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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안중근 처자식에 관한 대목 쓰기 가장 힘들었다"[일문일답]

등록 2022-08-03 13:35:38   최종수정 2022-08-08 09:4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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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하얼빈' 출간 기자 간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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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소설가 김훈이 3일 마포구 한 카페에서 신작 '하얼빈' 출간을 맞아 기자 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문학동네 제공) 2022.08.03.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신재우 기자 = "(안중근과 우덕순) 두 젊은이가 이토 암살을 논의할 때 젊은이들의 시대에 대한 고민은 무거웠지만 그들의 처신은 가벼웠습니다. 대의명분에 대해 토론하지 않고 바람처럼 가볍게 일어선 겁니다. 청춘은 아름답다는 말은 이럴 때나 할 수 있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칼의 노래', '남한산성' 등을 쓴 소설가 김훈은 3일 신작 '하얼빈' 출간 기자 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청년 시절부터 안중근에 대한 이야기를 쓰려고 계획했다는 그는 "내가 쓰는 글은 역사 소설이 아닌 '안중근'이라는 인간의 청춘과 그 내면에 살아있는 인간으로서의 글"이라고 신작을 소개했다.

3일 마포구 한 카페에서 진행한 간담회에서 그는 "안중근에 대해 다루는 것은 나에게 굉장히 신선한 시간으로 다가왔다"며 "청춘의 시간과 청춘의 언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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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소설가 김훈이 3일 마포구 한 카페에서 신작 '하얼빈' 출간을 맞아 기자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문학동네 제공) 2022.08.03.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이번 소설 제목을 '하얼빈'으로 한 이유는 뭔가요?

"원래 제목은 '하얼빈에서 만나자'였습니다. 출판사와 논의를 거쳐서 '만나자'를 빼기로 했는데 지금의 제목이 더 정돈되고 완성된 제목이고 생각합니다. 원래 생각했던 제목은 주제를 과도하게 노출시키고 톤이 너무 트로트 가요 같아요. '하얼빈'이라고 했을 때의 그 완결성, 그리고 하얼빈이라는 도시가 우리 한국인들에게 맺힌 이미지, 제국주의 세력의 교차점이라는 점에서 지금의 제목으로 정하게 됐습니다."

-이번 작품을 젊은 시절부터 기획했다고 하셨는데 자료를 모으고 창작하는 과정은 어떠셨는지요?

"처음 구상한 것은 굉장히 방대했습니다. 이토 히로부미의 형성기, 소년기, 전성기까지 족적을 다 취재했어요. 그 과정이 지금의 저의 소설에는 전혀 반영이 안 됐죠. 그래도 그 시대 인간의 분위기를 아는 데는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안중근에 대해서는 취재를 많이는 못 했습니다. 안중근이 지나온 경로를 가보려고 연초에 준비해놨는데 제 건강에 자신이 없고 그 지역에 코로나19가 이미 창궐해 여행이 불편하다고 해서 가보지 못했습니다. 그 부분이 아쉽고 유감스럽습니다. (취재가) 소설을 쓰는데 표현이나 묘사에 도움이 안 된다고 해도 손바닥에 장악하는 느낌이 들면 자신 있게 글을 써낼 수 있는데 이번엔 그런 장악력이 전혀 없었어요. 소설을 다 썼지만 다음에 개인적인 여행으로라도 다녀올 생각입니다."

-이번 소설을 '필생의 과업'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젊은 시절부터 쓰고 싶으셨던 이야기가 나오기까지 왜 이리 오래 걸렸을까요?

"사실 제 필생의 과업은 아닙니다. 필생의 과업은 평생 거기에 매달려있다는 것인데 젊은 시절 쓰기로 하고 방치한 것이니까요. 우선 밥벌이를 하느라 바쁜 시간이었고 이 일을 감당해내는 것이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쓰기로 결정한 올해 초에는 극도로 압축해서 쓸 수밖에 없다고 생각을 했어요. '젊을 때 생각했지만 필생 동안 방치한 작품'이라고 말하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시작은 우연히 일본에서 작성한 안중근의 신문조서를 읽은 것에서 부터입니다. 말도 못 하는 충격을 줬어요. 저에게 안중근 신문조서와 이순신의 난중일기는 큰 충격을 줬는데 결국 그 글이 제 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이죠. 책이라는 것은 결국 인간의 생을 지배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안중근 하면 상징적으로 떠오르는 것 중 하나가 왼손 약지가 잘린 부분인데 책에 그 내용 담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는 (책을 통해) 안중근의 생애를 다 쓰지 않았고 안중근의 형성기는 완전히 빠져있습니다. 그 당시에 대한 기록은 매우 설화적인 기록, 영웅 같은 설화가 남아있죠. 단지 동맹 부분은 안중근이 의병 투쟁을 했던 시절인데 저는 그 이후 안중근이 혼자 의병 투쟁에서 의열 투쟁으로 전환하는 부분부터 다루기 시작한 겁니다."

