 치료와 가족들의 따뜻한 보살핌이 절실해 보인다"며 B씨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장애·투병 자녀 돌봄 부담…비극의 단초되기도

C씨는 직장생활을 하던 중 1997년 자녀가 조현병 등 정신질환을 진단받은 뒤로 직장을 그만두고 자녀 돌봄에 전념해 왔다.

C씨는 자녀를 병원에 데리고 다니며 적극적으로 치료를 받게 했으나, 자녀는 약을 거부하거나 소란을 피우는 등 병세가 갈수록 악화됐다. 입원중인 병원에서 문제를 일으켜 퇴원을 권유받아 여러 의료시설을 전전하기까지 했다.

이에 C씨는 자녀를 더이상 돌보기 어렵겠다는 생각에 이르렀고, 2020년 5월 배우자가 집에 없는 틈을 타 잠을 자고 있던 자녀(당시 36세)를 얼마 간 바라본 뒤 흉기로 찔러 사망에 이르게 했다.

C씨는 1심 법정에서 "같이 죽기 전에 딸 얼굴을 한 번 더 보고 마음도 정리하기 위해 딸이 자는 모습을 지켜봤다"고 진술했다.

서울남부지법은 "피고인이 아무리 피해자를 정성껏 보살펴 왔다 하더라도 자녀의 생명에 관해 함부로 결정할 권한은 가지고 있지 않다"면서도 "피고인의 배우자가 그간 감내해 왔던 어려움을 감안해 선처해 줄 것을 탄원하고 있다"며 C씨에게 징역 4년을 선고했다.

C씨는 양형부당을 이유로 항소했는데, 서울고법은 C씨의 주장을 받아들여 1심 판결을 파기하고 징역 3년을 선고했다.

◆법원 "부모들 인식 문제 있지만…사회구조적 문제도"

법원은 자녀 살해 범죄가 '부모의 위기'를 '자녀의 위기'로 동치시키는 그릇된 인식에서 비롯됨을 일관되게 짚고 있다.

A씨 사건의 1심을 맡은 수원지법은 "이 사건과 같은 범죄는 부모가 자녀를 부모의 소유물로 여기는 그릇된 인식과 자신이 죽은 후 자녀의 삶이 불행할 것이라 단정하고 책임진다는 잘못된 판단만으로 자녀를 살해하려 한 것에 불과하다"고 일침했다.

다만 사회구조적 원인도 있다는 안타까움을 드러내는 판결도 있었다.

C씨 사건 항소심을 맡은 서울고법은 C씨의 양형부당 주장을 받아들이면서 "장애인 가족의 삶의 질 향상과 안정적인 가정생활 영위를 위해서는 사회공동체의 지원이 필수적"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러나 피고인과 그 가족들은 사회로부터 적절한 보호와 관리를 받지 못했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담당해야 할 사회적 책임은 온전히 피고인의 가정에 전가돼 피고인 개인의 부담이 됐다"고 판단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ㆍ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어플,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Copyright © NEWSIS.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이메일
  • 프린트
  • 리플
관련기사
위클리뉴시스 정기구독 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