-'칼의 노래'와 '하얼빈'의 두 주인공인 이순신과 안중근의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다면?

"내가 쓴 이순신이라는 인물은 역사 속 인물과는 다릅니다. 이순신은 왕조사상, 왕조에 대한 충성심을 힘으로 전쟁을 수행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내 소설에 나오는 이순신은 그런 게 없는 인물로 그렸어요. '칼의 노래'의 이순신은 세상을 한심하게 여기는 거에요. 절망적인 상황에서 인간은 어떤 희망의 허상을 제시하기 마련인데 소설 속 이순신은 이를 제시하지 않고 현실을 들이받고 나가는 사람으로 그렸습니다. 안중근이라는 사람은 (이와 달리) 희망의 목표를 가진 사람입니다. 목표를 가지고 싸운 사람이에요. 그가 쓴 동양평화론에는 그런 희망의 목표가 논리적이고 구체적으로 쓰여 있죠. 모든 동양의 국가들이 독립된 게 동양의 평화라고 그는 생각했습니다. 그게 안중근의 평화이고 비극이죠."

-작가의 말에서 "안중근을 그의 시대 안에 가둬놓을 수 없다"고 쓰셨는데 이를 자세히 설명해주신다면 어떤 의미일까요?

"저로서는 굉장히 중요한 문장이었어요. 안중근이 자기 시대에 이토를 자신의 적으로 생각해 쏴 죽이고 그 시대의 사명을 다했다고 볼 수 없는 것이고 동양 평화의 명분은 지금도 살아있는 것입니다. 초야에서 뒹구는 한 글쟁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안중근 시대의 동양과 비교하면 지금의 동양은 더욱 절망적이죠. 중국은 세계 최강대국으로 미국과 쌍벽을 이루고 있고 북한은 핵으로 무장하고. 안중근 시대보다 더 어려운 동양의 평화가 위기에 처한 모습을 보며 안중근 의사를 그 시대에 가둬놓고 그 시대 문제로 국한된 것이라 생각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 썼습니다."

-작품을 쓰며 가장 힘들었던 대목은 무엇이었을까요?

"안중근의 처자식에 관한 대목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그가 이토를 총으로 쏘러 가면서 황해도의 처자식들을 하얼빈으로 불러들였어요. 10월26일에 안중근이 이토 암살을 시도했는데 10월27일에 그의 처자식이 하얼빈에 도착했습니다. 그제야 전날 남편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알게 된 것인데 '나 같으면 참 괴롭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안중근은 그런 고통도 대사 한 줄로 얼버무렸어요. 면회 온 동생에게 "내가 내 처자식에게 몹쓸 짓을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대사 한마디로 그런 끔찍하고 거대한 고통을 뭉개고 갈 수밖에 없다, 다 표현할 수는 없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칼의 노래'는 일본군에 맞서는 이야기고 '하얼빈'은 일본의 제국주의에 맞서는 부분인데 현재의 동북아 정세, 일본과의 관계도 복잡합니다. 이와 관련해서 말씀해주실 수 있으신지?

"대일 관계는 초야의 늙은이가 말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지만 개인의 소견을 말하자면 제 소설은 반일 민족주의로 이해되는 것은 제가 원하는 바는 아닙니다. 민족주의가 안중근의 시대에 국권이 위태로울 때 국민을 하나로 모으는 동력이 됐던 고귀한 이데올로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 시대는 민족주의가 국민을 하나로 통합할 수 있는 이데올로기로서는 매우 허약하다고 생각해요. 각 계층 간 먹이피라미드가 있고 이념과 갈등이 대립하는 사회에서 민족주의가 이 사회를 통합할 수 있다는 것은 시대 착오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작품이 '칼의 노래'를 넘는 대표작이 될 것에 동의하시는지?

“출판사에 이 표현을 쓰지 말라고 했는데… 나는 넘어선다는 게 뭔지 잘 모르겠어요. 넘어섰는지 그 안에서 주저앉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공을 들인 것은 사실입니다."

-2017년 기자회견에서 앞으로 역사를 벗어난 소설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그 이후 어떤 고민을 하게 되셨고 역사를 반영한 소설을 계속 쓰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는 역사를 소재로 한 글을 많이 썼지만, 그것이 역사소설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내 소설 속 이순신은 역사 속 이순신이 아닙니다. 하등 관련이 없는 내가 만든 인물이죠. '남한산성'도 역사는 많이 다릅니다. 그런데 그 고립무원에 빠진 성에서 인간이 그런 절대적인 고독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말을 하는지 묘사를 한 거죠. '하얼빈'도 마찬가지입니다. 역사적 배경 갖고 있지만 안중근이라는 인간의 청춘과 그 내면에 대해 쓴 글이죠. 인간 안중근이 옆에 와있는 것처럼 그의 고민이 무엇인지 듣는 것처럼 그리려 했던 것이지 영웅을 그리려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가 얼마나 위대한 영웅인지는 수많은 책과 보고서에 이미 드러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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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하얼빈 (사진=문학동네 제공) 2022.08.03.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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